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은 한 해를 처음 시작하는 달로서 새해를 설계하고, 일년의 운세를 점쳐 보는 달이었다. 특히 정월 대보름의 경우, 보름달의 달빛이 어둠, 질병, 재액을 밀어 내는 밝음의 상징이므로 이날은 마을의 수호신에게 온 마을 사람들이 질병, 재앙으로부터 풀려나 농사가 잘 되고 고기가 잘 잡히게 하는 ‘동제’를 지냈다.

동제 외에도 온 동네 사람들이 함께 줄다리기, 고싸움, 쥐불놀이, 탈놀이 등 집단의 이익을 위한 행사를 하였으며, 부럼 깨물기, 더위팔기, 귀밝이술 마시기, 시절 음식인 복쌈이나 묵은 나물을 먹기, 오곡밥이나 약밥, 달떡 먹기 등 각종 민속이 계승돼 나왔다.

대보름날에 치러지는 각종 민족은 전체 세시풍속 중 1/4이 넘을 정도로 풍부하다.(설 민속을 합치면 전체의 절반이 넘는다.)
1월 1일은 1년이 시작하는 날로서 당연히 큰 의의를 지녀왔지만, 달의 움직임을 표준으로 삼는 음력의 사회였던 우리나라의 경우, 첫 보름달이 뜨는 대보름날은 그만큼 더 중요한 뜻을 지녀왔다는 의미에 다름 아닐 터이다.

우리나라 세시풍속에서 보름달이 가지는 의미는 컸다. 정월대보름이 그렇고, 다음으로 큰 명절인 추석도 보름달이 뜨는 날이었다. 보름달이 왜 중요하였는가.

태양은 양(陽)이며 남성으로 인격화되지만 달은 음(陰)이며 여성으로 인격화된다. 하여 달의 상징은 여성ㆍ출산력ㆍ물ㆍ식물들과 연결되고 여신은 대지와 결합되고 만물을 낳는 지모신(地母神)으로서의 출산력을 가진다.

첫 보름달이 뜨는 시간에 여신에게 대지의 풍요를 비는 것이 우리 동제의 원형이었다. 줄다리기도 대부분 대보름날 행사였다. 줄다리기에서 암줄(서부, 여자편)과 수줄(동부, 남자편)의 고리를 거는 일은 이른바 성행위의 상징인데, 이는 바로 풍요의 의미기도 하다.

현대에 와 양력의 사회가 되고, 산업화 도시화가 이뤄지고, IT문명이 기세를 덜치면서 과거의 전통이 사라져가고 있다. 그럼에도 전통은 간신히나마 그 맥을 계승해오고 있다.
장흥군에서도 지난 2002년부터 탐진천변에서 장흥문화원 주관으로 정월대보름맞이 행사를 치러왔다. 우리의 전통생활문화를 그대로 재현한다는 의미에서 세시풍속과 민속놀이가 개최되었던 것이다.
또 지역 여러 곳(부산면 호계리 별신제, 관산 옥당5구 당산제, 방촌리 별신제 등) 에서 마을의 무사안녕과 주민 화합을 기원하는 정월 대보름 민속행인 당산제가 예전과 다름없이 치러져 왔다.

장흥군의 정월대보름 동제 중에서 대표적인 동제가 바로 호계리 별신제다.
별신제는 전남지역에서는 흔한 용어는 아니다. 그러나 부산면 호계리 지역에서 매년 모시는 전형적인 마을제사로 전남 지역에서 볼 수 있는 민간신앙으로서의 당산제와는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는 데서 의의가 있다.

특히 제의(祭儀) 형식은 유교식 제차로 제차, 제물, 제관 등이 ‘국조오례의’의 길례에서 볼 수 있는 관제(官祭)의 형식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어 전문가들은 관제가 민간화되어 가는 한 양상으로 분석하기도 한다.
특히, 동계문서는 별신제 내용을 처음 별신제부터 지금까지 매년 기록해 살아있는 역사 자료이고, 마을공동체 의례의 연혁과 변천을 알 수 있는 희귀 자료이다. 또한 지금도 매년 별신제를 모시고 나면 ‘대동계’라는 마을총회를 열어 별신제의 결산은 물론 전반적인 사항들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동계문서는 살아있는 역사로 전남도 문화재 자료로 등재 돼 있기도 하다.

호계리 별신제는 1700년대부터 전해 내려오면서 관련 자료가 현존하고 있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으며, 남도문화제 등을 통하여 민속예술성이 확인되었고, 수많은 전문가들의 마을 조사 보고서와 논문 등을 통하여 역사적, 학술적 가치가 정리되었고, 호계리에서는 별신제보존회가 구성되어 운영되고 있다.
또, 시대의 변천에 따라 대부분 대보름 동제들은 편의주의에 의해 당산제 수행 부분이 축소, 약화, 생략되지만, 호계리 별신제는 예전의 전통과 거의 변함없는 형태로 지속되고 있다는 데서 의의가 크다.
또, 동계문서는 다른 마을들에도 동계에 관한 자료는 많지만, 이 호계리처럼 마을제사를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는 예는 거의 없다는 점에서 희소성은 물론 그를 통한 일반화의 가능성, 즉 다른 지역 마을제사의 역사도 이를 통해 조명해 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는 점에서도 의의가 있다.

그런데 과연 언제까지 자연 상태에서 호계리의 별신제가 얼마나 더 지탱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120여호의 마을이 현재 50여 호로 줄어든 실태와 주민의 노령화 추세에서 그 전승의 최종시한이 임박해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분명, 최근년에 이르러 이 별신제가 위기를 만나고 있음은 사실이다.
마을 주민수의 감소와 고령화로 인해 별신제 참여하는 사람 수가 급격히 줄고, 최근 들어 IT 문화로 인해 전통 민속이 관심 밖으로 밀려나면서 부터이다.

별신제 제례에 참여하는 제관수만해도 21명인데, 지난 해 별신제 때는 21명의 제관을 채우지 못했고, 별신제를 주도하는 풍물굿패의 성원도 채우지 못해 다른 마을에서 사람을 빌려와 메우기도 했다.
호계리 별신제에 대한 행정당국의 보존과 전승 의지, 그리고 발전을 위한 문화 정책적 차원의 관심과 지원이 절실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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