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생명은 현재에 존재하지만, 사람은 현재에만 생각하고 현재에만 살아간다는 것을 깊은 진정성을 갖고 동의 하는데 둔하다. 오히려 이상(理想)에 자신의 영혼을 담보하는 꿈을 그리는 생활을 하고 있는 것에서 기쁨을 얻는 것에 동참하고 있다.
우리는 현실의 경험만 기억에 저장하는 것이 아니라 태어나기 아주 오래전부터 그 시대에서 전혀 경험해 보지 못한 그 시대의 신념과 행동을 저장하면서 자신의 삶에 혼용한다. 사람들은 고대나 중세, 그리고 현대로 나뉜 계층과 상이한 시대적 관념을 무시한 채 조각난 사고의 파편들을 빌려와서 자신들의 삶에 구성시키고 있다. 역사상 어떤 세대나 시대도 후손에 의해 영구히 환생되지 않는다. 단지 역사의 논리와 기억의 효과로 상상과 해석이 있을 뿐이다.
유행을 만들어가는 예술적 가치를 숭배하는 사람들이나 최첨단의 과학자들도 화석이 된 고대의 신념과 혹은 공룡이 꿈이 있을 것이다.

새로 습득한 취향과 지워지지 않은 혐오감의 앙금 중 어떤 것이 자신의 삶을 망치는지 급히 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사람들은 기억이 언제나 자신을 조정한다는 것을 은연중에 인정하고 있다. 창작에 몰두하는 지식의 활동도 때론 하잘 것 없는 기억에 자신의 진로가 변형되고 있음을 인지할 때가 있다.
인간의 모든 예측은 관념과 체험의 조정속에서 정리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흔히 우리의 사고를 균열시키는 분쟁들은 지나간 기억들 사이의 투쟁일 때가 많다.
우리의 관념의 범위는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로 분리되어 생각할 수 있다. 사실 우리의 삶은 이 두 가지가 함께 공존하고 있음을 깨닫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한 세계는 먹고 일하고 가족을 부양하는 눈에 보이는 세계이고 다른 하나는 갈망과 두려움, 확신과 의심, 환상과 실제, 음악과 사랑, 영성과 이상주의, 초자연적인 현상과 평범한 현실, 이렇듯 우리의 언어로 표현되지 못하는 사고의 현상이 보이지 않는 세계이다. 보이지 않는 세계는 우리의 사고에서 끈질기게 우리의 영혼을 헐 뜯고 귀찮게 한다. 우리가 철학자가 아니어도 철학이 펼치는 수많은 이상과 관점이 우리 생의 선로에서 함께 동행하고 있다.
우리는 스스로 새로운 모순의 집착으로 고민과 고뇌의 시간을 배당받는다.
이제 모든 기억에서 우리의 이상을 정제하는 기술과 기법을 배워야 겠다. 그것은 자아를 깊이 인식해 볼 수 있는 침묵의 무게이다. 기억을 심오한 자아의 깨달음으로 분석할 때 미래에 대한 전망을 측정할 수 있는 기회가 포착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인간은 과거에 환상을 품을수록 미래에 대한 생각도 환상이 될 수 있다. 시각 기억이 선명할수 록 미래는 더욱 시각적인 선명한 형태를 만들어 간다.
따라서 기억은 과거의 것만 이 아니고 미래를 구추하기 위한 생각의 자산이다. 그러나 기억이 자신을 포획하는 부분이 커지면 커질수록 미래는 그만큼 멀어지고 허망만 상승된다.  기억의 폭이 깊을수록 미래를 폭넓고 독창적으로 구상할 가능선도 줄어든다

얼마 전 공직의 수장을 지내던 분이 타의에 의해 물러나서 마음에 깊은 상처와 허탈감을 지우기 위해 전에 체험하지 못한 순행의 길에 자신을 도전시키는 모습을 접하면서 기억에 사로잡히지 않는 그가 만들어 가는 새로운 생활 리듬을 보았다. 자신의 일거수 일투족이 후임자에게 부담을 줄지 모르는 조심스러움 때문에 행동과 말을 스스로 조절하고 있다는 이야기 또한  나에게 큰 가르침이 되었다. 지금부터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과 시간을 회피하지 않으며 기꺼이 적응하는 연습을 열심히 하겠다는 그의 새로운 생활신조도 기대를 가지기에 아깝지 않았다.
지금까지 대본대로 무대위에서 자신의 뜻대로 가져보지 못한 시간이, 조금은 불편하고 생소하고 어색할지는 몰라도 이제부터는 모든 시간을 자신이 소유할 수 있다는 풍족함으로 하루 하루의 날들이 새롭게 느껴진다는 기쁨에 가득한 모습이 아름다워 보였다.
기억이 깊고 강하면 미래는 그저 상징으로 떠돌아 다니는 허상일 뿐이다. 기억을 잊어서는 안되겠지만 기역에 매어 사는 것은 더더욱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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