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한나라 말기 조조의 참모였던 사마의는 그 처신의 절묘함으로 후세 사가들의 연구 대상이었다. 사마의는 자신의 능력을 숨기거나 과시 하는 처세를 참으로 교묘하게 운영하여 조씨와 하후씨가 득세하고 있던 위나라의 정치 현장에서 살아남은 것은 물론 은인자중 세력을 포석하였고 드디어는 손자 사마염이 진국을 건국 천하를 장악하는 원대한 정치적 성공을 거두었다.

조선의 제22대 정조대왕은 문무를 겸비한 개혁의 군주로 평가받고 있지만 대권을 승계 하기까지는 파란만장한 곡절을 겪어야 했다. 생부인 사도세자는 뒤주에 갇혀 죽어야 했고 당시의 집권 중심 세력인 노론들은 끊임없이 정조의 안위를 위협하였다. 할아버지 영조의 변덕스럽다 싶은 성정을 극복 하는 것도 어린 세자였던 정조의 고통이었다. 그 험난한 정치의 곡절을 은인자중 참고 견디면서 이겨낸 정조는 드디어 조선의 제22대 군왕으로 등극하였고 자신이 꿈꾸어 왔던 정치를 실천하여 조선의 중흥기를 펼쳐내었다.

13세기부터 16세기에 이르는 일본 전국시대의 주역은 오다 노부나가, 토요토미 히데요시 도꾸가와 이예야쓰를 지칭하고 있다. 용맹함과 정치적 술수의 뛰어남은 오다 노부나가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월등하였지만 그 시대의 마지막 승자는 도구가와 이예야쓰였고 막부 정권을 열어 250년간 집권하였다. 소위에도 정치에도 문화의 전성기를 이룩하고 근대 일본의 기틀을 조성한 도꾸가와 이에야쓰를 평가하는 사가들은 그가 승자로 군림할 수 있었던 것은 기다리고 기다리면서 자신의 시대를 구축한 인내의 처세를 꼽고 있다.

우리 호남인들이 신앙에 가까운 존경심과 열광적인 지지를 몰아주었던 김대중 전대통령의 정치적 행로는 고난과 좌절의 연속이었다. 그이의 정치 인생은 도무지 가늠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도전하여 3수 끝에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진정한 문민의 시대를 열었고 지금도 변함없는 사랑을 받고 있다.

위의 인물들에 대한 역사적 정치적 평가는 화자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지금의 우리들이 귀감으로 삼아야 하는 많은 교훈들을 남기고 있다. 이들이 끝내는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개개인의 역량과 능력이 우선하였겠지만 그보다 앞서 주목해야할 사안이 있다.
이들의 소신과 포부와 인격을 믿고 지지하며 성원하고 기다리며 동행한 수없이 많은 지지자들 때문이었다. 그 시대의 행간마다 여타의 세력들이 음해하고 질시하고 비판한 사례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 반대의 세력은 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지지자들은 위의 인물들이 지니고 있는 역량을 신뢰 하면서 변함 없는 성원을 보내 주었다.

이러한 역사적 교훈에 비추어 볼때 민선 7기 장흥군정의 성공을 가늠하는 열쇠는 군민 모두가 믿고 기다리며 성원하는 것이 관건이 아닐까 여겨진다.
민선7기의 출범은 이제 걸음마 단계이다. 지금은 밭을 갈고 이랑을 고르고 파종을 하는 시기이다. 이랑을 깊게 파고 영양분 있는 퇴비와 비료를 넣고  건강한 씨앗을 심어야 넘치는 수확을 거두지 않겠는가.
우리 군정의 상대에는 적이 없다. 장흥군이라는 공동체의 환경속에서 더불어 살아야 하는 이웃들의 삶터이다. 혹간은 정치적 사회적 입장에서 생각이 다를 수는 있지만 우리 모두가 척을 지고 예민하고 치열하게 대결해야 하는 적대적 관계는 아닌 것이다.
그러한 대국적 관점에서 지금은 신임 군수가 혹간은 착오와 실수가 있는 경우에는 공적이든 사적이든  상식선의 경로를 통하여 건의가 선행되어야할 때이다. 군민의 여론을 겸허하게 수용하고 소통하는 군수의 자세도 절실하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공직자들이 보다 투철한 사명감과 소신있는 열린 행정으로 군민의 신뢰를 얻어야 할 때이다.
신임 군수의 성공은 개인의 성공이 아니다.
우리 군의 미래와 직결된 일이며 민생의 도처에서 체감될 삶의 지표인 것이다. 따라서 군민들은  군수 개인을 위해서가 아닌 우리 모두를 위해서 믿고 기다려줄 때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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