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관산에는 다양한 불교신앙이 전파되어 있었다. 천관보살신앙을 비롯하여 약사신앙, 화엄신중신앙, 정토신앙, 관음신앙, 등이다. 천관산 지역에 자리 잡고 있던 다양한 불교신앙에서는 지방적. 서민대중 지향적이라는 공통점을 찾을 수 있어 여러 자료를 참고하여 정리한다.

■ 천관산 이름 유래
존재 위백규『지제지』에는 아래와 같이 설명하고 있다.
▼천관(天冠): 불서에 동남방 해동의 지제산은 천관보살이 머무른 곳이라 하였다.
▼지제(支提): 불설(佛說)에 지제란 탑묘(塔廟)의 이름이니 이 산의 형상이 같은 탓으로 지제라 이름하였고 이를 적집(積集)이라 하니 적집은 복과 선을 뜻한 것이다.
▼불두(佛頭): 북쪽 모퉁이의 관음봉으로서 이름한 것이다.
▼우두(牛頭): 남쪽 봉우리로써 이름한 것이다.
 불설(佛說)에 세존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죽은 후 천년이 되면 대지 중생이 모두가 나의 도(道)를 봉지(奉持)하리니 현세(現世)안의 모든 영경(靈境)은 과거 현재 미래까지도 없어지지 아니한 삼겁불멸(三劫不滅)의 땅인바 모두 내가 지은 경과 율과 논을 소장할 것이다.’ 라고 보살을 시켜 지키게 하니 이에 관세음보살이 돌로 만든 배에다 진경(眞經)을 싣고 바다를 건너와서 산의 북쪽 등성이에다 소장한 탓으로 봉우리 이름을 대장(大藏)이라 한다.
이와같이 천관산의 이름이 전하고 있다. 특히 ‘천관’ 이라는 산 이름은 천관보살신앙과 관련되어 주목되고 있다.

■ 천관산 불교신앙
▼천관보살신앙(天冠菩薩信仰)
천관보살은 자기 자신을 위한 깨달음과더불어 중생을 깨달음의 길로 인도하려는 수행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성격의 천관보살과 가장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지역이 천관산이며 천관보살과 관련하여 최초로 기록에 나타나는 승려가 원표이다. 통일신라시대 지방민 출신이었던 원표는 중국에서 천관보살신앙을 체험하고 귀국하여 보림사(고(古) 가지사)를 창건하였지만 천관산 지역을 자주 찾아가서 천관보살신앙을 유포시켰다.
천관보살신앙은 통일신라의 화엄신앙이 지역으로 확산되는 과정에서 지방토착세력에 의해 주도적으로 수용된 전형적인 좋은 사례이다.
▼약사신앙(藥師信仰)
천관산 옥룡사지에서 7세기 후반에 조성되었던 것으로 여겨지는 금동약사여래입상이 1994. 4. 10일 이곳 옥룡사지에서 발견되었다.
이 불상은 9세기말~ 10세기 초에 조성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석조약사여래좌상」이 많이 훼손되기는 했지만 현지에 남아 있어 당시 옥룡사와 약사신앙을 짐작하게 한다.
약사여래는 동방에 불국토를 건설하기 위해 모든 중생의 질병을 치료하고, 수명을 연장시키며, 재난을 소멸시키고, 의식을 풍족하게 해 준다고 하여 서민대중의 신앙대상이 되었다.
따라서 민중신앙인 약사신앙은 7세기 중엽부터 약사불이 널리 알려지기 시작하여 8세기 중엽에 크게 유행하였으며 천관산 지역에 자리한 옥룡사를 통해 유포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화엄신중신앙(華嚴神衆信仰)
「화엄경」을 비롯한 불교경전에는 수많은 호법신이 등장한다.
화엄신중(華嚴神衆)은 무력(武力)과 관계가 있는 무한한 힘을 가진 신장(神將)이여서 불법을 지키고 모든 재난을 막아주기 때문에 민중의 신앙이 된다. 화엄신중 신앙도 부처나 보살보다 하위에 있으면서 그들이 옹위하는 역할을 맡고 있는 신중(神衆)들에 대한 신앙이라는 면에서, 왕도의 왕족이나 귀족보다는 아무래도 지방의 보다 낮은 계층에 속하는 인간에게 더욱 환영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정토신앙(淨土信仰)
천관산에 정토신앙이 자리 잡고 있었음은 미타암(彌陀庵) 존재를 통하여 확인할 수가 있다.
천인「천관산기」에 따르면 천관산 남쪽 어느 봉우리인가에 미타암이 자리하고 있었다고 한다.
미타암은 정토신앙에서 아미타불을 주존불로 모셨던 사찰이 분명하다.
아미타불은 서방전토의 극락세계에 머물면서 법을 설한다는 부처이다. 따라서 당시 만약 천관산지역에 정토신앙이 전파되지 않았다면 미타암과 같은 사찰이 자리하지 않았을 것이고 천인이 「천관산기」를 찬술하였던 고려 무인정권의 시기 이전에 이미 천관산에 정토신앙이 뿌리내렸을 것이다.
 ▼관음신앙(觀音信仰)
천관산에 관음신앙도 전파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일찍이 부석존자 의상이 천관산에 머무른 적이 있었다는 「천관산기」의 기록으로 부터 추정된다.
의상의 관음신앙이 처음과는 달리 미타신앙과 혼합된 모습으로 나타나게 된 것은 미륵 정토신앙과 혼합된 의상의 관음신앙이 전해져 있지 않았을까 짐작된다. 통일신라시기에 관음신앙이 널리 유행하였던 것은 의상의 노력에 힘입은 것이었다고 한다.

■ 맺은 말
지금까지 통일신라와 고려시대 천관산지역에 전파되어 뿌리 내리고 있던 불교신앙을 살펴보았는데 다양한 불교신앙에서 공통적으로 대중 지향적이고 지방적인색채를 발견할 수 있다. 천관산에는 일찍부터 다양한 불교종파와 신앙이 전파되어있었다.
특히 화엄종의 의상계(義湘系)와 원효계(元曉系)및 연기계(緣起系) 등 통일신라시대에 존재하던 여러 교파(敎派)의 화엄종이 모두 집결되어 나타났었다.
한편 천관산에는 천관보살신앙(天冠菩薩信仰)을 비롯한 약사신앙(藥師信仰), 화엄신중신앙(華嚴神衆信仰), 정토신앙(淨土信仰), 관음신앙(觀音信仰), 등이 전파되었으며 천관산 지역에 정착하고 있던 다양한 불교신앙은 지방적. 서민대중 지향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당시 천관산 지역은 불교문화 중심지여서 천관산 아육왕탑 역시 불교사상의 하나로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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