斷頭臺上(단두대상)/왈우 강우규
나라위해 일생 일로 단두대에 오르니
오히려 바람일어 그 강도를 더하는데
이 몸에 나라 없으니 감회인들 없으리.
斷頭臺上    猶在春風
단두대상    유재춘풍
有身無國    豈無感想
유신무국    기무감상

육중한 호통 소리 한마디를 듣는 듯하다. 처절한 절규 섞인 함성을 듣는 듯하다. 적진을 향하여 몸을 던지는 꺼져가는 한 불빛을 보는 듯하다. 우국자시는 다 그랬다. 그들은 의기에 불타는 청년들이었다. 나라의 운명을 한 몸에 짊어진 견인차들로 우리는 의지했다. 그러나 [우리 압박과 설음보다는 자유와 주권회복이 먼저다]라고 외쳤다. (사형 집행을 위해) 단두대 위에 떳떳하게 올라서니, 봄바람 기운이 은근하게 감도는구나 라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몸은 이 땅에 살아 있으나 내 나라가 없으니(斷頭臺上)의 첫구절로 제목을 붙여본 사언고시풍체다. 작가는 왈우(曰愚) 강우규(姜宇奎:1855~1920)로 북간도로 망명하여 연해주를 넘나들면서 독립운동을 했다. 일본의 제3대 총독으로 부임하는 사이토 마코토에게 수류탄을 투척했으나 실패하였다. 이듬해 붙잡혀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사형 집행을 위해) 단두대 위에 떳떳하게 올라서니 / 봄바람 기운이 은근히 감도는구나 // 몸은 이 땅에 살아 있으나 내 나라가 없었으니 / 어찌 (사나이) 불탄 감회가 없으리오]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단두대 위에 올라서니]로 번역된다. 죽음 앞에서 초연하기란 쉽지 않다. 죽음을 목전에 두고 의젖하기란 범인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인간이면 누구나 불안하고 초조한 모습을 감춘다는 것은 극히 어렵다. 그렇지만 우리 선현들은 죽음 앞에서 떳떳했고, 그 자체를 숙명적으로 받아 드렸다. 사육신들이 그러했고, 임진 병자 양란으로 수많은 인재들도 그렇게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시인은 독립운동이 하다가 붙잡혀 사형 집행을 당하는 엄숙한 순간이었다. 무언가 머뭇거리는 태도도 보이지 않았고, 떨리는 기색도 없다. 그러면서 시인은 떳떳하게 단두대 위에 올라서며 목숨이 추풍 낙엽 앞에 놓여 있었건만 오히려 따스한 봄바람 기운이 감돈다고까지 했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내 할 일을 다 했으니 운명적으로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음이란 초연함을 보인다.
그리고 화자는 후정의 시심으로 살며시 감싸 안는다. 그 동안 몸은 이 땅에 살아 있었으나 내 나라가 없었으니, 어찌 차마 ‘사나이 불탄 감회’가 없으리오 라는 시상을 담아냈다. 단두대 앞에서 단 칼에 한 목숨을 초개와 같이 바친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단두대위 올라서니 봄바람 기운 감돌고, 몸은 살았어도 나라 없어 어찌 감회 없으리’ 라는 시인의 상상력과 밝은 혜안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한자와 어구】
斷頭臺: 마지막 머리를 베기 위한 형틀. 上: 위에. 猶: 오히려. 在: 있다. (바람이) 분다. 春風: 봄바람.(나라를 위하는 일로 사형을 당하니 오히려 떳떳하다는 뜻을 담음). // 有身: 몸은 있다. 몸은 이 땅에 있지만. 無國: 국가가 없다. 주권을 빼앗겼다. 豈: 어찌. 無感想: 느낌이 없겠는가. 많은 느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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