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에서 조금 살다보면 누구든지
장흥 사람들이 장흥을
자응이라 부른다는 것을 알게된다

하지만 자응을 알게 되었다고 해서
장흥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장흥 사는 사람과
자응 사람은 다르다.

자응 장에 가서
칠거리 본전통이나 지전머리를
바지 자락으로 쓸어본 사람이라야 겨우
물짠 자응 사람이 된다.

독실보건 백룡쏘건
예양강에 붙은 어느 또랑에서라도
뫼욕을 해본 경험이 있다면
자응에 간이 배고
자응으로 척척해진 사람이랄 수 있다.

자응에 아주 뿌리를 내리면
장서 나서
장서 자라고
장가 있는 장고나
장여고를 나온 토백이가 된다.

장흥에서 자응으로 가는 데는
십년은 족히 걸리고
자응에서 또 자앙,장으로 가는 데는
다시 몇십년이 걸린다.

거기다가
‘자응가’라는 말이
‘장흥에’라는 듯으로 쓰인다는 것을
알기에는 너무 먼 거리인데다
비포장도로라서
어지간한 사람은
돈밧재를 넘기도 전에
힘이 파하고 만다.

-누군가의 소개를 받아서 부산광역시에 거주 하는 대학 교수와 통화를 했다.
‘여기 전라남도 장흥(자응)인데요’‘어디 고흥군이요?’‘아니요 장흥군이라니까요’
‘장이요? 자요?’ 드디어 ‘장’‘흥’에 쐐기를 박은 억양으로 또박또박 발음 하고서야 알아들은 대답을 들었다.‘오, 장흥군이요’ 왜 사람들은 ‘장흥’을 ‘자응’으로 알아 듣고 ‘장흥 사람’을 ‘자응 사람’으로 보는 것일까. 싫지 않은 변용이다.
 

이대흠 시인은 근간의 시집‘당신은 북촌에서 온 사람(창비.118쪽.-18.8.31)’49쪽에 ‘장흥’시편을 수록  하였다. 이 시를 읽고 있자면 ‘장흥’‘과 자응’의 경계가 개운하게 다가온다.
그리고 내가 ‘자응’사람으로 뿌리 내리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게 한다.

이대흠 시인은 흐르는 세월속에서 유유하게 사는 것 같으면서도 삶의 행간 중에  눈에 보이지 않은 자맥질을 하면서 ‘번뜩이되  식상 하지 않고’‘은근 하게 매혹적이며’‘시다운 시’를 읽고 있다는 것을 가슴으로 느끼게 하는 시편들을 건져 올린다. 그  탁월한 시적 재능이 얄밉다. 그래서 다음 시집이 기다려지고 ‘자응’사람으로‘자응의 시인’이 지향 하는 길목이 더없이 기대 된다(昊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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