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剛山次金西原韻(금강산차금서원운)/우암 송시열


기인한 일 만 이 천봉 옥같이 고운데
병도 많은 어린 시절 지금은 늙어서
평생에 외로운 명산 저버리려 했으리.

一萬奇峰又二千    海雲飛盡玉嬋娟
일만기봉우이천    해운비진옥선연
少時多病今來老    孤負名山此百年
소시다병금래노    고부명산차백년

우리의 명산 금강산을 두고 많은 이들이 노래를 음영했다. 때로는 달래도 보고, 때로는 울려도 보았다. 꾸지람도 해보고, 얼굴도 어루만졌다. 그러나 결국은 부둥켜안고 실컷 같이 울면서 차마 수천년동안 묵묵히 버티면서 민족의 대동맥을 지켜주었던 견인차에 감사하고 함과 용기를 실어 주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마져 할 수가 없지 않겠는가. 만개의 기이한 봉우리 또 이천 봉을 보니, 바다 같은 구름 날아 걷히니 옥같이도 곱구나 라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내 평생동안 명산을 저버리려 했구나(金剛山次金西原韻)로 제목을 붙여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1607~1689)로 조선 중기의 학자이다. 1633년(인조 11) 사마시에 일등으로 합격해 경릉참봉이 되었고 봉림대군의 스승이 되었다. 병자호란 때 왕을 따라 남한산성에 들어갔으나 화의가 성립되어 고향으로 돌아가 은둔했다. 1649년(효종 1) 조정에 나갔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만개의 기이한 봉우리 또 이천 봉을 보니 / 바다 같은 구름 날아 걷히니 옥같이도 곱구나 // 어린 시절엔 병도 많았고 지금은 늙었기에 / 내 평생동안 명산을 외로이 저버리려 했었거늘]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금강산에서 김서원의 운을 빌어]로 번역된다. 김서원이 누구인지, 그의 원운 한시에 대하여지 알려진 바 없다. 다만 우암과 그는 친근한 사이로 금강산에서 같은 운자를 놓고 지은 것으로 보는 견해와 김서운이 과거에 지은 원운 한시를 보고 지었을 것이라는 가설을 세운다. 어느 것이 먼지인지 알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시인은 금강산 일만 이천 봉에 대한 선지식을 알고 산에 올랐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래서 선경의 시상은 만개의 기이한 봉우리인 이천 봉 산을 보니, 바다 같은 구름이 날아왔다가 일시에 걷히니 마치 옥같이도 곱다고 했다. 봉우리 마다 어디서 날아왔는지 구름이 일시에 날아와 한꺼번에 걷히고 나니 그 뽀족함이 옥같이 곱다고 했다.
 화자는 어려서는 병도 많고 나이가 들도록 산에 오르지 못했음을 상기시킨다. 후정의 시상은 어린 시절엔 병도 많았고 늙도록 자주 산에 오르지 못했고, 평생동안 명산을 외로이 저버리려고 했는데 이렇게 금강산을 찾게 되었음을 상기시키고 있다. 늦게 나마 금강산을 찾는 것은 다행한 일이며, 이렇게나마 시주머니를 채우고 보니 감개무량함을 떠올린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기이한 봉우리 일만 이천 봉 옥같이 곱구나, 지금은 늙었기에 명산을 저버리려 했는데’라는 시인의 상상력과 밝은 혜안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한자와 어구】
一萬: 만 개. 奇峰: 기이한 봉우리. 又二千: 또 이천 봉우리. 海雲: 바다 같은 구름. 飛盡: 날아서 걷히니. 玉嬋娟: 옥 같이 곱고 곱다. // 少時: 어린 시절엔. 多病: 병이 많다. 今來老: 지금은 늙어 있다. 孤負: 외롭게 짋어 지다. 자바리다. 名山: 이름난 산. 此百年: 이 백년을. 내 평생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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