思鄕(사향)/만해 한용운
한 해가 또 가면서 내 혼백 놀랐으며
구름 걸린 희미한 달 꿈만은 외로워라
창주를 향하지 않고 고향 향한 이 마음.
歲暮寒窓方夜永    低頭不寐幾驚魂
세모한창방야영    저두부매기경혼
抹雲淡月成孤夢    佛向滄洲向故園
말운담월성고몽    불향창주향고원

누구에게나 고향은 있다. 사정에 따라 고향에 자주 가지는 못하지만 마음만은 고향을 향한다. 고향에 가면 어린 시절 추억이 새겨져 있어 지난 날의 회상을 만끽한다. 현대인은 이런 추억을 ‘향수(鄕愁)’라고 한다. 고향을 기리면서 산다. 남(南)에 고향을 둔 사람이야 시간되는 대로 가면 되겠지만, 북(北)에 고향을 둔 사람이랴. 득도를 위해 출가하여 선의 경지에 있으면서도 나라와 민족을 위해 애썼던 스님이 고향을 생각하며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보았다.

창주[滄洲]를 향하지 않고 고향으로 달리는 마음(思鄕)으로 번안해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만해(卍海) 한용운(韓龍雲:1879∼1944)으로 승려시인, 독립운동가이다. 본명은 정옥(貞玉), 아명은 유천(裕天). 법명은 용운(龍雲), 법호는 만해(萬海, 卍海)이다. 한응준의 아들이다. 유년시대에 관해서는 본인의 술회도 없고 측근에게도 알려지지 않고 있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한 해가 또 가려는데 차가운 창에는 밤이 길기만 한데 / 잠 못 들고 몇 번이나 내 혼백이 놀랐던가 // 구름 걸린 희미한 달에 꿈은 외로운 가운데 / 창주(滄洲)를 향하지 않고 달려가는 고향 마음]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고향을 생각하면서]로 번역된다. 시인의 고향은 충남 홍성이다. 고향에서 독실하게 한문공부를 했고 결혼도 하여 자식을 두었다. 뜻한 바 있어 출가하여 불문에 들어가 선가의 사상에 푹 빠져서 득도한 스님이다. 사람은 나이 들면 수구지심(首丘之心)이라고 했으니 시인도 오랜 타향살이에서 배어나온 향수에 젖었음을 알 수 있다.
시인이 고향을 그리는 마음속에 얼마나 깊은 회한이 숨어 있는가를 짐작케 한다. 한 해가 또 가려는데 차가운 창엔 밤이 길기도 한데, 깊은 밤에도 잠 못 들고 몇 번을 자신의 혼백이 놀라고 놀랐던가를 회고한다. 찢어지는 지난날의 회고 속에 얻은 것보다는 모든 것을 다 잃고 말았다는 허전함이 배어난다.
화자는 후정(後情)의 시심 속에서 구름 걸린 희미한 달을 보니 꿈에 부풀었던 지난날 회고에 마음은 외롭기만 한데 [창주(滄洲)를 향하지 않고 고향으로 마음 달리네]라고 했다. 작품 속의 창주는 동쪽 바다 가운데 있는 신선이 사는 곳으로 [창랑주(滄浪洲) 동방삭東方朔 신이경神異經]이란 뜻이나 여기에서는 독실한 신앙심으로 [부처를 따르는 길]이라고 정의해 보련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차가운 창 밤이 길어 내 혼백이 놀았던가, 희미한 달 외로운 꿈 달려가는 고향 마음’ 이라는 시인의 상상력과 밝은 혜안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한자와 어구】
歲暮: 해가 저물다. 寒窓: 차가운 창. 方: 바야흐로. 夜永: 밤이 길다. 低頭: 머리를 숙이다. 不寐: 잠 못 이루다. 幾驚魂: 몇 번 혼백이 놀랐던가. // 抹雲: 구름에 걸리다. 淡月: 희미한 달. 成: 이루다. 孤夢: 외로운 꿈. 佛: 아니다. ‘부처’는 아님. 向滄洲: ‘창주’를 항하다. 向故園: 고향을 향하다.
/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저작권자 © 장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