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被阿娘罵(잠피아랑매)/문무자 이옥
시어머니 꾸지람을 잠시 동안 듣고 나서
사흘 동안 끼니들을 굶으면서 지냈는데
은장도 차고 있으니 삼가야지 말들을.
잠被阿娘罵    三日不肯飡
잠피아낭매    삼일불긍손
농佩靑강刀    誰復愼농言
농패청강도    수부신농언

조선 말 정조의 문체반정(文體反正)에 걸려 글을 쓰지 못했던 시대를 생각하면 삥긋하게 웃음이 나온다. 이러한 시대에 시어미의 말에 반론을 제기하거나 무심코 던지는 한마디 말에 독기(毒氣) 품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현실이었다. 그러나 시인은 여성스런 문체로 여자의 마음을 비현실적인 방법으로 우회전하면서 쓰고 있어 주목된다. 시어머니 꾸지람을 잠시 듣고 나서는 화가 나서 사흘 내내 끼니를 굶고 지냈었다네 라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내가 가슴 속에는 은장도를 차고 있는데(?被阿娘罵)로 첫구를 인용하며 제목을 붙여보는 오언절구다. 작가는 문무자(文無子) 이옥(李鈺:1760∼1816)으로 조선 후기의 문인이다. 다른 호는 매사(梅史), 매암(梅庵), 경금자(絅錦子), 화석자(花石子), 청화외사(청華外史), 매화외사(梅花外史), 도화유수관주인(桃花流水館主人)로 알려진다. 생애도 그의 글과 친구인 김려의 문집 발문으로 추정하고 있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시어머니 꾸지람을 잠시 듣고 나서는 / 화가 나서 사흘 내내 끼니를 굶고 지냈었다네 // 내가 가슴에는 예리한 은장도를 차고 있었으니 / 그 누구도 내게는 말을 삼가야겠지]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시어머니 꾸지람 잠시 듣고]로 번역된다. 시인이 살았던 시대는 문이 성한 정조시대였지만 문체반정에 쌓여 불우했다. 화성 문인으로 평가받고는 있있지만, 문인으로서의 문집 하나 남기지 못한 그 녀였지만 자유로운 정신과 인간적인 모습, 그리고 당시로써는 파격적이었던 문체 덕분이라라. 염조艶調는 농염함과 현실를 조화하려고 했는데, 모두 18조이지만 여기에서는 십육조 뿐이다.
시인은 시어머니 꾸중에도 얼른 마음을 돌리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시어머니 꾸지람을 잠시 듣고는, 사흘 내내 끼니를 굶고 지냈었다네 라고 했다.
그 나름으로 상당한 심통이 있었던 모양이다. 잠시의 꾸지람을 ‘꿀꺽’ 집어 삼키고 넘길 수도 있었겠지만 그렇지 못한 성격 탓도 있었겠다. 새로운 문체를 쓰겠다는 사려 깊은 개성론을 다시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화자는 한 마디 엄포를 내뱉는다. 물론 시어미니에서 대꾸하는 식은 아니었을 것이다. 다만 시문으로 표현한 내용이었겠지만 내가 가슴에는 은장도를 차고 있었으니, 그 누구도 내게는 말을 삼가야겠지라고 했다. 다소 섬칫한 생각이 드는 표현이기도 하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시어머니 꾸지람을 끼니 굶기 사흩 날을, 가슴에 찬 내 은장도 누구든지 삼가해야’라는 시인의 상상력과 밝은 혜안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한자와 어구】
잠: 잠시. 被阿: (꾸중을) 듣다(被: 듣다. 입다. 阿: 언덕아). 娘罵: 시어머니 꾸중(郎罵(남편의 꾸중)으로 되어 있음). 三日: 삼일동안. 不肯飡: 밥을 먹지 않다. // 농: 나. 佩靑: 차다. 강刀: 은장도(규장각본에는 ‘粧刀’로 되어 있음. 誰復: 누가 다시. 愼농言: 나를 꾸중하겠는가. ‘愼’은 ‘嗔’으로 고칠 수도 있음.<문학평론가ㆍ시조시인/사)한교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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