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광화문에서 정 동쪽으로 가면 강원도 강릉 정동진이 있고, 서울 광화문에서 정 남쪽으로 쭈-욱 내려오면 한반도 끝자락 정남진 장흥 회진이 있다.

이곳은 내가 태어나 현재 살고있는 다른 어느 마을과 다름없이 산과 들과 바다가 있듯이 호남의 5대 명산 중 하나인 천관산이 있고 훤히 펼쳐진 청정해역 득량만 바다가 있는 한적하지만 풍요롭고 살기 좋은 마을인정남진 장흥 회진이다.

1986년 4월 1일 회진면이 대덕읍에서 분면할 당시의 인구가 9천명 가까이 되었는데 30년이 지난 지금 회진면의 인구는 작년 2016년 말 기준으로 불과 3,100명 정도밖에 안 된다.
산업화로 인해 도시로~ 도시로 많은 사람들이 떠나가고, 여기에서 태어나 자란 자식들도 도시에서 정착하다보니 이렇게 인구가 계속해서 점점 감소 되어가고 있고, 그나마 남아있는 사람들마저 거의 노인 어르신들이다. 65세 이상이 1,109명으로 35%를 차지하고 있다. 그래도 다른 농어촌 지역에 비해 다소나마 젊은 층이 더 많이 살고 있다는 사실에 조금이라도 위안을 받는다.

그런데 앞으로 30년의 세월이 지난 후 회진면 인구는 어떻게 될 것인가? 생각해 본다면 참담할 뿐이다. 아마 천 명도 살지 못한 고장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지난 30년 동안 인구가 3분의 1로 감소했듯이 말이다.
그래도 난 다른 사람들이 어떠한 사연들을 가슴에 품고 고향을 떠나 갈 지라도 고향인 회진에서 끝까지 살아 갈 것이다.

내 부모 형제가 살아 계시고 내가 힘들고 지쳐 있을 때나 즐거운 일이 있을 때도 아무 망설임 없이 언제라도 한걸음에 달려와 함께 위로해 주고 즐거워 해줄 다정한 이웃들과 깨댕이 손꼽 친구, 형님 동생들이 있기 때문이다.

정남진 장흥 회진은 조선시대에 만호성이 있었던 회령포진이다. 1597년 정유재란으로 왜군에게 조선수군이 패하자 원균 등의 모함으로 모든 관직을 박탈당하고 감옥에 있던 이순신장군을 이항복 유성룡 장군 등의 건의로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하여 세계 해전사에 영원이 남을, 명량해전에서 대승을 거둘 수 있도록 수군을 모아 재정비하고 거북선 12척을 배설 장군으로부터 인수받아 출정한 곳이 바로 나의 고향 장흥 회령포진인 회진이다.

이러한 역사적인 사실에 기인하여 힘들고 바쁘게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에게 혹시 사업이나 승진, 시험, 결혼 등 여러 일에서 좌절하여 어디론가 무작정 여행을 떠나고 싶을 때 이순신 장군과 같이 나의 고향인 이곳 정남진 장흥 회진에 와서 그때의 풍전등화같이 어려운 나라의 위기상황을 걱정하면서 거북선 12척으로 왜군 133척의 배를 물리치기 위한 전략과 전술로 고심을 하면서 수군을 재정비하고 전투준비를 어떻게 했는지 회상해 보면서, 정남진 장흥 회진에서 지금 현재 힘들고 어려운 여러 요인들을 찾아내고 앞으로 어떠한 방법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는지 대안을 찾을 수 있는 재기의 땅, 칠전팔기할 수 있는 힐링의 고장으로 회진이 개발되었으며 하는 바램이다.

새해의 일출은 정동진에서, 민주화의 성지는 광주, 거북선하면 이순신 장군이 연상되듯이 이순신 장군 재기의 땅 하면 정남진 장흥 회진이 연상되어 세상살이 힘들어 고생하고 지친 모든 사람들이 정남진 장흥 회진을 찾아와 힐링하고 해답을 찾아서 삶의 현장으로 되돌아가 이순신장군처럼 승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재기의 힐링 고장으로 회진을 만들기 위해서는 회령진성이 복원되고 회령포 해전공원 조성과 더불어 재기의 힐링센타 같은 것들도 건립되었으며 하는 작은 소망을 가져본다.

올해 처음으로 시작하는 제1회 회령포문화축제도 단순히 회진에서 어떤 축제가 있다고 하더라는 일반적인 말보다는 이순신장군이 회령포진에서 거북선 12척과 수군을 재정비하여 명량해전에서 대승을 거둘 수 있었던 것처럼 삶의 지치고 힘든 모든 사람들이 회진가면 힐링하고 재기할 수 있다는 메세지를 전 국민에게 전달 할 수 있는 그런 계기의 축제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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