初月(초승달)/면암 최익현
곤륜산 옥을 깎아 갈고리 만들어서
저 구름 먼 곳에다 걸어놔 두었느냐
달빛에 외로운 신하 가을 시를 읊는다.
誰將崑玉削如鉤    掛在雲소萬里頭
수장곤옥삭여구    괘재운소만리두
依희淡影侵虛室    異域孤臣만賦秋
의희담영침허실    이역고신만부추

초승달을 곤륜산 옥에 비유했던 시를 자주 본다. 곤륜산에 사는 선인을 전설상의 서왕모(西王母)라고 한다. 그리고 많은 사서에 기록된 ‘요지(瑤池)’가 곤륜하의 발원지 흑해(黑海)를 떠올리기도 한다. 그래서 곤륜산은 "만산의 시조, 국산의 아버지, 중화민족 신화의 전당", 도교의 발상지, 동방의 올림프스 산으로도 불리운다. 누가 곤륜산 옥을 곱게 깎아 저 갈고리를 만들어서, 구름 끝 만리 먼 곳에 저러 곱게 걸어 두었을까 라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타향에 있는 외로운 신하 가을시 읊고 있네(初月)로 번역되는 칠언절구다. 작가는 면암(勉庵) 최익현(崔益鉉:1833~1906)으로 조선 말기의 애국지사이다. 6세 때 입학해 9세 때 김기현 문하에서 유학의 기초를 공부하였다. 14세 때 은퇴한 성리학의 거두 이항로의 문하에서 성리학의 기본을 습득하였다. 이 과정에서 이항로의 애국과 호국의 정신을 배웠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누가 곤륜산 옥을 곱게 깎아 저 갈고리를 만들어서 / 구름 끝 만리 먼 곳에 저러 곱게 걸어 두었을까 // 희미한 달빛이 창틈을 뚫고 빈 방으로 들어오니 / 타향에 있는 외로운 신하가 가을시를 읊고 있네]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초승달]로 번역된다. 달을 시제로 하여 음영한 시는 상당히 많다. 특히 아리랑 고개를 넘어 가듯이 저물어가는 그믐달보다는, 새로운 도약의 발돋음 속에 뾰족하게 생기어 실같이 보이는 초승달을 보면서 음영하는 시문은 더 많았다. 이 시를 읽노라니 명월 황진이의 반월(半月)을 연상하게 한다.

시인은 이와 같은 다양한 연상 속에 시상을 일으켰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어느 누가 곤륜산 옥을 저리도 곱게 깎아 뾰족한 갈고리를 만들었을까 라는 상상 속에 저 구름 끝 만리 먼 곳에 걸어 두었을까 라는 한 차원 높은 생각을 이끌어 냈다. 초승달을 보면서 갈고리를 생각했고, 그 갈고리를 구름 만리 저 쪽에 걸어 두었다는 발상을 하게 되었다. 시인만이 표현할 수 있는 고운 시상이자 독창적인 상상으로 보인다.

화자의 후정은 자신의 외로운 처지 쪽으로 화제를 돌리게 된다. 희미한 달빛이 창틈을 뜷고 빈 방으로 들어오고 보니 더욱 외로운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그래서 [타향에 있는 외로운 신하가 가을시를 읊고 있네]라고 했다. 가을은 역시 소소하고 외로운 계절임을 느끼게 하는 시상이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곤륜산 옥 갈고리를 저리 곱게 걸었을까, 달빛 창틈 빈 방으로 가을 시를 읊고 있네’ 라는 시인의 상상력과 밝은 혜안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한자와 어구】
誰將: 누가 장차 ~하려 하다. 崑玉: 곤륜산의 옥. 削如鉤: 깎아서 갈고리를 만들다. 掛在: 걸어 두다. 雲소: 하늘 구름. 萬里頭: 만리 머리. 만리 먼 곳. // 依희: 희미한데 의지하다. 희미하다. 淡影: 담담한 그림자. 侵虛室: 빈방을 침범하다. 異域: 이역 땅. 孤臣: 외로운 신하. 만: 속이다. 賦秋: 시를 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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