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居雜興(산거잡흥)/연파 아암혜장
주렴에 어린 산 빛 정적에 아름답고
푸른 숲 붉은 놀 눈에 가득 고와서
사미에 차를 끓여라 베갯머리 우물이.
一簾山色靜中鮮    碧樹丹霞滿目姸
일렴산색정중선    벽수단하만목연
정囑沙彌須煮茗    枕頭原有地漿泉
정촉사미수자명    침두원유지장천

산에 살면 맑은 공기에 졸졸 흐르는 냇물이 제 격이다. 식사 후에 차 한 잔 마시는 재미는 비록 선인(仙人)이나 도인(道人)이 아니라도 마음을 넉넉하게 한다. 굳이 사미까지 부르지는 않아도 좋으련만 재빠른 걸음걸이에 헌신하는 모습이 더 없이 좋았을게다. 염불이 방해가 되고 독서에 훼방 놓는다고 주렴을 쳤겠다. 낭만적이다. 어린 사미 불러 차 끓여라 이르고 보니 / 베갯머리에 원래 시원한 우물(地漿泉)이 있는 것을 라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푸른 나무숲, 붉은 노을은 눈에 가득 곱구나(山居雜興)로 번역해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아암(兒庵) 혜장(惠藏:1772∼1811)으로 조선 후기의 승려이다. 호는 아암(兒庵), 연파(蓮坡)이다. 대둔사에 들어가 승려가 되었고, 1796년(정조 20) 즉원의 법을 이어받아 대둔사의 강석을 맡았다. 변려문에 능했으며, 기품이 남달랐고 성리학에도 뛰어났다. 저서로 <아암집>이 있다.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주렴에 어린 산빛은 깊은 정적에 싸여서 아름답고 / 푸른 나무숲, 붉은 노을은 눈에 가득 곱구나 // 어린 사미 불러 차 끓여라 이르고 보니 / 베갯머리에 원래 시원한 우물(地漿泉)이 있는 것을]이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산에 살며 흥이 나서]로 번역된다. 산에서 느끼는 흥취를 그린 20수의 시 가운데 두 번째 시를 골랐다. 한가롭고 고고한 무심세계를 느낄 수 있다. 파격적인 삶을 살았던 스님에게는 따르는 제자 넷이 있었는데, 이미 35살 때 의발을 전수하고서는, 시(詩)와 술(酒)을 즐기며 자유자재한 생활을 즐겼던 스님으로 알려진다. 일부 행동의 자유자재이지 불심에서 나약한 스님은 아니었을 것으로 보인다.

시인은 산에 살면서도 자연이 주는 흥은 더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주렴에 어리는 산 빛은 정적에 싸여 아름답고, 푸른 나무숲, 붉은 노을은 눈에 가득 곱구나 라는 선경의 그림을 잘 그려냈다. 산이 인간에게 주는 즐거움은 아마도 여기에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들게 한다.
심부름하는 동자승을 향한 맑을 차를 끓여 한 잔 하고 싶었던지 어린 사미 불러 차 끓여라는 명령을 하고 난 후에 가만히 살펴 보았다고 했다. 차 보다 맑고 시원한 우물(地漿泉)이 베갯머리 맡에 원래 있었던 것을 깜박 모르고 일을 시켰다는 얇지만 투터운 후정(後情)을 일구어냈다. 여기까지가 시가 되고 노래가 됨을 느낀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산빛 깊어 아름답고 붉은 노을 저리 곱네, 사미 불러 차끓여라 베갯머리 우물있지’ 라는 시인의 상상력과 밝은 혜안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한자와 어구】
一簾: 한 발. 山色: 산 빛. 靜中鮮: 정적에 싸여 아름답다. 碧樹: 푸른 나무. 丹霞: 붉은 노을. 滿目姸: 눈에 가득 곱다. ?: 단단히 부탁하다. 囑: 부탁하다. 명하다. 沙彌: 어린 사미. 須煮茗: 드디어 차를 끓이다. 枕頭: 베갯머리. 原有: 원래 ~이 있다. 地漿泉: 물이 나는 샘(우물). 약수.
/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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