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압된 내면아이-올바로 사랑하기
 

’억압된 내면 아이‘? 이 아이는 강압적인 부모 밑에서 만들어 집니다. 이 칼럼을 읽고 계신 독자들 중 현재 중년이신 분들이라면 대부분 아주 엄한 아버지 밑에서 자라셨을 겁니다. 자신의 말이 곧 집안의 법이었던 전제형 부모, 흔히 말하는 ‘엄한 부모’는 대부분 강압형 부모였습니다. 강압이라는 말의 뜻이 무엇인가요?  ‘힘 있는 자가 힘없는 자를 힘으로 밀어 부치는 것’, 그 것이 강압 아닙니까?  강압형 부모는 자식이 원하지 않는 것을 힘으로, 즉 강제로 하게하고 원하는 것을 역시 힘으로, 즉 강제로 하지 못하게 하는 부모입니다. 좋은 부모란 아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아이의 욕구에 관심을 맞추지만 그렇지 않은 부모는 아이가 아닌 부모 자신의 욕구에 관심을 맞춥니다. 아이가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는 관심이 없고 어떻게 하면 자신의 욕구를 아이에게 관철시킬까 하는 데에만 집중합니다. 즉 자기가 원하는 틀에 아이를 끼워 맞추는 것이지요. 이런 부모는 대부분 자신의 열등감을 자식에게서 대신 보상받으려는 무의식 속의 욕구를 가지고 있습니다. 즉, 자신이 못다 이룬 꿈을 자식을 통해 대신 이루어 보려고 필사적인 발버둥을 치는 것이죠. 그러는 사이에, 아이는 말없는 양초처럼 녹아 없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아채지 못한 채 말입니다. 그러나 꼭 기억해 주십시오. 부모의 인생을 대신 살아 주기 위해 희생자로 이 세상에 온 아이는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강압적인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기를 펴지 못합니다. 부모의 기가 더 강하고 더 세니까요. 이렇게 자란 아이들은 대개 순종적이지요. 대부분의 부모들은 아무 것도 모르고 만족해합니다. 그러나 순종 뒤에 싹트는 것은 아이 자신의 죽어감이거나 분노입니다. 겉으로는 감히 드러내지 못합니다. 즉, 감정을 표출하지 못하고 안으로 안으로만 꾹꾹 묻어 둔다는 말입니다. 감정의 억압, 거기서부터 인간의 불행이 싹트는 거라고 이전 여정에서 말씀 드렸던 적이 있습니다.
 ’네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 성서에 나오는 말입니다. 아이의 내면에 분노, 즉 화를 심어주지 말라는 말이지요. 이 ’화‘는 평생 아이의 삶을 불행으로 끌고 가니까요. 여러분이 지금 아이를 키우고 있는 부모라면 진지하게 자문해 보십시오. 여러분의 관심은 어디에 맞추어져 있습니까? 아이의 욕구인가요, 아니면 부모자신의 욕구인가요? 대학생 이상의 자녀를 둔 부모라면 키웠던 날들을 한 번 되돌아 보십시오. 더 늦기 전에, 미안하다는 말을 해야 할 때가 바로 지금이 아닌지 말입니다. 진심을 담은 미안하다는 말은, 때론 사랑한다는 말보다 더 큰 위력을 발휘한다는 사실을, 치유여행 오늘 여정에서 꼭 말씀 드리고 싶었습니다. 주머니 속의 내 소유물이 아니라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 그들이 바로 소중한 우리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행여라도 자녀의 욕구에 관심의 초점을 맞춘다는 것을 자녀가 원하는 것은 뭐든 다 해주고, 자녀가 하자는 대로 끌려 다니는 것으로 오해하는 분이 계시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 것은 사랑이나 존중이 아니라 ’과잉보호‘라는 이름의 또 다른 결박이자 상처이기 때문입니다. 삶의 구석구석에 아프게 남아 무기력이라는 이름으로 발목을 잡고, 더 심하면 세상이 무서워 아예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그저 하얗게 질린 채 서있을 뿐인 사람을 만듭니다. 그런데 무서운 것은 우리가 이 과잉보호를 사랑인줄 착각하고 행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마치 오래 가만히 웅크리고 있다가 갑자기 덤벼드는 사나운 짐승처럼,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야 그 무서움을 안 뒤에는 이미 수습하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상처와 이기심으로 가득한 인간이라는 존재는 올바로 사랑하는 방법조차 모른다는 사실을, 우리는 빨리 인정해야 합니다. ’올바로 사랑하는 방법‘, 그 길을 찾는 여정에 치유 여행이 여러분과 함께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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