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두 화백은 1928년 전남 장흥에서 출생했다. 명문 광산김씨 양간공연의 후예로 본명은 김석중이다. 일본 구주대학 문학부 철학을 전공했고 현대미술초대전초대작가(국립현대미술관), 아세아현대미술대전 초대출품(동경), 북경아시아미술대전(천안문고궁) 등에 활동했고 개인전을39회 가졌다.

생전에 중용(中庸)을 자신의 예술철학에 영향을 끼친 사상으로 꼽았고 술과 담배를 멀리하고 늘 고요하고 맑은 정신을 유지하며 작업에 몰두해왔다. 평소 “수려한 산수와 당대 유명한 스승들이 많아 배움의 길을 확장하는데 부족함이 없다”며 고향 유천재(柳川齋)에서의 글공부 했던 유년시절을 회상하곤 했다.

소천은 향리인 천관산 기슭 유천재 서당에서 한서와 시·서·화를 수업했으며 한학의 대가이며 호남의 마지막 성리 학자인 다초 위복량 선생과 잠계 백형기 선생 문하에서 서예를 익혔 다. 그때에 왕희지체와 구양순. 황산곡. 추사체를 그의 서예의 규범으로 삼았다.

남농화의 거목 남농 허건 등에게 산수화의 기법을 배웠고 월전 장우성에게서 인물, 화조 등을 사사 받아 개성 있는 자기정신세계 표현을 위한 회화세계를 추구해 왔다.
이러한 자유스런 상상력과 풍부한 감성은 자기만의 개성적인 서체를 갖게 되었다고 한다.

그의 학문은 존재 위백규 의 실사구시의 호남 실학의 태두인 존재의 사상을 이어 받은 소석 김노현, 다초 위복량의 실천적 성리학의 영향을 받아 경세치용, 이용후생, 실사구시의 실질적이고 현실 중심적인 현실, 관념보다는 사실적인 학문을 받아 드렸다.

소천은 이러한 수업을 받으면서 매우 개방적이고 진보적인 생각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서울로 유학 하여 선린상업학교 입학 하게 되었다고 한다.

소천은 작년까지 서울 성수동 ‘산왕당(山王堂)’ 자택화실에서 자신의 작업공간이며 학문의 도장인 유천재와 자신이 어린시절부터 보아온 천관산도를 그려왔다.

소설가 이청준 선생은 ‘유천재화향만년’ 이라는 제발을 주면서 아버지와 아들(김선두. 김선일) 소나무로 읽는 것을 들려주었다고 한다. 아버지화가와 아들화가가 이 마을에서 솔향 같은 묵향을 오래도록 피우길 바란다는 뜻이다. 저서로는 <소천 한 시집> <시·서·화 삼절과 남종화 이론> 화집 <小天> 등을 남겼다.

소천 김천두 가(家)는 3대가 화가의 맥을 잇고 있는 드문 가계를 형성하고 있다. 아들 김선두가 중앙대 미대 교수로 재직 중이며 김선일이 한국 산수화의 대표작가로 주목받고 있다. 또 김천두 옹의 손자인 김선두의 자 김중일(서울대 한국화과 대학원 졸업)도 동양화의 길을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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