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호에 이어서
2018.10.30.(화)13:30~15:30 
땅 끝 마을로 이동하여 도착하자마자 모노레일을 탑승하고 관망대에 올랐다. 관망대 위에서 사방을 조망해 보니 완도, 진도의 섬들이 저 멀리 보이고 노력도와 보길도 그리고 울돌목이 시야에 들어온다.
450년 전 이곳 울돌목 바다에서 왜놈들을 몽땅 수장시킨 후 “若無湖南이면 是無國家” 라고 사자후(獅子吼)를 토하든 이순신 장군의 우렁찬 호령소리가 지금도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것만 같다. 임진왜란 때 호남은 국가방위의 최대 전략 요충지였다.  그 점을 천하명장 이순신이 놓칠 이유가 없다.  호남수호에 장군은 목숨을 걸었으며 호남인은 남부여대(男負女戴) 너나 할 것 없이 이순신의 군영으로 달려가 혹은 함선에서 활을 쏘고 혹은 노를 저으며 혹은 병기와 군량을 숨가쁘게 지어 날랐다.  처자들은 달 밝은 밤에 강강술래를 돌며 왜놈침략을 소리 높여  경고했다.  “아리 아리랑 아리 아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 아리랑 아리 아리랑 응~ 응~ 응 아라리가 났네 ” 구슬픈 곡조의 진도아리랑 가락은 민족의 비애와 항일정신을 표현했다.  우리가 호남인임이 오늘 이렇게도 자랑스러우랴.
백민규 동창은 옛날 젊을 때 노력도의 어느 중학교에 봉직하면서 거의 매일을 파도치는 바다를 건너 육지에서 통근했었다는 추억을 말하고 바닷길이 징 하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15:30~17:00
달마산 미황사에 도착했다.
  절 입구에 들어서자 느껴지는 분위기가 매우 아늑하고 정감이 가득했다. 비탈길을 걸어올라 대웅전 마당에 서서 뒷켠 달마산을 쳐다보니 감탄이 절로 났다. 삐쭉하고 날카롭게 하늘로 치솟는 산 바위는 월출에서도 설악에서도 흔히 보지만 이런 형태의 독특한 바위는 난생 처음이다.  몽툭하고 반반하면서도 무언가 진중한 메시지를 담고 달마산 정상에 관모라도 되듯이 묵직이 눌러앉아 있는 그 의연한 자세는 범접하기 어려운 위엄을 지닌 듯하다.  바위를 지나 같은 등고도 로 북에서 남으로 완만하게 흐르는 공제선 따라 시선을 확장해 보니 꿈을 꾸는 듯 눈앞에 아지랑이 아른거리고 정신이 가물가물하다.  아마 달마가 미리 체험해 보라고 나를 마취시켜 영계로 데려가는 건 가 보다. 그때 마침 한줄기 가을바람이 “쏴”하고 내 이마를 스쳐갔다. 저 건너 산에서는 갈대들이 바람이 부는 방향대로 하염없이 하얀 머리를 조아렸다. 
전 세계로 부터 깨달음을 얻고자 여기 미황사로 템플스테이 지망생들이 몰려온다는 소문대로 그때 석양의 산사 앞마당에는 벽안의 남녀 한 쌍이 중 옷을 입고 조용한 미소를 지으며 스님의 말씀을 온몸으로 경청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매우 이색적이면서도 보기가 좋았다.
이곳 미황사가 유난히 크게 유명세를 타고 있는 것은 한반도  최남단 양지바른 따뜻한 곳에 자리를 잡고 신비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중생들에게 삶의 터전으로 품을 내주는 부처님같은 바다를 내려다 볼 수 있어 여기서 불공을 드리고 명상을 하면  “돈오돈수(頓悟頓修)” 깨달음이 번개처럼 번쩍이고 치유의 에너지가 마치 샤먼처럼 샘솟기 때문인 것인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시간이 촉박하여 아쉬운 마음으로 절을 떠나지만 따뜻한 봄에  따로 날을 잡아 꼭 다시 오리라.

17:00~18:00
달마산을 출발 장흥으로 이동했다.

18:00~20:30
오늘 만찬은 생선조림과 다양한 토속반찬 메뉴였다. 육식으로 느끼해진 뱃속 창자를 개운하고 칼칼하게 청소하면서 달래고 어루만져 주었다.
우리 모두는 마음껏 먹고 마시며 푸짐한 저녁을 즐겼다.

20:30~21:30
우드랜드 입구 한방 찻집에서 식후 차 담회를 가졌다.
김두봉 동창이 강의했다. 대상을 특정하지 않고 교회에 일정금액을 꾸준히 기부한 것이 후에 수혜자 된 한 사람이 기부자의 신원을 굳이 알아내고는 두고두고 몇 배로 갚고 있다는 내용을 소개했다. 선은 반드시 보상이 따른다는 절대 진리를 설파한 것이다. 
장흥중고생을 대상으로 김두봉 장학회를 오래전에 결성하여 시행해 오고 있는 중임을 밝힌 후 최근에 받았다는 어느 한 장학생의 감동적인 감사 글을 소개하고 낭독케 했다.
“시는 여류시인 이정숙 동창이 낭낭한 목소리로 운율을 넣어 감성적으로 낭독을 해서 듣는 모두의 가슴에 잔잔한 파동을 일으켰다.  편지는 김효전 동창이 읽었다.  이 순간 김두봉은 장로신분을 내려놓고 학교훈장으로 돌연변이 한 것 같았다.”

21:30~22:00
우드랜드 숙소에 도착했다. 각각 정해진 방으로 이동하여 휴식 후 취침했다. 이 시간 남자용 방 2에서는 특종이 발굴되었다. 
정현섭 동창 이야기다. 그는 요즘 직장에서 신분이 급상승하여 대 스타가 돼버렸다.  사실인 즉슨 그는 손 하나 까딱 안했는데 저절로 만리장성급 빽 그라운드가 그 주위에 철벽처럼 구축된 것이다. 
그래서 사장이하 전 회사원이 정 감사가 혹시 그만둘까봐 전전긍긍이라고 한다.  봉급쟁이 직장인이 절박한 이유도 없이 평일 3일을 어떻게 회사를 통째로 비울수가 있겠나. 그런데도 그는 얼토당토않은 우리 여행 통지문을 오너에게 턱 드리 밀며 결재를 압박하자 사장은 하는 수 없이 자의반 타의반으로 도장을 꾹 눌러버렸다는 것이다. 남의 일에 왜 이리 내가 재미져 죽겠는건가. 
그것은 조그만 회사 내의 이 급작스러운 기상이변과 지각변동이 결국은 저 도도한 촛불혁명의 나비효과에 의한 것임을 훤히 알고 있어서 그렇다.

2018.10.31.(수) 08:00~09:30 
우드랜드 수랏간에서 아침을 먹었다. 성금 100만원을 문안차 들린 군수에게 현장에서 전달했다. 무엇보다 표가 소중한 군수에게 우리 7/6회 동창회 특별자산인 2만표를 지원한다는 의미로 이만표 동창이 전달자로 나섰다.
이만표 동창은 이름 파워가 가공할만하다. 이름으로 우리 동창회의 세를 드높이고 있는 만큼 앞으로 특별대우해야 할 것이다. 특히 2만표를 이만표가 군수에게 건네주는 깜짝쑈 성격의 퍼포먼스는 기발한 발상으로 우리 7/6회의 고도의 정치학이었다.  중요한 것은 이 수수행위가 완전한 소유권 이전이 아니라 옵션이 붙은 일시 신탁이라는데 있다. 그러니까 군수가 잘하면 그의 영구자산이 되지만 조금만 잘못하면 지체없이 회수하겠다는 조건이 붙었으니 우리 7/6회 동창회가 정종순 군수의 선정과 분발을 담보하고 있는 셈이고 군수는 이 자산의 영구화와 7/6회 동창회와 맺은 신사협정의 준수를 위해서도 용약분투할 것임은 명약관화(明若觀火)한 일이다. 고향사랑은 이렇게 하는 것이다. 성금을 받은 정종순 군수는 이 돈을 종잣돈 마중물로 하여 장흥중 밴드부를 재건하는데 쓰면 좋겠다는 제안을 했다.
이른바 보리닷되 밴드다. 장흥중고 밴드의 출생은 보리닷되 전설과 얽혀있다. 그때 우리는 학교에 밴드부를 창설할 꿈을 갖고 있었는데 1950년대 초 그때는 초근목피의 가난한 시절이었다. 그리하여 궁리 끝에 전교생이 보리닷되를 기부하기로 했다. 우리는 부모를 조르고 광에서 부모 몰래 훔치기까지 하여 보리닷되를 학교로 개미떼처럼 물어 날랐다. 그렇게 해서 태어난 북과 나팔은 고 고의 성을 울리는데 “보리닷되 보리닷되” 하는 소리처럼 환청이 들렸었다. 그때 가난한 시골 우리 중학생들에게 밴드는 예술 욕구를 채워주는 사치스런 도구이기 보다는 어쩌면 좌절하지 말고 꿈과 희망을 가지라는 힘찬 응원소리로 들렸었다. 그런데 농촌이 황폐화됨과 동시에 보리닷되 수명도 그만 끝을 맺고 말았다.
그것을 되살리자는 것이다. 보리닷되 재건은 단순히 학교 밴드부 부활만이 아니라 폐허가 되고 소멸직전에 이른 오늘의 농촌을 다시 소생시키는 진군나팔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이어 장흥신문 백광준 사장에게는 김두봉 동창이 청소년외국문화탐방사업 지원 명목으로 성금을 전달했다.
장흥신문사 사주 백광준 사장이 청소년 육성 프로그램으로 펼치고 있는 청소년 선진문화탐방 사업은 매우 바람직한 것으로 적극 장려해야 하며 성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래 국가사회의 동력이 될 청소년을 건전하고 튼튼하게 육성하는 일은 국가의 지속 발전을 위해 잠시도 소홀히  할 수 없는 나라의 핵심 정책 과제이기 때문이다.
청소년에게는 꿈과 희망을 심어주어야 한다. 현실에 좌절하지 말고 미래를 위해 끊임없이 도전하게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우물 안 개구리 신세를 벗고 선진외국에 나가 다양한 문화를 접하며 견문을 넓히고 호연지기를 기르는 동시에 새로운 영감을 얻고 개인의 잠재능력과 창의력을 개발하게 될 것이다.
오늘날 언론이 본연의 역할과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는 비난여론에 비춰볼 때 향토신문이 이런 사업을 전개하는 것은 국가발전을 위해 언론의 사명을 충실하게 감당하려는 전향적인 자세로 읽혀진다. 흔히들 청소년기를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한다. 피는 끓고 가슴도 울렁거리는데 현실은 막막하고 미래는 불확실하다.  생각은 백화만발하여 혼란스러운데 어른들은 무조건 한길로 내몰고 오직 성적만을 강요하며 닦달하여 스트레스가 쌓이고 짊어진 멍애가 무겁기만 하다.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들에게 부모들은 무조건 학교성적만을 강요할게 아니라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창의성과 상상력을 극대화 시키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간섭과 채찍보다는 인정과 격려가 필요하다. 
상담을 통해 드러난 청소년 의식구조를 살펴보면 청소년들은 자기고민을 누구와 상의하고 해결하느냐고 물으면 부모도 선생도 친척도 아니고 오직 친구라고 대답한다. 따라서 부모들은 자녀를 대할 때 마음을 열고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고민을 잘 듣고 해결 가능한 것은 즉각 해결해 주어야 하며 어려운 문제는 먼저 이해를 시키되 함께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리고 건강하고 밝은 친구들을 될 수 있으면 많이 사귀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친구가 곧 의사” 라고 말하듯이 사회심리학에서도 이미 연구된 이른바 “또래집단 치유법”(Peer Group Therapy) 이론은 이 분야에서 널리 인정받고 있는 통설이다.
언론인 백광준 사장이 원대한 꿈을 갖고 국가 백년대계를 위해 앞으로 청소년 육성사업을 지속함에 있어 보다 더 깊고 넓은 지식과 전문성을 갖추고 다양하고 효과적인 프로그램을 통해 큰 성과를 거두기를 기대하며 아낌없는 성원을 보내고자 한다.

09:30~11:30
화순으로 이동, 운주사에 도착했다. 대웅전과 국보인 여러 탑을  관찰하고 천불상을 탐사했다.
천불상에 얽힌 설화가 있다. 봉건 군주시대에 탐학한 양반관료 무리들에게 탄압받고 수탈당하던 민초들은 죽지 못해 목숨만을 겨우 붙이고 나날을 버텨냈다.  그런데 언젠가는 미륵불이 이 땅에 와서 악당무리들을 쳐부수고 중생을 도탄으로부터 구제한다는 복음이 전해졌다. 그럴려면 백성이 모두 나와 천개의 불상을 깎아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붙었다. 이 말을 들은 백성들은 성한 사람은 말할 것 없고 장님, 귀머거리, 앉은뱅이, 팔다리 없는 자까지 너도나도 달려 나와 돌을 깨고 두드려 불상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민초들이 만든 불상은 온전한 것보다는 거의가 불구투성이었다. 심지어는 서지도 못하고 누워있는 불상도 있다.
그들은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형상과 닮은 불상을 깎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륵은 아직도 오지 않았다.  마지막 천개 째의 불상이 지금까지도 미완성인 채 있어서 그렇단다. 어디 약주고 병주는 건가 참으로 야속하고 서글픈 전설이로다.
오! 가여운 민초들이여 어서 빨리 이 세상에 미륵불이 와서 억울한 그대들을 따뜻한 품안에 보듬고 감싸 안기를 바라노라! 나무 관세음보살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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