錢(전)/기은 박문수
천하를 두루 다녀 어디서나 환영이라
흥망성쇠 나라살림 그 세력 무서워라
오가며 생사의 길을 마음대로 하는구나.
周遊天下皆歡迎    興國興家勢不輕
주유천하개환영    흥국흥가세부경
去復還來來復去    生能死捨死能生
거부환래래부거    생능사사사능생
 

옛날에도 그러했겠지만 요즈음은 더하여 돈의 위력은 가히 사람을 살고 죽게 만드는 위력이 있다. 그래서 현대를 가리켜 경제의 시대, 돈이 일을 한다고 하여 돈이 발이라는 말까지 서슴없이 한다. 항차 경제 사회엔 현대가 그러했다면 마패가 돈의 역할까지 했던 옛날의 실정도 돈의 위력을 가히 짐작할 수 있지 않겠는가. 천하를 두루 돌아다니며 어디서나 환영 받고, 나라와 집안을 흥성케하여 그 세력이 결코 가볍지 않네 라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사람을 살리고 죽이는 것도 마음대로 하는구나(錢)으로 제목을 붙여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기은(耆隱) 박문수(朴文秀:1691~1756)로 조선 후기의 문신이다. 1723년(경종 3) 급제해 사관이 되었다. 1724년 병조정랑에 올랐다가 노론이 집권하자 사직당했다. 1727년 정미환국으로 소론이 득세하자 사서에 등용되어 영남 암행어사로 부정관리들을 적발했던 것으로 이름이 났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천하를 두루 돌아다니며 어디서나 환영 받고 / 나라와 집안 흥성케하여 세력이 가볍지 않네 // 갔다가 다시 오고 왔다가는 또 가지만 / 사람을 살리고 죽이는 것도 마음대로 하는구나]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세상을 움직이는 돈]로 번역된다.
숱한 암행어사가 있었건만 세사에 물들지 않고 원칙대로 일을 처리하면서 세인의 입에 오른 어사로 기억한다. 관리들이 썩을 대로 썩었다는 조선 후기의 어수선한 시기였으니 그럴만도 하겠다. 시인은 서정적인 내용을 담지 못하고 돈의 위력을 먼지 떠올렸는지도 모르겠다.
시인은 돈에 대한 위상과 위용을 시에 담지 아니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시에서는 천하를 두루 돌아다니며 어디서나 환영을 받고, 나라와 집안을 흥성케하여 그 세력이 가볍지 않네 라고 했다. 돈의 위력은 예나 이제나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요즈음 우리 사회를 보면 온통 세상이 무엇이나 돈과 연관되지 아니한 일이 없다.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일에서부터, 매사가 그렇다.
화자는 돈이 많은 사람들의 손에 들어갔다 다시 나왔다 하지만 그래서 위용은 생명까지도 담보로 한다는 뜻을 담아냈다. 돈이 갔다가 다시 오고 왔다가는 또 가지만, 사람을 살리고 죽이는 것도 마음대로 하는 것이 돈의 위력이구나 하는 시상이다. 많은 사람들이 질곡의 삶을 살아가지만 돈에 대한 불가피성을 강조하고 있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천하 두루 환영받고 나라 흥성 세력 많네, 왔다가 다시 가나 죽고 살기 마음대로’라는 시인의 상상력과 밝은 혜안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한자와 어구】
周遊: 두루 돌아다니다. 天下: 천하. 皆歡迎: 다 환영을 받다. 興國: 나라를 흥하게 하다. 興家: 집안을 흥하게 하다. 勢不輕: 권세나 세력이 가볍지 않다. // 去復還來: 갔다가 다시 돌아오다. 來復去: 왔다가 다시 가다. 生能死捨: 사는 것도 능히 죽여 버리다. 死能生: 죽는다자 능 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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