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신 장군의 애인녀 천관보살이 숨어든 ‘천관산’이라든지, 원표스님이 ‘천관산’에서 천관보살에게 예배하였다는 등 일부 내용이 잘못 홍보되고 있다.

■천관보살이 숨어든 산 천관산이라 잘못 홍보하고 있다.
「신라 김유신 장군이 소년시절에 사랑했던 천관녀(天冠女)가 숨어 살았던 산이라고도 한다. 김유신이 어머니 충고로 천관녀(天冠女)집으로 발길을 돌린 백마(白馬) 목을 쳐서 죽이고 오직 무예를 익히는데 전념한 뒤, 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했는데 이 때 김장군에게 버림을 받은 천관기생은 경북 월성군 내남면 일남리 뒷산에 암자를 짓고 숨어 살면서 김장군의 성공을 빌었다. … (중략)
장군은 그녀를 놓칠새라 타고 온 말을 몰아 뒤좇았는데 결국 장흥의 천관산에 이르러 그녀를 잃어버렸다. 이 때문에 천관산에 천관보살이 살고 있다고 후세에까지 전해온다.

■천관녀 설화 (사적 제311호「천관사지(天官寺址))
 김유신에게 버림받은 천관녀(天官女)는 경북 월성군 내남면 일남리 뒷산에 암자를 짓고 숨어살면서 김유신의 성공을 빌었다.
삼국을 통일하고 경주로 돌아가던 김유신은 이 소문을 듣고 천관녀를 찾아가 경주로 함께 돌아가기를 원했다.
그러나, 천관녀는 자기는 천관보살 화신으로 김유신이 큰일을 할 사람임을 알고 기생이 되어 시험했던 것으로 자기가 맡은 임무와 두 사람 인연도 끝났다면서 거절했다.
김유신이 고집을 꺾지 않자 주문을 외워 하늘에서 내려온 백마를 타고 사라지자 김유신이 말을 몰아 쫓았는데 어느 순간에 놓치고 말았다.…(하략)

■원표스님이 장흥천관산에서 천관보살에게 예배하였을까?
천관보살은 자기수행 및 중생을 교화하는데 관심이 많은 보살로 당시 통일신라에서는 천관보살신앙이 유일한 곳이 바로 천관사였다.
 원표스님은 중국 복건성 영덕현 곽동산 석굴에 머물면서 천관 보살에 대하여 익히고 수행하였다.
천관보살을 찾아가도록  유학 온 원표스님에게 주문하였던 심왕보살은 화엄경에서 실천적으로 등장하고 있으며 원표스님은 자기수행의 실천적 모습을 강조하였다.

 ‘천관보살신앙’은 화엄경 60권에서 유래한 오대산 ‘문수보살신앙’과 금강산 ‘담무갈보살 신앙(법기보살)’보다 지방적이고 대중적이며 실천 지향적이라고 한다.
원표스님이 유치면에 소재한 보림사(859년 창건)위치하고 있는 북쪽에 759년 고(古)가지사(교종)를 창건했지만 중국 곽동산에서 천관보살신앙을 체험했던 원표스님을 화엄경의 천관보살신앙으로 백성들이 유포하였던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원표스님은 중국에 유학하고 귀국하여 유치면 가지산 자락에 조그마한 사찰을 창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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