小圃弄群芳(소포농군방)/동토 윤순거


들밭에 봄이 오니 풀꽃들이 향기롭고
마을의 나무 그늘에 비취빛 촉촉한데
섬돌 앞 꽃의 그림자 떨어지는 붉음이.

春來小圃弄群芳 誰爲貧居富貴鄕
춘래소포농군방 수위빈거부귀향
門外柳陰翠潤潤 階前花影溜紅光
문외유음취윤윤 계전화영류홍광

가을이 돌아오면 온갖 풀들이 추위를 견지 못해 온 몸을 바르르 떤다. 그리고 조용한 휴식에 들어간다. 긴 땅 속의 개구리를 살포시 덮어 주면서 동면(冬眠)에 들어간다. 그렇지만 성급한 잡초들은 소곤대기 시작한다. 어서 봄이 돌아와 세상 구경을 하면서 싹을 틔우겠다고 수선을 떤다. 들밭이나 길거리의 소곤거림이 들리는 듯하다. 시인은 문 밖에 버드나무 그늘 비취빛이 촉촉하고, 섬돌 앞 꽃 그림자 붉은 빛이 뚝뚝 떨어지네 라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보았다.

섬돌 앞 꽃 그림자 붉은 빛이 뚝뚝 떨어지네(小圃弄群芳)로 실제한 제목을 붙여보는 칠언절구다. 작가는 동토(童土) 윤순거(尹舜擧:1596~1668)으로 조선 중기의 문신, 학자이다. 성혼의 외손자이다. 1633년 소과에 합격하였으며, 병자호란 후 아버지가 척화죄로 유배되자 고향에서 종약과 동약을 개정하고 문교 진흥에 힘썼다. 여러 벼슬을 지내면서 단종의 능 곁의 승사를 중수하였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들 밭에 봄이 와 뭇 풀꽃들이 향기로우니 / 그 누가 가난하다 하겠는가? 부귀한 마을이네 // 문 밖에 버드나무 그늘 비취빛이 촉촉하고 / 섬돌 앞 꽃 그림자 붉은 빛이 뚝뚝 떨어지네]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들밭의 뭇풀들이 향기롭네]로 번역된다. 동면에 취한 들밭이나 길거기를 풀들은 어서 봄의 향연 속에 깊이 묻히고 싶다고 부산을 떨더니 드디어 잎을 틔우고 꽃을 맺는다. 꽃의 향기가 온 농원을 짙게 물들었을 것은 뻔하였으리라. 그 향기를 맡은 동네 사람들의 마음만은 향기로웠을 것이고, 마음만은 풍성한 부자를 부럽지 않게 여겼을 것이다.

시인은 들밭의 모든 풀꽃이 향기로우니 마을 사람 모두가 부자라고 생각했다. 선경의 시상에서는 들 밭에 봄이 와서 모든 풀꽃들이 향기로 피어오로니, 그 누가 가난하다 말 할 수 있겠는가 부귀한 마을이라고 했다. 가난보다 소중한 아름다운 향기가 물씬 풍기는 것과 비교할 수가 없을 것이라는 시심이었을 것이다.
화자는 그 뿐만이 아니라 버드나무 비취빛이 촉촉하는가 했더니 섬돌앞 꽃 그림자에서는 붉은 빛이 떨어진다고 했다. 후정의 시상에서는 문 밖에 버드나무 그늘 비취빛이 촉촉하게 젖고, 섬돌 앞 꽃 그림자에서는 붉은 빛이 뚝뚝 떨어지고 있다고 했다. 검색 그림자에서 붉은 빛이 뚝뚝 떨어졌다는 것은 시인만이 표현할 수 있는 최고의 상상이겠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들밭의 봄꽃 향기 가난하다 하겠는가, 버드나무 그늘 촉촉하고 그림자 붉은 빛 떨어지네’라는 시인의 상상력과 밝은 혜안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한자와 어구】
春來: 봄이 오다. 小圃: 작은 밭. 弄群芳: 뭇 꽃을 희롱하네. 誰爲: 누가 ~하리오. 貧居: 가난하게 살다. 富貴鄕: 부하고 귀하다. 鄕: 고향 혹은 마을. // 門外: 문 밖. 柳陰: 버드나무 그늘. 翠潤潤: 비취빛에 젖고 젖다. 階前: 섬돌 앞. 花影: 꽃 그림자. 溜: 방울져서 떨어지다. 紅光: 붉은 빛.
<문학평론가ㆍ시조시인/사)한교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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