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은 <목민심서>에서 “민(民)과 목(牧)은 근본적으로 평등하며 목(牧)이 그 자리를 제대로 관리하려면 봉공(奉公)과 애민(愛民)을 잘해야 한다.” 고 갈파했다.

다산의 농업에 대한 생각도 도드라진다. 다산은 임금께 드리는 글에서 “농업정책에서 천하 사람들이 나랏일의 근본(本)을 버리고 끝(末)만 도모하니 기름진 논밭과 살찐 흙이 모두 묵히게 되고, 높은 모자, 좋은 옷을 입은 놀고 먹는 사람이 늘어난다. …농민의 고달픔을 어루만지지 못하면서 어찌 모든 백성의 평안함을 기대할 것인가?”라고 한탄하기도 했다.

여기서, 우리는 농촌에서의 공직자의 처신을 새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최근 장흥의 공직사회에서는 두 가지 불미한 일이 있었다.
지난 5월 11일, 장흥군청의 한 부서가 제주도에 벤치마킹을 떠났을 때 하극상 폭행사건이 발생한 적이 있었다. 사적인 감정대립으로 작은 몸싸움 같은 일이었으나 6월 담당 부서장의 부하직원 고소로 인해 이 사건은 장흥군의 문제로 대두됐다.

각기 다른 부서도 아니고 한 부서이므로 정히 갈등이 해소되지 않았다면 얼마든지 소주 한 잔 마시며 풀 수도 있었는데 고소까지 한다? 그 동기며 원인이야 어찌됐든, 큰 사건도 아니었다는데 굳이 부서장이 부하직원을 대상으로 고소를 한 것이었다.

7월 주요업무 보고회가 있었던 6월 26일, 문제의 담당 부서장은 "본 부서를 찾은 노조위원장과 간부들에게 저의 적절치 못한 응대로 인하여 불편을 느꼈다면 진심으로 사과를 드린다”고 공개사과를 하기도 했다.
여러 요인을 제쳐두고, 모름지기 화합과 융화를 첫번째로 덕목으로 삼아야 할 한 부서의 장으로서 이러한 형태는 한 부서장의 자질 문제를 떠나 불미한 일에 다름 아닐 터이다. 그 부서장은 장 자리를 위한 자리에 앉아있다고 말한다면 지나친 일일까 싶다.

또 하나의 자그마한 사건. 장흥군 전체 공직사회의 수장인 군수에 대한 볼미한 일이다.
전남시장군수협의회 소속 농촌지역 단체장 6명이 전남도의 가뭄현상이 극심할 때인 지난 6월 19일부터 24일까지 5박6일 일정으로 ‘러시아 극동지역 연수’를 떠난 일이 있었다.
이들 6명의 주인공으로는 김성 장흥군수를 포함 고흥군수 곡성군수 담양군수 화순군수 구례군수 등이었다.

원래는 12명이었지만 6명은 가뭄 대응 등을 이유로 계획을 취소하고 나머지 6명만이 연수를 떠난 것이다. 일각에서는, 전남도에서 가장 낙후되고 가난한 지역의 군수들만 해외 연수에 참여한 것이라는 비아냥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수행비서 등 총 13명에게 소요된 비용 4800여만 원은 모두 해당 지자체가 부담한 것으로 알려진 이번 연수는 ‘국제적 안목 배양’이라는 명분이었다지만, 관광 일정이 많아 연수를 빙자한 ‘외유’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이에 대해 6월 26일 7월 주요업무 보고회 석상에서 김성군수는 시장군수협의회에서 추진한 러시아 해외 연수부분을 두고 10분 이상자신의 소신을 밝혔다.

김 군수는 극심한 가뭄이 한창 일 때 시장군수들이 해외연수를 갔다는 언론보도에 대해서 우리 군민들에게 그리고 열심히 일하는 공직자들에게 군수로서 송구스럽다, 여러분과 군민께 죄송하다, …하지만 오래 전부터 계획된 부분이었고 우리 동포가 살고 있는 러시아의 역사탐방에 관심을 가지고 있어서 보고 느끼고 체험해 보고 싶었다, …이런 부분을 토대로 군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고 장흥군의 미래를 위해 행정에 접목 시키겠다”고 말했다.

해외 연수가 잘못됐다는 게 아니고, 단지 미안하고 죄송스럽다고 했을 뿐이다. 오히려 러시아 연수 체험을 군민의 삶의 질을 높이고 장흥군의 미래를 위해 행정에 접목 시키겠다 데 방점이 있었다는 느낌이었다.
불라디보스톡에서 우리 역사와 관련된 부분은 분명히 스스로의 민족애나 역사인식에 대한 좋은 경험이 됐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군민의 삶의 질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 또 그것이 장흥미래를 위한 행정 접목에서 무슨 도움이 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아닐 수 없다.

현재의 장흥군은 역사에 대한 관심부터가 없다. 서편제의 맥이었던 가무악제전도 폐지했다. 장흥=서편제 본향이라는 근거도 없애버린 군이었다. 장흥이 가사문학의 본향이었다는 역사 인식도 없다.
가사문학관 조성 같은 생각은, 아예 없는 장흥군이다. 더 멀리로는, 역사 유물은 수없이 출토되었지만 박물관이 하나도 없어 그 무수한 역사유물들은 지금도 전남대나 조선대학교 박물관 지하에 먼지를 뒤집어쓰고 묻혀 있을 뿐이다.

앞으로 가서, …6월 가뭄은 농민에게 가장 우려되는 일이다. 가뭄으로 농민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런 농민의 걱정이야 내 알 바 아니다는 마음이었을까. ‘군민이 행복한 군정’ ‘어머니 품 같은..’ 이라는 구호는 단지 구호를 위한 구호였을 듯싶다.

“민(民)과 목(牧)은 근본적으로 평등하며 목(牧)이 그 자리를 제대로 관리하려면 봉공(奉公)과 애민(愛民)을 잘해야 한다.” …목민관으로서 처신은 이 한 마디에 다 들어 있다.
진정으로 군민을 위한 헌신, 애민정신은 그 실천의지가 중요한 것이고, 이는 바로 진정한 목민관으로서 정도의 처신에서 나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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