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를 가치있는 사람이라고 평가하는 마음 자존감, 어떤 사람은 이 자존감이 높고, 어떤 사람은 낮기도 합니다. 후천적으로, 즉  살면서  이 자존감은 여러 가지 환경적 요인에 의해서 높아지기도 하고 낮아 지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학생은 공부를 잘해서 좋은 성적을 받았을 때 자존감이 높아지고 회사원은 승진하거나 좋은 부서에 발령을 받았을 때, 혹은 업무 실적이 좋을 때 높아집니다. 한마디로 사회적으로 성공해서 세간의 부러움을 살 때 높아진다는 말이지요. 그런데 답은 거기에 있지 않습니다. 무언가 성과가 있어야 높아지는 자존감은 매우 조건적이고 매우 일시적이고, 따라서 언제 변할지 모르는 불안한 유동성을 띄지요. 이런 자존감은 그 조건이 사라질 때 여지없이 실추되고 맙니다. 우리의 진짜 자존감은 어렸을 때 이미 그 틀이 형성된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는지요?
 예쁘게 생기지 않아도, 공부를 잘 하지 못해도, 옆집아이보다 무엇인가를 잘해서 상을 받아오지 못해도 그냥 존재 그 자체로 사랑을 받은 아이에게 생겨나는 자존감, 이 것이 진짜 자존감이고 절대적인 자존감입니다. 이런 자존감은 어떤 상황에서도 좀처럼 변하지 않지요. 실패를 해도 금방 다시 일어난다는 말입니다. 이런 아이들은 결코 성적이 떨어졌다고 자살하지 않습니다. 다시 일어나면 된다고 믿으니까요. 마치 건물의 기초가 튼튼하면 왠만한 일에도 잘 무너지지 않고, 혹 일부가 손상되어도 쉽게 복구할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이렇게 중요한 절대 자존감은 언제, 어떻게 튼튼하게 만들어지는 걸까요? 말할 것도 없이 부모의 건강한 양육태도로 인해 만들어 집니다. 양육태도가 올바르지 않으면 우리의 자존감은 상처를 입는다는 말입니다.
 부모의 양육태도에는 여러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독재적이고 강압적인 부모 밑에서는 억압된 아이가 자라나고 억압된 낮은 자존감이 만들어 집니다. 그리고 그 ‘아이’는 세월이 흘러 나이가 들고 어른이 되어도 좀체로 자라나지 않습니다. 즉 상처를 받은 그 시점, 그 자리에서 성장을 멈추어 버리는 겁니다. 겉모습만 어른이 된 채 내면에는 어린 아이의 생각, 어린 아이의 감정, 어린 아이의 생존 방식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거지요. 심리학에서는 인간의 내면에 살고 있는 이 아이를‘내면 아이’라고 합니다. 많이 들어 보셨죠? 하지만, 자기 안에 정작 어떤 내면아이가 있고, 자신의 삶이 그로부터 어떤 영향을 받고 있는지를 사람들은 잘 모른 채 살아갑니다. 그 영향력 이란 게 삶을 들었다 놨다 할 만큼 보통이 아닌데도 말이죠. 
그 안에 내면 아이를 가진 사람은 사는 동안 내내 이 ‘화’를 품은 내면 아이의  상처 때문에 울고, 어른이면서도 종종 아이같은 생각을 하고, 아이같은 판단을 하고, 아이같은 행동을 합니다. 내면 아이가 그렇게 하는 것이지요. 즉 내 안에 나를 끌고 다니는 또 다른 내가 있는 셈입니다. 겉은 어른인데 속은 여전히 아이인 성인, 이런 사람을 우리는 ‘성인 아이’라고 부릅니다. 정도의 차이만 다를 뿐, 우리들 대부분이 그렇습니다. 정도가 아주 심하면 여러 가지 서로 다른 모양의 이상현상이 나타나니, 치료의 대상이 되는 거지요. 우리들 안에 울고 있는 이 내면아이, 상처 받아 성장을 멈춘 채 삶의 여기저기를 구멍 내고, 성인인 우리를 여전히 미숙한 인격의 어린아이로 살게 하는 이 내면아이는 반드시  다시 성장시켜 주어야 합니다. 즉 치유되어야 한다는 뜻이지요. 그렇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그 아이의 영향력에 휘둘려 삶이 힘들뿐 아니라, 나이를 먹어서도 괴팍하거나 다루기 힘든, 아니면 무기력하고 외로운 노년이 되고 마는 겁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와 고통을 주는 건 말할 것도 없지요. 특별히 가장 가까운, 가장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말입니다. 어떻게 하면 이 내면아이를 치유하고 다시 키워 올릴 수 있을까요?, 치유 여행이 그 길에 여러분과 함께 하겠습니다.
/팟빵 및 유투브에서 ’치유여행‘ 으로 다시 듣기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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