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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용산덕암 매향비칼럼/연재(5)/향토문화유산(34)/문병길(행정달인 신지식인)/부산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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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1.09  09:4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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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에 장흥은 불교의 성지였다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고려 말 조선 초에 시대적인 불안감을 해소하고 새로운 세상을 염원하는 매향의식이 있었는데 본래 의미가 알려지지 않아 정리한다.

■매향(埋香)이란 무엇일까?
천년 전 우리조상들은 무슨 연유로 향을  벌에 묻고 천년 뒤 미래에 대한 희망을  살랐던 것 일까?  또 당시 그들이 느꼈을 현실감은 과연 오늘의 우리가 느끼는 그것과 얼마나 다르고, 또 얼마나 심각한 것이었을까? 매향에 담긴 선조들의 깊은 마음을 더듬어 본다.
과거 역사 속에서 힘없는 인간들은 이럴 때면 어김없이 갖가지 신령들에게 자신의 미래를 의지하여왔다.
매향비는 불교억제정책이 강화되던 고려말과 조선 초기에 극락정토로 갈 것을 기원하면서 비(碑)를 세우던 비밀 종교의례로 땅에 향을 묻는 것이었다. 향나무는 아무 곳에나 묻는 것일까, 아니면 특별한 곳에 묻는 것일까? 왜 묻으며, 향을 묻어서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것일까? 민중의 염원이 담긴 「매향의례」 할 때 향나무를 아무 곳에나 그냥 묻는 것이 아니었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매향의 최적지는 계곡 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곳 이다.
따라서 매향이 이루어지는 곳은 섬이나 해안지역 이어야하고, 구체적으로는 갯벌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해안과 섬 지방 민중들은 갯벌에 향나무를 묻고 매향을 통하여 자신들의 미래를 기원하면서 다가올 미륵세계와 미륵불을 기다렸다.
특히 발원자들이 공통적으로 느끼고 있는 현실적 위기감을 바탕으로 한 순수한 민간신앙이여서 자신의 애틋한 기다림과 정성을 미륵보살이 알아줄 것이라고 믿었다.

■ 매향의 본래 의미
왜구의 피해가 극심했던 여말 선초의 상황을 알 수 있어 이 지역의 전설과 다른 흔적을 찾아야 할 것이다.
매향비는 여러 사람들이 잘 알아 볼 수 있도록 비석처럼 세워진 경우가 거의 없으며 비석이라 부르기 보다는 암각이라 불러야할 만큼 대개는 산 중턱쯤 암벽의 자연석에 투박한 글씨로 새겨져 있다.
 왜냐하면 매향을 하지 않은 제3자가 비문을 알아보고 침향을 못 캐가도록 일부러 숨겨두고 비밀스럽게 했기 때문에 수많은 불교문헌자료나 역사서에 매향에 관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 이유는 매향의례는 민중적인 기반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기록에 없는 까닭에 매향암각에 새겨진 글씨는 매향에 관한 기록자료 로서 중요하게 취급되고 있다.
매향비에는 매향의 시기와 주체, 발원 내용 등이 기록되어있다. 땅에 묻었던 향은 주로 ‘침향(沈香)’이라 하여 희귀약재로 쓰였고, 특히 향은 불교신앙의 필수적인 용품으로 중시되었는데 침향의 경우는 더욱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향을 땅에 묻는 행위는 미륵하생신앙과 연결된 것으로 땅에 묻는 향을 매개로발원자와 하생할 미륵이 연결되기를 기원하는 것이었다.
미륵신앙은 현실위주 구세. 기복적인 것으로 고려 말 조선 초에 집중적으로 나타나고 있어 시대적인 불안감을 해소하고 새로운 세상을 염원하였다. 매향의 주도집단을 향도(香徒),보(寶), 결계(結契)라 했다.
매향비에 전해지는 전설은 모두 ‘보물’과 관련된 것들이었다.
매향비에 새겨진 뜻을 알면 보물을 찾을 수 있는데, ‘보물을 숨긴 비기(秘記)여서 이 기록을 해석하는 사람만이 보물을 찾을 수 있다’ 는 이야기는 침향이 어떻게 보물로 전해지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21세기 우리사회에서 침향은 그 본래 의미를 잃은 채 약재로서 한약방에서 고급약제로 취급되고 있으며, 사찰에서는 특별한 의미가 부여되기보다는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 매향비 발견 유적지
1982년 8월, 전남 신안군 암태도에서 새로운 매향비를 발견하였는데 이는 도서지방에서 발견된 유일한 예이다. 그 당시에 강원도 고성 삼일포(1309년), 경남사천(1387년), 충남 해미(1427년)에서 발견된 상태였다.
그러나 전남 신안의 암태도 매향비 발견이후 전라도 해남군 마산면 맹진리 속칭 장군바위(1406년), 영암의 엄길리(1344년),영광의 법성포(1371년, 1410년),장흥군 용산면 덕암리 (1434년), 충남 당진과 경남 삼천포에서 추가로 발견되었다.
용산면 덕암리 원덕암은 마을 국도77호 도로변 김재동씨 집 뒤(용산면 덕암리 산2번지)에 떡암 또는 독바위라 부르는 매향비(埋香碑) 매향암각(岩刻)가 있다.
벽력암(霹靂岩)이라고도 부르는 이 바위에 총6행 20자 ‘선덕구년(宣德九年) 월(月) 일(日) 천인동원사지매향(千人同願巳地埋香) 향도주(香徒主) 홍신(洪信)’이라고 새겨져 있으며 글자크기는 6cm에서 12cm이다. 명문순서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읽게 되어있어 통례적인 오른쪽에서부터 읽는 것과 반대이다. 매향처는 사지(巳地)로서 매향비 위치에서 남남동향이다.
1434년(세종16)에 천인(千人)이라 표현될 만큼 많은 지역민이 참여해 향도가 주체가 되어 매향의식을 행했는데 대표인물은 홍신(洪信)이란 사람인 듯싶다.
매향이란 향목(香木)을 묻는 민간불교의식으로 미래 구복적인 성향이 강한 미륵신앙의 한 형태이다.

매침(埋沈)한 향을 매개로 발원자와 하생(下生)한 미륵이 연결되기를 기원 한 것이다.
매향의 장소는 산골짜기 계곡물과 해수가 만나는 지점이 최적지라 구전되며 용산면 원덕암 마을의 경우 삼십포(三十浦)의 긴 포구와 부용산(608m)에서 흘러드는 물이 만난다.
고려말기 왜구가 창궐하던 시기에 민중은 현실적인 불안을 구원받는 방법으로 구복적성격 미륵신앙과 접합된 매향을 택했다고 볼 수 있다.
조선시대 불교사 연구에 매우 귀한 자료가 되고 있어 전남도 문화재 자료 제252호로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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