春日奇書(춘일기서)/지재당 강담운
 

그리움의 눈물방울 눈 속에 가득한데
붓에 가득 찍어서 '상사'라는 두 글자
뜰 앞에 나비 쌍쌍이 서로 안고 떨어지네.
滴取相思滿眼淚    濡毫料理相思字
적취상사만안루    유호료리상사자
庭前風吹碧桃花    兩兩蝴蝶抱花墜
정전풍취벽도화    량량호접포화추

상사(相思)는 글자 그대로 뜻을 보면 서로 생각하다는 뜻이다. 사전적인 뜻은 부연 설명을 가하면서 ‘서로 생각하고 그리워함’이란 뜻을 내포하게 된다. 상사는 남녀가 어떤 이유이던 이별을 하고 서로 만나보고 싶어 안달을 내는 그런 상황을 말하여 별리의 아픔 덩이를 한 아름 안고 있다. 상사화(相思花)란 꽃이름도 떠올리게 된다. 뜰 앞에 바람이 불어 벽도화 앞을 지났더니 / 쌍쌍이 나비들이 서로 품에 안고 그렇게 떨어지네 라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붓에 가득 찍어서 ‘상사’란 두 글자를 써보네(春日奇書)로 번역해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지재당(只在堂) 강담운(姜澹雲)으로 조선 후기의 여류시인이다. 김해 기생으로 고종 때 차산 배전이란 사람의 소실이었다. 그의 생활은 대단히 외롭고 쓸쓸하여 시의 분위기도 매우 애상적으로 보인 작품이다. 자신의 삶을 술회하거나 일상에서의 감회를 적고 있는 것도 특징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그리움의 눈물 방울이 눈에 가득히 어리어 있는데 / 붓에 가득 찍어서 ‘상사(相思)’란 두 글자를 써보네 // 뜰 앞에 바람이 불어 벽도화 앞을 지났더니 / 쌍쌍이 나비들이 서로 품에 안고 그렇게 떨어지네]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봄날 편지를 쓰면서]로 번역된다. 봄은 여자의 계절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라고 했던가. 봄이 되니 여인만이 느낄 수 있는 춘사(春思)가 매우 깊었던 모양이다. 멀리 떠나 있는 남편의 그리움이었을 것이다. 물씬 풍기는 봄내음과 성큼성큼 다가오는 봄처녀의 발걸음은 더했던 것은 아닐까 본다. 보고 싶은 마음에 두서없는 편지를 써보았다. 그래도 그리움을 더했으리니.
시인의 봄은 이렇게 해서 무르익어 가고 있었다. 그리움 덩이가 눈물 방울이 되어 눈에 가득히 어려 있었기에 붓에 가득 찍어서 ‘상사(相思)’란 두 글자를 또렷하게 써보았다고 라고 했다. 실체가 없어 눈에 보이지 않았던 그리움이 얼마나 컸으면 실체가 보이는 눈물 방울이 되었겠는지 충분하게 상상하게 된다.
 화자의 시적인 반전은 그리움과 눈물이 뒤범벅이 되었다가 낙화와 함께 뜰 앞으로 떨어졌다는 새로운 시심을 만나게 된다. 그리움의 덩이가 뜰 앞에 바람이 불어 벽도화 앞을 스쳐 지나더니만 쌍쌍이 날아다니던 나비들이 품에 안고 땅으로 결국엔 떨어지더라고 했다. 임을 보고 싶은 그리움 덩이가 땅에 떨어졌다는 시상을 만난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눈물 방울 어리어서 상사라는 두 글자만, 벽도화의 앞을 지나 쌍쌍 나비 떨어지네’라는 시인의 상상력과 밝은 혜안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한자와 어구】
滴取: 방울이 어리다. 혹은 취하다. 相思: 그리움. 滿眼淚: 눈물이 가득 어리다. 濡毫: 붓에 가득하다. 料理: 찍다. ~을 어떻게 하다. 相思字: ‘상사’라는 두 글자. // 庭前: 뜰 앞에. 風吹: 바람이 불다. 碧桃花: 벽도화. 꽃 이름.  兩兩: 쌍쌍이. 蝴蝶: 나비. 抱花: 꽃을 품에 안다. 墜: 덜어지다./<문학평론가ㆍ시조시인/사)한교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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