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의 생각은 얼굴만큼이나 서로 닮지 않았다” 라는 개성에 치중한 사고는 서양에만 해당하는 결론이고 개성보다 가족과 공동체를 중시하는 동양적 사고와는 대조적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고대 중국인들도 고대 그리스인들만큼 개성에 관심이 많았다.
중국인들은 이미 기원전 6세기에 중요한 문헌에 ‘사람들의 생각은 얼굴만큼이나 서로 닮지 않았다’라는 생각을 남겼고 4세기의 한 항의서는 “사람은 자기 성향을 따라야지 그렇지 않으면 쇠고랑을 차고 옥에 갖힌 것과 같다” 라고 선언했다. 오랜 세월 유교를 신봉했으나 1세기와 4세기 사이에 청년들이 실의에 빠진 사람들의 지지를 등에 업고 저항운동을 일으켜서 기존의 사회 질서에 반기를 들었다. 그 결과 일부 사람들은 개성을 더 많이 발휘해서 살아보려 하고 스스로를 남다르고 뛰어나려고 경쟁하면서 자기만의 고유한 행동으로 남을 능가하고 싶어했다.
공자가 잡설로 치부한 세설신어는 인물품평이 내용의 전반을 이루고 있으며 적당한 과장과 허구는 있지만 전설이나 기이한 이야기까지 담고 있지는 않다. 해학과 풍자적인 표현이 많아 문학성과 함께 오락성이 뛰어나다.

역사적인 인물 600여 명의 특이한 언행과 사담을 적은 세실신어는 당시 지식인 사이에 유행되고 있던 인물 비평의 풍조를 배경으로 하여 후한 말부터 동진에 이르는 지식인들의 일화를 모은 이 책이 공자에 의해 잡설로 치부했지만 이제는 이런 잡설이 특별한 인물을 이해하기 위한 열쇠로 간주되고 있다. 이를테면 사람들이 실제로 어떻게 말하는지  무례함과 낭비벽 분노 심취 비열함을 비롯한 갖가지 성향을 어떻게 드러내는지를 세심히 관찰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도덕적 행동을 존경하고 난세에 사람들을 이끄는 능력과 용기를 샀지만 이제는 심미적이고 심리적인 특성이 더 흥미를 끌었다.

고대 중국에서는 청의사상을 이어받아 백성들을 위로하고 스스로도 청렴, 결백하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유지했다. 특히 재산을 모으거나 권력을 탐하는 것을 비루하다고 생각하게 함으로써 사치와 탐욕에 빠지는 것을 경계했다.

청년들뿐 아니라 부질없는 정치 참여에 환멸을 느끼고 반대 의견을 억압하는 행태에 분개한 사람들과 상상력과 기지를 발휘할 더 큰 자유를 원하는 사람들이 ‘청담’을 나누는 모임을 조직하기 시작했지만. 다시 복종의 회색 구름이 사회를 뒤덮어 독립적인 사고의 불온한 빛을 차단했다. 하지만 독립성의 불꽃은 간간히 다시 살아나면서 청담사상은 시대의 한계는 있었으나 나름대로 훌륭하게 발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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