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왕에 ‘운암 정두흠(1832~1010)’선생의 ‘손명사’를 살펴본다.

손명(損命)은 양명(養命)에 대비되고. 절명(絶命)과 같은 뜻이겠다. 운암 선생은 1910년(경술국치)에 69세로 음독 자결하시었다. 1905년(을사보호조약)에 자결 순사한 先賢을 따라 가신 것. 그 때 ‘손명사’를 남기셨는데, ‘손명사 원문 2자’가 결락된 사정에 유념해야 할 것.(<운암집> 원본을 직접 재확인하였다). 그 2자 공백에 관련하여 앞에서 “폐호백일천부제”로, 뒤에서 “( )난용무구죄”로 읽어버리면 그 원의에 어긋나게 된다. 압운도 그렇거니와, ‘청산토(靑山土)-백일천(白日天)’,‘참육수(慙陸秀)-억제련(憶齊連)’이 상호대구가 되도록 끊어야 할 것. (그 결락된 2자 부분에 관하여 역량 있는 분의 보완을 기대해본다.)

ㅡ 손명사(損命詞) 2수
1. 有客來傳無國報(유객래전무국보) 나라가 없어졌다 전해온 소식 듣고
癲狂心事淚凄然(전광심사루처연) 미치광이 심사되어 눈물 처연해라
擧?寧蹈靑山土(거근영도청산토) 어찌 발꿈치 들고 靑山土를 밟으랴
閉戶( )白日天(폐호 백일천) 대낮 하늘에 閉戶( ? ) 신세라네
負帝貞忠慙陸秀(부제정충참육수) 황제 업고 죽은 ‘육수부’에 부끄럽고
攘秦大義憶齊連(양진대의억제련) 秦國 물리친 齊臣 ‘노중련’ 생각나네
國破難容無求罪(국파난용무구죄) 용납 못할 亡國에도 罪를 못 구하니
莫如身死逐先賢(막여신사축선현) 先賢 좇은 죽음보다 더 나을 일 없네

2. 許國斯身問幾年(허국사신문기년) 나라에 이 몸 의탁한지 몇 년 되었나
愛君每祝太平宴(애군매축태평연) 임금 사랑으로 늘 太平전승 빌었건만
一朝盡人洋夷手(일조진인양이수) 하루 아침에 오랑캐 손에 끝장이 났네
末境殘傷餓虎咽(말경잔상아호인) 굶주린 호랑이 목에 걸린 마지막 참상
禮義可憐箕聖域(예의가련기성역) 禮와 義 가련하다, 箕子 성인의 강역

彛倫誰復漢陽天(이륜수복한양천) 그 누가 회복하랴, 朝鮮하늘 사람 도리
屋社無歸身可殉(옥사무귀신가순) 社稷이 무너졌으니 이 몸도 殉身하리라
下倍先帝地黃泉(하배선제지황천) 臣下로 先帝 받들어 黃泉에서 살아가리

‘운암 정두흠’의 損命詞는 ‘매천 황현’의 絶命詩와 대비될 수 있다.
운암, 매천 모두 중국 충신들을 끌어왔는데, ‘육수부(陸秀夫)는 황제를 업고 투신하고, 제나라 노중련(魯仲連)’은 지혜로 진나라를 물리치고, ‘윤곡(尹穀)은 몽고군 앞에서 자결하고, 진동(陣東)’은 적극적 항거로 충성을 다한 분들이다.

ㅡ 참고 자료, ‘매천 황현’의 절명시, 제4수
曾無支厦半椽功 일찍이 나라 지탱할 반조각 공도 없었고
只是成仁不是忠 다만 仁을 이룰 뿐, 忠은 아닌 것이로다.
止竟僅能追尹穀 겨우 할 수 있는 일은 ‘尹穀’을 따를 뿐,
當時愧不攝陣東 당시‘陣東’처럼 하지 못함에 부끄럽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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