庵居茶後(암거차후)/다진 황상
봄이 가니 산은 늙고 구름에 경 바위
소나무의 자태에는 찬 뜻이 없었는데
대나무 차가운 정기 기운차게 있구나.
春去山如老    雲歸石欲輕
춘거산여노    운귀석욕경
松儀無冷意    竹氣帶凉精
송의무랭의    죽기대량정

암자에 임시 거처를 정해 생활하면서 머리를 식히기 위해 차 한 잔 하면 맑은 기운이 솟는다.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자연의 아름다운 경관에 탄성을 자아냄직도 하다. 계절은 온다는 기별도 없고, 간다는 소식도 없이 슬며시 꼬리를 감춘다. 오고가는 계절과 변화되는 자연 앞에 그저 멍할 수밖에 없다. 참선을 위한 도의 경지였겠다. 봄이 슬며시 떠나니 산은 문득 늙은 듯하고 / 구름이 떠나자 바위는 가벼워진 듯 하는구나 라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소나무의 순수한 자태에는 차가운 뜻이 없네(庵居茶後)로 번역되는 오언절구 전구다. 작가는 다진(茶塵) 황상(黃裳:1788~1870)으로 조선 후기의 문인이다. 정약용이 제자 중 가장 아끼고 사랑한 강진 유배시절의 제자다. 정약용과 처음 만났던 때는 그가 15세의 소년이었다. 다산이 초당으로 거처를 옮기기 전까지 그는 스승의 손과 발이 되어 부지런히 배우고 익혔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봄이 슬며시 떠나니 산은 문득 늙은 듯하고 / 구름이 떠나자 바위는 가벼워진 듯 하는구나 // 소나무의 순수한 자태에는 본래 차가운 뜻이 없고 / 대나무 기운만이 본래의 찬 정기를 띠고 있구나]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산방에서 차 마신 뒤]로 번역된다. 자신의 호를 다진(茶塵)이라고 불러 다산 스승으로부터 받은 티끌(후예)로 생각할 정도로 겸손했다. 그리고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다산이 써준 ‘황상유인첩’에만 충실하며 평생 학문에만 정진한 뛰어난 제자로 인정받았다.
시인은 반가움으로 맞이했던 봄이 떠나고 나니 산은 문득 늙은 듯하고, 구름이 떠나 가자 바위는 가벼워진 듯 하는구나라는 시상을 일으켰다. 바위 위의 구름이 얼마나 무거웠을까 만은 시인의 시상을 천근이나 되었던 모양이다.
화자의 시상은 식물의 차가움과 그렇지 않음이란 정도로 돌리고 있다. 소나무의 순수한 자태에는 차가운 뜻이 없다고 했고, 대나무의 기운은 찬 정기를 띠고 있구나 라고 했다. 소나무에서는 따뜻함을 느끼고, 대나무에서 절개가 곧기 때문에 찬 정기를 느꼈던 모양이다.
이어지는 후구(後句)는 다음과 같다. [가난해도 편안히 웃는다 하나(家乏可康謚) 시 거칠면 좋은 이름 어이 얻으리(詩荒何善名) // 아이에게는 삼근의 가르침을 주며(三勤授兒輩) 스승께 받자온 것 여태 행하네(師受到今行)]라고 하여 늘 편안함을 구가했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산은 모두 늙은 듯이 구름 떠나 가벼웁고, 소나무 자태 차가운 뜻 없고 대나무는 찬 정기만’라는 시인의 상상력과 밝은 혜안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한자와 어구】
春去: 봄이 가다. 山如老: 산은 늙은 것 같다. 곧 산은 산뜩하니 젋다. 雲歸: 구름이 돌아가다. 구름이 더나다. 石欲輕: 돌은 가볍고자 하다. 무겁지 않다. // 松儀: 소나무의 거동, 無冷意: 차가운 뜻이 없다. 차갑지 않다. 竹氣: 대나무의 기상. 대나무의 꿋꿋한 기상이다. 帶凉精: 차가운 정기를 띤다.
/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저작권자 © 장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