自輓(자만)/임연 이양연

한 평생 시름에서 만족하지 못했는데
이제부터 만년토록 마주보게 되겠지만
황천에 가는 길이라 아주 싫지 아니하오.
一生愁中過    明月看不足
일생수중과    명월간부족
萬年長相對    此行未爲惡
만년장상대    차행미위악

죽음은 어느 순간 찾아온다. 예고도 없고 예언도 해주기 않는다. 언제 갈 것이냐는 물음에 저승 사자(使者)를 만나면 따라 갈 것이라고 한다. 이 때는 대비하여 만사(輓詞)도 써놓고, 땅에 묻일 관(棺)도 준비해 둔 사람도 있었다. 본인이 가묘를 써놓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묘비까지도 세워놓은 사람도 있어 이른바 죽음 대비까지도 했다. 한 평생을 시름 속에 살아오느라고, 이제부터는 만년토록 그저 서로 마주 볼 터이니 라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황천으로 가는 이 길도 결코 싫지는 않다네(自輓)로 번역해본 오언절구다. 작가는 임연(臨淵) 이양연(李亮淵:1771∼1853)으로 조선 후기의 문신이다. 광평대군 ‘여(璵)’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이상운이다. 어릴 때부터 문장이 뛰어났으며 성리학에 밝았다. 1830년(순조 30) 음보로 선공감에 제수되고, 1834년 사옹원봉사에 제수되었으나 모두 나아가지 않았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한 평생을 시름 속에 살아오느라고 / 저 밝은 달을 보아도 나는 결코 만족하지를 못했었다오 // 이제부터는 만년토록 그저 우리 서로 마주 볼 터이니 / 황천으로 가는 이 길도 결코 싫지는 않겠다오]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내가 죽게 되면]으로 번역된다. 죽은 것을 예견하고 죽기 전에 묘를 미리 만들어 놓은 사람도 있고, 관(棺)을 미리 만들어 놓은 사람도 있다. 가묘를 써서 비석을 미리 세워놓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죽어서 사용할 수 있는 만사(輓詞)를 미리 만들어 써놓은 사람도 있다. 어차피 가는 길인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미리 준비하는 행위일진데, 이를 그르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어보인다.

이런 점을 잘 알고 있는 시인은 스스로 만사를 써 두었음을 시제에서부터 밝히고 있다. 내 한 평생을 시름 속에 살아왔음을 회고하면서 저 밝은 달을 보아도 나는 결코 만족하지를 못했소 라고 했다. 사는 것을 만족하지 못했으니 죽는 길이나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다 해보고자 했을 지도 모른다.

이와 같은 생각에 미친 화자는 본심이나 진배없는 결심으로 시적인 반전을 시도한다. 이제부터는 만년토록 그저 자신의 얼굴이듯이 만사(輓詞)를 마주 볼 터이니, 앞으로 황천으로 가는 이 길도 결코 싫지는 않겠다오 라고 했다. 의연한 자기 철학과 화자 자신이 만사를 써두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소신을 나타낸 시상이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한 평생을 시름 속에 달을 봐도 만족 못해, 만년토록 마주 보면 황천길도 싫지 않아’라는 시인의 상상력과 밝은 혜안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한자와 어구】
自輓(자만): 자신이 죽어서 상여 앞에 나가는 만사를 미리 지어놓는 일. 一生: 일생. 혹은 일생동안. 愁中過: 시름 가운데 지내다. 시름으로 살아오다. 明月: 밝은 달. 看: 쳐다보다. 不足: 만족하지 못하다. // 萬年: 만년. 오랜 세월. 長相對: 서로 마주보다. 此行: 황천으로 가는 이 길. 未爲惡: 싫어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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