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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부기 첫 시집 출판기념회 “세월의 흔적”홀로 갖추었고, 홀로 넉넉한 자유를 만나다
박주현  |  regensdorf@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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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7.13  10:5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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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확실하게 우리가 알기위한 노력이 지금까지 알고 있던 상식과 지식이 자신을 얼마나 버티어 주었는가를 앨깨웠는지 생각을 해보았다.

아마도 지금의 만족에 멈추지 못하고 더 나은 가치를 위해 자신을 부지런히 째직질 하는 수고를 시도하는지 모르겠다.
우리들은 미래의 더 큰 가치를 붙들기 위해 지금의 만족함이 자질구레하게 내 팽켜지는 하잘 것 없는 가치로 잊고 싶을 때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계속되는 도전속에서 사려와 분별을 무시해서는 안되는 지혜의 과제를 피할 수 없다. 그것은 필요없는 노력에 광분했던 지난 날을 깊이 반성하는 보석과도 같은 깨우침을 불러들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자신을 더 높이 크게 가치를 상승시키는 진정한 노력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어느 꿈 읽는 사내의 그림자

지난 10일 화요일 군민회관에서 부산면 환경미화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조부기씨의 시집출판기념회가 있었다. 흔히 환경미화원 하면 도로변이나 시설물을 청소하거나 쓰레기를 수거하는 3D 즉 Dirty 더럽고, Dangerous 위험하고, Difficult 어려운 기피직종분야의 사람을 연상하게 한다. 그러나 요즈음은 근무조건도 향상되고 정년이 보장되고 퇴직 후에는 공무원과 같은 연금도 받을 수 있어서 환경미화원도 수년 전부터 경쟁률이 수 십대 일에 육박하는 제법 취업자들에게 관심을 갖는 직종이 되고 있다.
그러나 업무의 성격상 일반 공무원에 비해 아직까지는 차별 인식은 그대로 남아 있어서 직업에 대한 자부심은 갖지 못하는 것 또한 현실이다.
처음에 문병길 부산면장으로부터 조부기씨의 시집 출판기념회 참석을 연락받고 간단한 지역소식으로 신문에 기재나 해볼까 하는 별로 관심 없이 행사 시간에 맞추어 군민회관을 찾아 갔다.
생각한대로 빈자리가 기대되지 않는 참석자를 기다리는 분위기가 연출되는 썰렁함이 짙게 깔리는 행사장이었다
행사가 시작할 즈음에 정종순 군수와 의회의장인 위등 군의원이 행사장에 나타났다.
비록 빈 자리는 계속 참석자를 기다리고 있었으나 군수가 자리를 함께 한 것이 써늘한 빈 공간에 마음 쓰이는 아쉬움을 달래주었다. 행사가 시작되면서 다행히 많은 수는 아니지만 빈 자리를 채워주는 사람들의 느린 수 채움으로 빈 공간을 어느 정도 채워 주었다.

빈 공간을 채우는 시의 세계

 행사장을 스켓치 하는 카메라 앵글에도 관객들의 모습이 아까와는 다르게 어느 정도 공간의 여백을 채워주었다. 문병길 면장이 오늘 출판기념회를 설명해 주기 위해 행사장의 빈 공간을 이러저리 휘젖는 내 발길을 멈추게 했다. 시집을 낸 조부기씨가 강성노조인 민주노총 산하의 지역 환경미화원 노조위원장이라는 소개와 함께 바쁜 업무의 무게를 이기고 틈틈이 자신의 영혼을 기록해 놓은 시집을 읽노라면, 마음의 평화를 느낄 수 있다는 시에 대한 찬사를 이야기 해주는 문 면장의 설명을 들으면서 시인의 성격을 나름대로 판독했다.
문 면장은 자신의 이해력을 그대로 내 머리에 심어주려는 뀌뜸이 미리 짐작한 오늘의 시인에 대한 나의 사고속에서 하나의 명령어로 받아졌다. 문면장이 그렇게도 열심히 설명해 주는 출판기념회를 갖는 시인이 바쁜 일과를 통과하면서 틈틈이 시를 써내려간 기특함에 대한 찬사가 나에게는 선뜩 침식되지 않는 오류로 받아드려지고 있었다.
그의 시는 보나마나 분노와 저주가 널뛰는 사회에 대한 저항의식으로 도배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에 그의 시에 대한 기대감이 퇴색되어 가는 속도가 멈추지 않았다. 더 이상 행사장에서 이런 저런 스케치를 할 욕심이 나를 떠나고 있었다.
안내 테이블에 가서 보도 자료나 얻어서 신문 한귀퉁이에 기사 몇 줄 쓰겠다는 생각으로 시집한 권을 구했다.
그러나 시집 출판기념회에서의 나의 생각은 그의 시집을 펴 들면서 무차별하게 공격을 받았다.

비움과 욕심/조부기 지음
가난이 싫다고 아등바등
몸부림치며 세상 욕심 가득 찼구나
부(富)가 산을 이루나
붉혀 날름거리며
찌억 갈라진 화구(火口)가 한순간 삼키니
잿더미를 덮어쓴 가난과 부
무엇이 대리석이고
무엇이 나무 기둥인지
구분이 없구나

형체를 잃어버린
욕심은 너덜너덜 해지고
눈물짓는 한숨 속에
고개 들어 웃을 수 있는 것이
진정한 보석이라네
부러움이 될 수 없는 풍족함

그의 시에서는 가난을 탓하거나 풍족함을 부러워하는 글을 만날 수 없었다. 더욱이 사회에 대한 저항같은 것은 찾아 볼 수 없었다. 나중에 주위 사람들을 통해 들은 이야기는 시류에 영합하거나 비관적인 사고(思考)에 몰입되지 않는 세상의 밝음을 쫓아 사는 마음이 맑은 사람이라고 그를 평가하고 있었다. 

그는 비록 부유한 삶을 살지는 못해도 사치에 대한 동경심이나 부를 충족시키기 위한 노력은 그에게는 맞지 않는 옷을 입은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라고 자신의 부족함에 연연하지 않는 그가 누리는 마음의 여유를 오히려 부러워 말하던 사람의 생각을 그의 시를 읽으면서 이해할 수 있었다.

처절하고 막막했던 생활의 질곡에서 혹시라도 마음에 일어날 수 있는 한 맺힌 분함에 자신이 점령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피하고자 했던 것이 자신과의 싸움이었다고 말하는 조부기씨의 모습은 진실이 잘 익은 정의로움으로 가득 채워진 그의 가슴을 읽을 수 있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자신의 열악한 환경에 주눅 들지 않았다는 그의 넉넉함에 슬며시 나의 습작이 쥐구멍을 찾는다. 자신의 경제적 어려움을 탓한 적이 없었다는 자신의 작은 포부의 세계를 애써 작게 표현하는 그의 얼굴에는 가식(假飾)과 형식(形式)의 치장이 없었다.
삶을 진실로 해석하면 누구에게나 전혀 특별하지 않다는 그의 시에서 읽혀지는 양식은 세상을 오로지 지식의 잣대로 살아가는데 익숙한 나에게 참 삶을 살아가는 무언의 지침서로 나를 일깨워 주었다.

사랑도 자기류(自己流)의 사변(思辨)속에서는 꽃을 피울 수 없다

조부기씨 그는 난(蘭)을 유독히 좋아한다고 했다. 정성이 결여되면 난(蘭)은 결코 생명의 시간을 연장할 수 없다는 난의 삶을 읽었다는 조부기씨 그가 난을 좋아하는 이유는 아주 새로운 이야기로 받아드려졌다.

가난도 좋아라/조부기 지음
가슴이 저려오는 아련함에도 웃음이 납니다.
허기졌으나 배가 부릅니다.

난 먹을게 없었지만
시장 만두가게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만주 찐빵, 통닭 튀기는 냄새
냄새만 맡고도 행복했죠

밀가루 반죽으로 밥 대신
풀어 국을 끓여 먹던 슬픈 시절
그 시절 그때를 아시나요

고별무대/조부기 지음
숨죽여 우는
단풍잎의 눈물
붕붕 낮은 울음소리
또 이렇게 사라지는가

화려한 분장으로
무대에 섰던 단풍잎들
화장을 지우고 쓸쓸히 내려와

떠나야 하는
고별의 무대
내 모습 초라하구나
빛바랜 화장기없는
얼굴로 다시 무명의
자리로 돌아가며

무참히 바람 속으로
퇴장해가는
가을 낙엽의 고별 무대

그는 자신의 시(詩)에서 혹시라도 이야기에 이해가 메마를 까봐 시(詩) 말미에 ‘아시나요’ 라는 물음으로 마치곤 한다.

그의 글에서는 노여움이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 왜 내가 그의 시에서 이토록 이분법적 사고를 애써 구사하려고 하는지 나 자신을 리트머스 실험에 투입시켜 보았다. 슬픔도 고통도 너무나 과감하게 쏟아낸 조부기씨의 시는 내가 범하지 못하는 감정의 깊은 골을 그대로 내 가슴에 옮겨 주었다. 오히려 읽는 나에게 새로운 시선의 방향을 제시해 주었다.

그가 걸어 온 직업으로 보아 편안하게 여유를 갖고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의 충족함은 그에겐 없었으라 생각이 든다. 평범한 생각이고 일상의 모습들이지만 그의 시를 통해 사람들이 열심히 일하는 뚜렷한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갖고 싶은 물건을 소유하려는 방법과 수단이 결국은 더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욕심을 품고 있다는 것을 아주 당연하게 받아 드려진다면, 허위와 막연한 성취욕에서의 방황과 위선은 우리들로 하여금 그 성장을 멈추게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교훈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모든 사람들이 이런 생각속에서 그의 시를 읽어주면 깊이 숨겨진 모두의 감정이 순화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나의 외식(外飾)을 투명하게 읽어 내린 그의 시에서 아직까지 지켜왔던 가미(加味)된 내 지식이 그에게 항복을 선언하기에 이르렀으며 이미 그 초라함이 들어나고 말았다.

그의 시(詩)는 나의 연마(鍊磨)된 과장의 바벨탑을 허무르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좌절과 고통이 아니라 세상을 읽어가는 약삭빠른 지혜와 진한 화장술로 치장한 언어와 글을 숨기고 싶은 민망한 나의 모습으로 비추어 지고 있다.

   
 
   
 

역사도 노력하는 자에게 그 흔적이 되 살아난다
조부기씨와 인터뷰에 자리를 함께 한 문병길 면장은 이렇게 자신의 삶터에서 묻어나는 이야기들이 아름다움으로 승화될 수 있는 바탕에는 옛 부터 부산면이 다른 지역과는 달리 자연적인 유치(幽致)속에서 삶의 깊이를 읽을 수 있는 여유가 깊이 뿌리내려 있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얻었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그는 탐진강 변에 남아있는 정자를 보면서 옛 선인들의 발자취에서 지금도 그 기운이 느껴지는 문학적인 면면을 감상할 수 있다고 한다. 그는 사라진 정자들을 복원은 못하여도 그 흔적이라도 보전하기 위하여 그 자리에 작은 기념패를 만들어 부산면에 감추어진 선비들의 혼과 가르침을 널리 전파하고 싶다는 의욕 넘치는 그의 모습이 장엄한 환영(幻影)으로 떠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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