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 우수영 관광공원에는 ‘마하수 5父子’ 조각상이 있다. 마치 쪽배를 타고 분투하는, 베옷 차림의 다섯 어부들 같다. 그날 李충무공이 앞장 선 명량해전에서 馬氏 父子들은 어떠했을까?
장흥군과 장흥문화원에서 1995년에 펴낸 <향토인물 열전>은 ‘마하수 3父子’ 참전을 말했는데, 그 ‘3父子’가 얼마 전부터 ‘5父子’로 바뀌었다. 기왕에 장흥의 장흥馬氏 내력을 살펴본다.

그 선대를 건너뛰면, 고려 시절 마희원의 아들 ‘마중기’는 1205년 장원급제자로, 증손 마수손이 장흥 예양강에 은거하였고, ‘관산君 마치원’에서 ‘마영(榮),마천목’으로 내려오는데, 충정공 마천목(1358~1431)의 봉호 회령君(1401년), 장흥君(1418)을 보더라도, 그 연고지역 '장흥, 회령'이 바로 짐작된다. 그는 1,2차 왕자의 난(亂)에서 ‘이방원’을 지지했고, 세종 때까지 활동하며, 강진 병영의 전라병마사를 두 번 역임했다. 장흥지역 후손들은 마천목의 ‘2남, 마전(     단양군수 역임)’의 ‘조은공파’에 속한다. 마전의 아들 ‘마린서(1512~1594)’가 바로 ‘주촌 마하수(1538~1597)’의 부친으로 안양 학송 입향조가 된다. 정리하면, “마치원-마榮-마천목-마   -마린서-마하수”로 이어지며, 장흥지역 입향조 馬榮을 모시는 제각이 용산면 관지리에 있고, 마천목은 옛 장흥 회령방 모원 출신이다. 학송리 입향조 마린서의 묘소는 용산 용두천 상류에, 마하수 묘소는 안양 학송에 있다. 학송에 있는 ‘충현사(1831)’에는 ‘마천목, 마전, 마하수, 마하룡’ 네 분을 모셨으며, 마하룡(河龍)은 마하수의 동생이다. 또 ‘주촌공 마하수유허비(1941)’도 세워졌다. 오늘의 주인공, ‘주촌 마하수(舟村 馬河秀)’ 선생. 1564년 무과급제자에 ‘선공감 주부’ 관력이었고, 거북선 조선에도 참여했기에 서울로 붙잡혀가기 전의 이순신을 이미 잘 알고 있었다. 퇴역 수군 간부로 네 아들이 있고, 사위는 초계 변씨 송천 변홍주이다.

-1남, 성룡(成龍,1564~1631)
-2남, 위룡(爲龍,1576~1638), ‘초계 변씨 변홍원(卞弘源)’의 사위이고, 그 아들은 시웅(時雄,1591~1674) (‘변홍원’은 마하수와 함께 ‘회령포 향선 10척’ 집결을 주도하였는데, 명량대첩 참전 이후 그해 ‘지포 전투’에서 순사하였다)
-3남, 이룡(而龍,1581~1653), 1612년 무과 급제자.
-4남, 화룡(化龍,1587~1664)
그렇다면 1597년 9월 명량해전 현장에는 그들 馬氏일가는 어떻게 참전했는가? 마하수 3父子인가? 5父子인가? 과연 부친 馬河秀와 네 아들은 모두 한 배를 타고 출전했을까? 장흥의 馬氏 집안은 문무겸비의 전통이 있고, 마하수는 ‘기산 8문장, 남계 김윤’의 제자이다. ‘반곡 정경달’ 집안과도 가까웠다. 정경달의 아들, ‘정명열(1566~1627)’과 함께 향선(鄕船)10척을 규합하여, 李충무공이 계신 회령포로 집결할 때, 60세 백발의 마하수 자신은 詩 <마하수이순신후원시음(後援詩吟)>에서 "남아백수 심유장(男兒白首 心猶壯)"이라 말했다. 명량해전에서 ‘후원(後援) 순사(殉死)’한 마하수에 대해 ‘정명렬’은 만시(挽詩)에서 “열일추상 조혈강(烈日秋霜 照血腔)- 뜨건 해, 찬 서리로 마주 대한 핏줄”이라 기렸다. 과연 그날 그 바다에는 馬氏 5父子인가? 3父子인가?

그 현장 모습을 <李충무공전서>의 기본 자료가 된, <마씨가장(家狀)>에서 찾을 수 있다. 거기에 '마하수'와 '與二子 成龍,爲龍'으로 3父子는 나오지만, 나이 어린 세째 而龍과 네째 化龍은 없다. 마하수 선생은 명량해전에서 그 명언 “(拔劍曰, 칼을 뽑아들고) 장부사이(丈夫死耳) -사나이 丈夫라면 이제 죽어도 마땅하다”고 돌격 순사했다. 그런 남아장부(男兒丈夫)인데, 그런 ‘장부사이(丈夫死耳)’ 외침인데, 그 날 그 전선(戰船)에 아직 어린 두 아들까지 부러 태웠을 것인가. 하물며 <마씨가장>에도 그 두 아들은 없지 않은가?  3父子를 5父子로 늘리면 그 영광이 더 커지는가?

(<마씨가장> 원문이다
“望見 李公爲賊所圍 拔劍曰 丈夫死耳 與二子 成龍,爲龍 突入賊陣 力戰良久 中丸而卒 成龍,爲龍 扶屍還置鄕船 手劍突進 賊爲李公所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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