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누구십니까 
제가 아는 어떤 분의 이야기입니다. 그 분의 너댓 살짜리 꼬마 손주가 오랜만에 다니러 와서는 밥을 차려주려는 할머니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할머니, 나는 잡곡밥하고 나물 반찬만 주세요. 난 세상에서 그게 제일 맛있어요”...   이 꼬마가 정말 입맛이 원래 그렇게 별다른 아이인지 아닌지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 꼬마가 처음으로 잡곡밥과 나물반찬을 먹었을 때 쏟아졌을, 부모와 주변 사람들의 칭찬은 족히 상상이 되고도 남음이 있네요. 아마 그 칭찬은 ‘착하다’는 말이었겠지요. 그리고 그 꼬마에게는 ‘잡곡밥과 나물을 먹는 사람은 착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굳게 자리를 잡게 되지 않았겠습니까? 그리고 그 후부터는 착한 사람이 되려면 잡곡밥을 먹어야하고, 칭찬을 받으려면 나물을 맛있게 먹어야 했겠지요. 그 칭찬과 쏟아지는 박수갈채 속에서 그 게 정말 내가 원하는 음식인지 내 입에 맛이 있는지 없는지의 진실은 뒷전으로 밀려난 채 말입니다.
태어날 때 너무나 맑은 본성 뿐 이었던 우리의 자아는, 이렇게 해서 하나씩 둘씩 원래의 나와는 다른 껍질을 쓰게 되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차츰 다른 사람으로 변장되어 버리는 게 아닐까요.
본인이 원치도 않는 새에 시작되었던 변장의 시작은 사람마다 제 각기 다릅니다. 이 너댓 살짜리 꼬마 손주는 칭찬이 쏟아지게 하는 도구가 되었던 ‘잡곡밥’과 ‘나물반찬’으로 시작되었고, 어떤 사람은 ‘어른 스럽다’는 말 한 마디로 어떤 사람은 ‘부모를 도와 집안 살림을 잘한다’로 어떤 사람은 ‘참 잘 참는다’는 말로 시작 되었을 테지요. 그리고 그 말의 끝에는 반드시 ‘아이 착해라’는 말이 붙었을 겁니다. 어느새 아이들은 착한 아이에게만 주어지는 사랑을 받기위해 자신의 진짜 감정을 감추고 그 말에 따라 행동하기 시작합니다. 그 건‘어른 스럽지 않으면’, ‘집안 살림을 잘하지 않으면’, ‘잘 참지 않으면’ 사랑을 받을 수 없다는 무언의 암시이니까요.
어느새 그 모든 말들이 착한 아이가 되려면 이행해야 하는 사랑의 조건이 된 겁니다. 그렇게 진짜를 가리고 쓰게 된 껍질은 어느새 본질의 자리를 차지하고, 껍질이 본모습을 대신할 때까지 그 자아의 주인인 자기 자신까지도 모르게 되는 겁니다. 완벽한 가짜 자아로 살아가게 되는 것이죠.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서 성인이 된 뒤에 가장 먼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자기 자신을 아는 것,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일입니다. 원래의 본질인 참된 자아, 참된 나 자신으로 살아가는 것만이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사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이 사회의 모든 문제의 근원과 뿌리는 세상의 구성원인 우리 모두가 진정한 내가 아닌 남이 되어 살아가는 데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거짓자아로 살아가는 삶의 결국은 강박과 중독, 그리고 끝이 보이지 않는 우울증일 뿐입니다. 나 자신이라는 존재의 가치와 근거가 나의 내면이 아닌 물질, 명예, 권력, 성공, 학벌 등의 외부의 인정과 남의 이목에 달려있다면 그 사람의 내면에는 결코 진정한 행복이 자리할 수 없습니다.
만약 지금, 다 가지고 있는데도 허무하고, 다 해보았는데도 여전히 채워지지 않고 공허하다면 그 것은 여러분이 여러분 자신으로 살아가고 있지 않기 때문임을 빨리 알아차리십시오. 그 것은 세상을 창조한, 그리고 여러분을 창조한 조물주의 뜻이 아닙니다. 더 늦기 전에 원래의 여러분 자신을 찾아 나서십시오. 세상 어딘가에 버려져 있을, 세상 어딘가에서 헤매고 있을 참된 여러분의 모습을 말입니다.
팟빵 및 유투브에서 ’치유여행‘ 으로 다시 듣기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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