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불산 그 바위에 두 전설이 있다. 1521년경 유배객 신잠(1491~1554)도 그 詩에 덧붙여 놓았다. "옛날엔 망부석(昔聞望夫石), 지금은 부암(今見婦岩)".

1487년경 전라관찰사 김종직(1431~1492)도 '관산 동정(東亭)' 詩에서 '婦岩(부암)'이라 언급했다. 조선 초부터 그 바위이름은 婦岩 쪽으로 굳어진 듯.

 - 婦岩(부암, 며느리 바위)

"돌아 보지말라"는 금기(禁忌)를 어기면 징벌이 따른다. 시주승을 박대하고 모욕한 수전노 시아버지가 사는 마을에 홍수가 들이닥치고, 미리 귀띔 받은 착한 며느리만 도피하는데, '돌아보지 말라'는 금기를 어기고 돌아보는 순간에 그만 바위가 되고 말았다. 홍수가 덮친 마을에는 '박림소'가 생겼으며, 예양강가 ‘창랑정(滄浪亭)’의 정자 기문에도 '朴林沼'로 남았다. <창세기>의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에서, '롯'의 아내가 뒤를 돌아보고서 소금 기둥으로 변한 상황과 비슷하다. 한국에선 '장자못 설화' 유형에 해당한다. "하지 말라는 명령을 어기면 바로 파멸이다"는 금기 위반과 제재에 관한 설화이다. 개인적 욕구 실현에는 늘 고비가 뒤따르기 마련. 우리네 인생은 금지와 위반의 담장지대를 아슬아슬 통과하게 된다. 옛 장흥사람들도 그랬을 것. 그러나 뒤돌아섰기에 성공할 수 있고, 부러 어겼기에 영웅이 될 수 있는 어떤 상황도 있다. 며느리바위 이야기는 '전도된 영웅담'일 수 있다.(한편, '박림소'가 아닌 '백룡소(白龍沼)'라는 주장도 있다. 물속에 白龍바위가 실제로 누워있다는 것인데, 그 경우라면 며느리바위 설화와 단절될 것.)

 - 望夫石(망부석)

전통적 상징으로서 '기다림, 지조, 희생'을 말해준다. 경상도 울산 치술령에 있는 바위, 왜국에 사신으로 파견되었다가 붙잡혀 돌아오지 못한 남편 박제상(朴堤上)을 기다리는 박제상 부인(치술神母)의 모습이다. 장흥 억불산 바위 역시 望夫石으로 볼 수 있다. 서울로 과거 보러 떠난 남편이 장흥 夫山에 머물며 돌아오지 아니함에도 끝내 기다리다가 望夫石이 되었다는 이야기. 우선은 '기다리는 여인의 견고한 사랑'을 말해주지만, 역설적으로 '버리고 싶은 정체성'을 시사해줄 수 있다. 기껏 장흥 夫山에서 노닥거리며 돌아오지 않는, 그런 치졸한 지아비를 내내 기다리는 여자 모습이 너무 실없고 안쓰러운 것 아닌가?

- 억불산 부암(婦岩)에 덧붙인다.

  이성복의 詩 '남해 금산'에는 돌 속으로 들어가 돌에 묻힌 여자, 다시 돌에서 떠나간 여자가 있다. 그간에 우리 장흥여자들은 저 바위만 쳐다본데서, 저 며느리처럼 갇혀 버렸던 것은 아닐까? 그 누구도 저 바윗돌로 굳어진 며느리의 속사정을 고이 기억해주지도 않는다. 이제는 저 무심무동(無心無動) 바위에 새 이름이 필요 할지도 모른다. 변신(變身)과 탈각(脫殼)의 결단을 한 번 더 내려야할지 모른다. 그리하여 저 여자더러 저 억불산 억겁바위에서 떠나가게 하고, 그 남은 바위를 ‘엄지 바위'로 새로 세우고 싶다. 저 장흥 며느리여, 그 돌에서 빠져나와 앞가슴을 펴고 당당하게 달려가라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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