野薔薇(야장미)/노가재 김창업
 

해마다 들판에서 향기를 퍼트릴 때
홀로피어 지는 꽃을 그 누가 감상 하리
농가의 밭갈이 할 때 알아차려 할 뿐이오.
每年승塹雪紛紛    馥郁淸香遠近聞
매년승참설분분    복욱청향원근문
自落自開誰復賞    田家只用候耕耘
자락자개수복상    전가지용후경운
 

들장미라고 했다. 비록 찬 서리를 맞고 외롭게 피어있는 꽃이 집안에서 피면 사랑스럽기라도 하련만, 사람 눈에 보이지도 않고 외롭게 피어있는 들장미는 애잔하기 그지없다. 향기를 펴뜨릴 길이 막막하여 가슴 깊이 간직하고 있다가 사람이 도로변을 스치면 몽땅 향기를 쏟아내는지 향기 투성이임을 직감한다. ‘향기의 깨어남’과 ‘진리의 깨달음’이 함께 베어나는 느낌을 받는다. 농가에서 밭을 갈고 김맬 때나 그 향을 알아낼 뿐이라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홀로 피고 지는 저 꽃을 누가 감상 하리오(野薔薇)라고 번역해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노가재(老稼齋) 김창업(金昌業:1658~1721)으로 조선 후기의 문인, 화가이다. 다른 호는 그냥 가재(稼齋)이고도 했다. 영의정 김수항의 아들이다. 형 김창집이 사은사로 청나라에 갈 때에, 그를 따라 연경에 다녀와 기행문 <노가재연행일기>를 썼고 한다. 저서에 <노가재집>이 있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해마다 들판과 구덩이에 흰 눈을 흩날리며 / 먼 곳 가까운 곳에 짙고 맑은 향기를 퍼뜨리면서 피네 // 홀로 피고 지는 저 꽃을 누가 감상 하리오만 / 농가에서 밭갈고 김맬 때를 알아낼 뿐이라네]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울타리에 핀 찔레꽃]로 번역된다. 들장미 혹은 찔레꽃이라고 한다. 장미과에 속한 낙엽 관목이다. 가지에는 가시가 있고 타원형으로 생긴 잎의 가장자리에는 톱니가 있다. 5월에 흰 꽃이 원추(圓錐) 꽃차례로 피고 10월에 열매가 붉게 익는다. 울타리나 관상용으로 많이 심고 열매는 이뇨제로 쓴다고 한다. 우리나라 대부분 지역에서 잘 자란 흔한 식물이다.
흔히 울타리 가에서 아무렇나 피어있는 들장미를 보면서 시인의 생각을 엇갈렸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선경의 시상은 들장미가 해마다 들판과 구덩이에 흰 눈을 흩날리면서 먼 곳 가까운 곳에 짙고 맑은 향기를 퍼뜨리면서 핀다고 했다. 사람의 관심 밖에 있는 자리에서 어떤 시가를 알려줄 양으로 외소한 몸짓을 하고 피어오른다고 했다.
 화자는 들장미와 속삭이듯이 대화라도 할 양으로 혼자 말로 중얼거려 본다. 후정은 시상은 홀로 피고 지는 저 꽃을 누가 마음에 담아 감상할 수 있으리오만은, 농가에서 봄이면 밭을 갈고 김맬 그 때를 알려줄 뿐이라고 했다. 겨우내 움추렸던 어깨를 펴고 이젠 농사일에 열심히 해야 되지 않겠느냐는 메시지겠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들과 구덩이 흰 눈 날려 맑은 향기 퍼뜨리네, 꽃은 누가 감상하리 김맬 때만 알아볼 뿐’라는 시인의 상상력과 밝은 혜안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한자와 어구】
每年: 해마다. 승: 밭두둑. 塹: 구덩이. 雪紛紛: 눈이 날리고 날리다. 馥郁: 향기가 성하다. 淸香: 맑은 향기. 遠近聞: 멀고 가까이 번지다. // 自落: 스스로 떨어지다. 自開: 스스로 열다. 誰復賞: 누가 더 감상하리오. 田家: 농가. 只用: 다만 이용할 뿐이다. 候耕耘: 밭 갈고 논메는 그런 시기나 징조./<문학평론가ㆍ시조시인/사)한교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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