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자녀가 학교 등하교 때 차들이 불규칙하게 주차되었거나 좁은 길에 차량이 뒤 엉킨 사이로 자녀들이 거닐고 있는 통학로를 걸어본 경험이 있는가.

상점의 쇼윈도는 고사하고 출입문을 막고 도로 공간을 점유한 주차 차량를 본적이 있는가.
우리는 자신의 집, 사무실 등 개인의 공간에서도 생활하지만, 그 보다 많은 시간을 외부에서 활동할 때가 더 많다.

우리들의 자화상을 읽어보는 시간을 오늘 가져보자.
내 집과 내 방을 청결하게 꾸미는 대에는 인테리어 전문가 못지 않게 적지 않은 물질을 시간을 투자한다. 그러나 대문만 나서면 쓰레기가 길에 즐비하게 널려 있고 마구 버려진 휴지조각들이 골목의 미관을 망치고 있어도 전혀 개의치 않고 골목길을 빠져 나가는데 조금의 불쾌감이라든지 불만을 표현하지 않는다.
자신의 생활 대부분을 점령하는 외부 공간의 열악함에 대해서는 고민하거나 해결하려는 의지가 전혀 보여지지 않는다. 이처럼 개인이 점유하는 공간은 과도한 집착이 허용되어도 타인과 함께 공유하는 외부공간에 대해서는 지나칠 만큼 무관심을 넘어 그 열악함에 대하여 관대하기까지 하다. 이것은 지금 지적하는 한 당사자의 문제만이 아닌 우리 모두가 앓고 있는 개인주의가 만연하는 만성질환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호흡하고 공유하는 이 사회는 사회를 이루는 각 개체의 에너지의 집합체이다. 그것은 여러 성격이 다른 개개인의 심리가 하나가 되는 동감과 공감의 공동심리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는 너와 나의 삶을 베풀어주는 공동의 삶터이다. 공동의 삶이 존재하는 가치는 이 사회가 건강하게 살아 숨쉬는 생명체의 원소라고 할 수 있다.

자녀들이 뒤 엉키고 복잡한 도로를 걸어야 하는 현상을 직접 체험해야 한다. 그래야만 개인이 느끼고 이해하는 범주를 개관적이고 공동적인 사고로 소화할 수 있는 여유가 생산된다.
공동의 삶을 구현하는 공공의 사회는 우리 개개인이 가꾸고 지켜야 한다.

개인이 주인의 자세로 공동의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받아드려지면, 공동사회의 규범과 규칙은 구속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상승시키는 에너지로써 새로운 발전의 계기이다. 병은 의사와 약으로만 치료되는 것은 아니다. 병의 완치는 환자의 의지가 절대 필요하다고 한다. 우리의 공동사회도 같은 이론이다. 개개인의 정신적 건강이 약해지면 사회도 병든다. 공동은 개체가 존재하지 않으면 그 가치는 물론 물질적 규모도 상실하게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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