珍島碧波亭(진도벽파정)/계곡 장유


하늘가 햇살이 창해를 내리 쏘아
구름 끝 아득히 섬 부름을 가르고
저녁에 흰 물꽃 파랑 철썩이는 벽파정.

天邊日脚射滄溟    雲際遙分島嶼靑
천변일각사창명    운제요분도서청
창闔風聲晩來急    浪花飜倒碧波亭
창합풍성만래급    랑화번도벽파정

성웅의 지혜에 의해 대승을 거둔 벽파정의 승리를 두고 요즈음 말로는 전승지(戰勝地)라고 한다. 진도 벽파정은 지형적인 밀물과 썰물의 원리를 잘 이용하여 대승을 거두었기에 이곳을 찾는 이들은 장군을 떠올리게 된다. 그 때의 일을 기억하면 가슴 뭉클했을 것이다. 그리고 나라를 지켜야한다는 새로운 각오를 하게 되는 것은 당연하리. 하늘가 햇발이 창해를 매섭게 내리 쏘아서, 구름 끝 아득한 섬을 푸르름으로 갈라 놓았네 라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흰 물꽃이 뒤집히면서 철썩거리는 저 벽파정!(珍島碧波亭)로 번역해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계곡(溪谷) 장유(張維:1587∼1638)로 조선 중기의 문신이다. 다른 호는 묵소(默所)로 알려진다. 1605년(선조 39) 사마시를 거쳐 1609년(광해군 1) 증광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호당에 들어갔다. 이듬해 겸설서·검열·주서 등을 지냈으나 1612년 김직재의 무옥에 연루해 파직되었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하늘가 햇발이 창해를 매섭게 내리 쏘아서 / 구름 끝 아득한 섬을 푸르름으로 갈라 놓았네 // 저녁이 되자 성급해진 하늬바람의 작란 섞인 소리에 / 흰 물꽃이 뒤집히면서 철썩거리는 벽파정의 모습이네]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벽파정에서]로 번역된다. 벽파정은 전도에 있다. 이순신 장군은 벽파정으로 진을 옮긴 이후 여러 장수들을 불러 “법에 이르기를 죽으려 하면 살고 살려고 하면 죽는다 하였고, 또 한 사람이 길목을 지키면 천명도전라우수영 앞바다 벽파정 두렵게 할 수 있다는 말이 있는데, 모두 오늘 우리를 두고 이른 말이다. 너희 여러 장수들이 조금이라도 명령을 어긴다면 군율대로 시행해서 작은 일일망정 용서치 않겠다.” 라는 훈시를 남겼다.

시인은 훈시를 남긴 그날 밤 꿈에서 신인이 나타나 “이렇게 하면 크게 이기고 이렇게 하면 진다.”라고 말하였다고 전한다. 선경의 시상에서 하늘가 햇발이 창해를 매섭게 내리 쏘아서, 구름 끝 아득한 섬을 푸르름으로 갈랐네 라고 했다. 불과 몇 년전 임진왜란 때 있었던 이순신 장군을 떠올린 것은 아닌가 모를 일이다.
화자는 충무공이 벽파정을 두고 했던 꿈의 내용은 알 수 없었으나, 승전의 암시가 되는 꿈인 듯 하다. 선경의 시상에서 저녁이 되자 성급해진 하늬바람의 소리에 / 흰 물꽃이 뒤집히면서 철썩거리는 벽파정!의 모습이라 했다. 선견지명을 암시하는 대목이겠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햇빛이 창해를 쏘아 아득한 섬 갈라놓네, 하늬바람 작란 섞여 철썩거린 벽파정은’이라는 시인의 상상력과 밝은 혜안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한자와 어구】
天邊: 하늘가. 日脚: 햇발. 射: 내리 쏘다. 滄溟: 푸른 바다. 雲際: 구름끝. 遙: 멀리. 分: (푸르름이) 갈리다. 島嶼: 섬. 靑: 푸르름. // ?闔: 예전에 궁궐의 정문을 이르던 말. ‘하늘’의 백옥경. 곧 하늬바람. 風聲: 바람 소리. 晩來: 저녁이 되다. 急: 급하다. 浪花: 흰물결 꽃. 飜倒: 뒤집혀 철석거림. 碧波亭: 벽파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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