渡浿江(도패강)/석북 신광수
물 건너 누대 모양 점점 더 희미하고
청산에 절반이나 황혼 빛에 물들었네
이별이 다정함 속에 돌아누운 어둔 숲.
樓臺隔水更依依    南浦靑山半夕暈
누대격수갱의의    남포청산반석훈
行入長林漸不見    多情如別美人歸
행입장림점불견    다정여별미인귀

중국 대륙을 가려면 대동강을 건넜다. 평안남도 남서쪽에 있는 항구 도시인 남포(南浦)는 외국으로 떠나는 사신이나 시인들이 손을 흔들고, 눈물을 흘리면서 떠나는 사람을 전송했던 곳이다. ‘이별가의 꽃’라고 불리는 정지상의 송인(送人)을 굳이 생각하지 않더라도 남포는 이별의 정한을 고스란히 간직한 곳이 남포였으리. 시인은 황혼에 물든 남포의 청산을 바라보며 미인과 이별한 뒤에 다정함이 어두운 숲속으로 다시 돌아온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미인과 이별 뒤에 다정함만이 돌아오는 듯해라(渡浿江)로 번역해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석북(石北) 신광수(申光洙:1712∼1775)로 조선 후기의 문인이다. 다른 호는 오악산인(五嶽山人)으로 알려진다. 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 신호이며, 어머니는 통덕랑 이휘의 딸이다. 서울에서 태어났으나 13세 때 부친을 따라 충청도 한산으로 낙향하여 오래 지냈다. 집안은 남인이었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물 건너 누대는 점점 더욱 희미해 지고 / 남포의 청산은 절반이나 황혼 빛에 물든다네 // 걸어서 긴 숲에 들어가니 점점 보이지는 않았고 / 다정함만이 미인과 이별 뒤에 돌아오는 듯도 하여라]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대동강을 건너며]로 번역된다. 시인은 석북은 궁핍해져서 가산과 노복을 청산하고 손수 농사를 짓기도 했다고 전한다.
이때 몰락양반의 빈궁과 자신의 처지를 읊었던 [서관록]을 썼는데, 뒷날 역작 [관서악부]를 짖는 계기가 되었으며 여기에는 많은 시가 실려 있다. 여행의 경험을 통해서 아름다운 자연과 향토풍물에 애착을 느끼고 생활하는 민중의 애환을 그린 작품집으로 알려진다.
시인은 해가 넘어가고 희미한 저녁에 대동강을 건너기 직전의 심회를 나타냈다. 물 건너 보이는 누대는 점점 희미하고, 남포의 청산은 반쯤 황혼에 물드는 풍경을 그렸다. 잠시 숲속에 들어가 사방이 보이지 않으니 미인과 이별한 뒤 다정함이 물밀듯이 밀려든다는 심회를 읊는다. 해가 누엿누엿 넘어가는 그런 저녁이었던 모양이다.
화자는 중국을 향하는 배를 잠시 기다리는 동안에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는 남포의 정경 속에 미인과의 다정했던 추억을 더듬고 있다. 걸어서 긴 숲에 드니 점점 보이지 않으니, 다정함이 미인과 이별 뒤 돌아오는 듯이라 했다. 시인이 아니라도 이별 뒤에 오는 그리움은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누대는 더욱 희고 남포 황혼 물이 드네, 긴 숲속을 들어가니 미인 이별 돌아온 듯’이라는 시인의 상상력과 밝은 혜안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한자와 어구】
樓臺: 누대. 隔水: 물 건너. 更: 더욱. 依依: 희미하다. 南浦: 남포. 靑山: 청산. 半夕: 절반. 暈: 황혼빛. // 行入: 걸어서 들어오다. 長林: 긴 숲. 漸: 점점. 不見: 보이지 않다. 多情: 다정함. 如別: 이별한 것 같다. 美人: 미인. 사랑하는 여인. 歸: 돌아오다. 돌아가다.
<문학평론가ㆍ시조시인/사)한교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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