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읍 교촌리는 남외 삼리인 남외,충렬리와 한 마을의 형국이다.
행정 구역상으로는 장흥읍이지만 행정, 문화, 상업 지역과는 동떨어져 있는 지형이어서 마치 분지나 섬처럼 외지고 낙후된 마을이다. 하여 이 남외 삼리마을에는 상업 업소 제조 업소 기관 단체 하나 없는 적요한 지역이다.

대외적으로는 향교가 소재하고 천도교장흥교구 본부가 있고 장흥동학농민혁명기념관이 있으며 체육관과 공설운동장, 장흥문예회관 테니스장,국궁장이 지척이니 종교 문화 체육의 분야를 고루 향유하는 마을로 보일수도 있다.

그러나 주민들의 삶의 수준과는 어울리지 않은데다 교류도 없어서 그림의 떡 같은 시설들이다. 돌이켜 보면 예전에는 장흥부의 관인들이 많이 거주하였고 60-80년대에는 장흥읍 5일 시장의 상인들과 공무원들이 살고 있어서 제법 행세하는 마을이었고 특히 장흥의 전통 농악인 ‘버꾸놀이’가 성행하여 이 지역의 대표적인 민속놀이인 ‘장흥 고싸움 줄당기기’를 선도하는 마을이었다. 그 향사들은 이제 흘러간 이야기일 뿐이었다.
이 적요하던 마을에 생각하지도 않았던 변화가 찾아 왔다.

2009년 석대들녁과 연계된 이 마을 일원이 국가지정문화재 사적지 제498호로 지정되었다. 1894년 근세의 큰 사건이었던 ‘동학농민혁명’의 최후 전적지로 그 역사적 가치가 조명되어 남외3리와 인근 지역이 사적지로 지정된 것이었다.

장흥 역사의 의로운 흐름이 재조명되고 갑오년의 그 참담한 저항의 정신이 형상화되는 것은 참으로 바람직한 일이었다. 그러나 현지의 주민들은 사적지 지정으로 마을의 발전적인 계발과 주택의 증,신축 제조업 유치가 제한되는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는 형편이 되었다.
하여 남외3리 주민들은 2년여 동안 농성을 하면서 사적지 지정을 수용하되 규제완화와 마을발전의 사업들을 지원해 줄 것을 요구하였다.

그 2년여의 외롭고 힘겨운 농성의 결과는 어떠 했을까. 사적지의 규제는 일부 조정되었다.
그 기간 동안 마을을 찾아와 주민들과 대화했던 공직자들은 다양하고 풍성한 약속들을 제시하였다. 그 모든 약속들은 허언이었다. 주민들이 믿고 기다렸던 찬란한 약속들은 거의 반영되지 않았고 직책이 바뀐 담당 공직자들은 두번 다시 마을을 찾아오지 않았다.
마을 주민들은 자체적으로 마을의 발전을 도모하기로 하였다.
하여 목포대학교의 농촌활성화지원센터와 연계하여 현장 포럼을 개최하고 교육에 참여하고 선진지 견학을 하면서 주민의 역량을 키워 나갔다.

그 과정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현장 포럼, 역량 교육, 퍼실리티 이수 그 생소하고 어색한 내용들을 소화하면서 조금씩 모양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

그 결과 2015년 ‘색깔 있는 마을’로 지정되었고 2016년에는 ‘창조적 마을 만들기’ 사업 공모에 당선되어 5억여원의 예산을 지원 받을 수 있었다.

‘문화 복지 공동체 마을’을 만들기 위한 교촌리 주민들은 그간 30여회 동안 현장 포럼, 역량교육,현지 견학등의 모임을 가졌다. 그 과정들이 결코 순탄하지 만은 않았다.
고령층이 대부분인 주민들의 생각은 천차만별이었다. 혹은 단순하고 개인적이었으며 주제를 이탈하기도 하였다. 힘 겨웁고 나정 났으며 실망스럽고 더디었다.

그러한 과정을 겪으며 주민들은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순박한 이웃들은 대화를 통해서 이해하고 양보하고 협조하는 분위기를 만들어 내었다.
하여 금년 7월중에 실시된 3회의 주민 역량교육은 놀라운 이야기들을 만들어 내었다.
평소 10여명 모이기가 어려운 회의, 교육에 20여명의 주민들이 참석 하였고 서로 연락하고 독촉하면서 미리 회관에 나와 청소를 하고 음료를 준비하는 아름다운 모양을 보여 주는 것 이었다. 지난 7월11일 교촌리 주민들과 아주 낯선 이야기인 ‘우분트(UBUNTU)’를 주제로 토론을 하였다.

-한 인류학자가 아프리카 부족에 대해서 연구하는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어느 지역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놀이를 제안하였다. 일정한 거리의 큰 나무 옆에다가 아프리카에서는 생산되지 않은 달고 싱싱한 딸기 한 바구니를 놓아두고 말하였다.
“자 저 바구니의 딸기는 너희들중 가장 빨리 달려서 1등을 한 아이에게 전부 먹게 하겠다. 내가 신호를 하면 달려 가야 한다”

인류학자의 예상은 아이들이 서로 밀치고 잡아 당기는 치열한 경쟁이었다. 그러나 아이들은 놀라운 광경을 보여 주었다. 아이들은 약속이라도 한듯이 일열 횡대로 정렬하여 손을 잡고 달려가서 바구니의 딸기를 함께 나누어 먹으며 즐거워 하였다.

인류 학자가 물었다.
“왜 너희들은 함께 달려 갔느냐? 누구든지 먼저 달려간 아이는 더 많은 딸기를 혼자 먹을 수 있을텐데..?”
그 말을 들은 아이들은 합창이라도 하듯이 대답했다.
“우분트..!!!”
아프리카 반투족의 말인 우분트는 “네가 있기에 내가 있다 I am because you are”라는 뜻이며 광의적으로는 “다른 사람이 불행 한데 나만 행복 해서는 되나요”로 해석 할 수도 있다고 한다.
이 토론 후에 우리 이웃 아짐들이 말 하였다.
“간식 하나도 늦게 온 사람 몫 냉겨 놓고 묵어야 쓰것네”, “혼자 잘난데키 하지 말란 말이여”
“다 같이 조아야 참말로 조은 것이여”
동고동락(同苦同樂,) 상부상조(相扶相助) 사상념려(思想念慮) 고락상평(苦樂常平) 그리고 우분트.. 교촌리 마을은 이렇게 변화 발전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희망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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