僧寺煎茶(승사전다)
일창 유치웅 [李應百 飜案]

깊숙한 절속으로 유객이 찾아들고
바람은 따사롭게 따슨 봄은 저무는데
절간에 차를 달이랴 솟아나는 연기가.
僧院深深遠俗緣    風微日暖暮春天
승원심심원속연    풍미일난모춘천
上方偈罷香猶在    茶熟爐南碧篆煙 [一蒼散藁]
상방게파향유재    다숙노남벽전연

다향(茶香)이라고 했다. 차는 마시는 것만큼 짙은 향은 온 사찰 안을 진동시켰던 모양이다. 살래살래 부채를 부쳐가면서 관솔불을 당기어 이글이글 타는 불에 약을 달이듯이 보글보글 끓어오른 물에 우전차(雨前茶) 한 잔의 향기와 그 맛을 천하를 바꾸지 않았다는 다선(茶仙)의 시인이 쓴 글을 읽었기에 더욱 그렇다. 시인은 깊은 다향에 빠져 절 깊은 곳에 먼 속객이 찾아드니, 차 달이는 화로에선 푸른 연기만이 구불구불 오르네 라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법문[法文]은 끝났는데도 향불 연기는 훌훌타고(僧寺篆茶)로 번역해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일창(一滄) 유치웅(兪致雄:1901~1998)으로 서예가이다. 우리나라 근대 초서를 잘 쓰기로 이름난 명서가이다. 작품에는 조선시대 후학들을 강학하기위해 1896년(고종 2)에 지은 건물인 봉강정사 현판과 만해 한용운 선사가 말년에 주석 하셨던 심우장 현판의 서필이 있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절 깊은 곳에 먼 속객이 찾아드니 / 바람은 잔잔하여 따사롭게 봄이 저물어가네 // 법문(法文)은 이미 끝났는데도 향불 연기는 훌훌타고 / 차 달이는 화로에선 푸른 연기만이 구불구불 오르네]라고 번역된다.

위 시제는 [스님이 절에서 차를 달이다]로 번역된다. 서울대 이응백 박사(1923~2010)가 번안했던 시조(번역시조라 했음)를 그대로 옮겼다. 절에서 달이는 차는 녹차다. 그 향이 곱고, 정신을 맑게 한다고 해서 스님들은 즐겨 마셨다. 화로에 숯을 넣어 타는 불에 가볍게 부채를 부쳐가면서 달린 물이 조금 식어갈 무렵에 차를 넣어 우려내면 일품의 차가 되어 코를 자극하게 된단다.

시인은 사찰에서 이런 점을 눈여 보았던가 차 달이는 시제를 시상으로 끌어 들였다. 절 깊은 곳에 멀리서 한 속객인 시인이 찾아드니, 바람은 잔잔하여 따사롭게 봄이 저물어간다고 했다. 시인은 봄에 한 사찰을 찾았던 모양이다. 시제에서 보여주듯이 시인은 다향(茶香)에 흠뻑 취하고 싶었던지 가벼운 발걸음을 옮겨 절을 찾아가는 선경의 시상을 떠올렸다.
화자는 사찰의 화로에서 푸른 연기가 모락모락 타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후정의 시상으로 옮겨 놓았다. 법문(法文)은 끝났는데도 저 쪽 한 켠에선 향불 연기가 솟아나면서 훌훌타고 있을 즈음 차 달이는 연기가 구불구불 타오르고 있었다는 정경에서 코를 차 향기에 물씬 취했을 것이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절간 깊어 속객 찾아 따사롭던 봄 저물고, 끝난 법문 향불 연기 차 달이는 연기만은’ 이라는 시인의 상상력과 밝은 혜안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한자와 어구】
僧院: 절 深深: 깊고 깊다. 遠俗緣: 멀리서 온 속객. ‘緣(가선)’과 ‘俗’은 함께 ‘속객’을 뜻함. 風微: 미풍. 바람이 잔잔하다. 日暖: 햇빛은 따뜻하다. 暮春天: 봄이 저물어 가다. // 上方: 상방. 여기선 ‘법문’을 뜻함. 偈罷: 끝나다. 香猶在: 향불이 타다. 茶熟: 차를 달이다. 爐南: 화로. 碧篆煙: 푸른 연기가 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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