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동욱은 다큐 사진작가이다. 작품사진을 만들어내는 사진작가는 아니다. 직관으로 사진의 대상체가 되는 물상 본질의 정수를 표현해내는 다큐 사진가이다.

마동욱은 다큐 사진 정신에 아주 충실하다. 그의 사진은 스트레트 사진의 정수를 보여준다. 일 점의 자기 주관도 더하지 않는다. 연출하는 법도 없다. 이른바 트릭 없는 사진이다. ‘있는 그대로’의 물상에 대한 직관과 정확한 묘사만 있을 뿐이다.

마동욱은 일 년 365일 하루도 걸리지 않고 자신의 고향 장흥 곳곳을 돌아다니며 ‘장흥’을 카메라에 담는다. 그 세월이 30여 년. 한두 번, 아니 몇 십 번도 찍었으니 지나칠 법도 하지만 어제도 그제도, 아니 수백 번도 찍었을 그 고향의 산하와 풍물과 사람들을 다시 카메라에 담는다. 마동욱은 또 대상체에 대해서도 시시각각으로 시각을 달리하고, 근원을 달리하고, 구도를 달리하고, 명암을 달리하여 담는다. 사진가의 시각이란 단일하고 고정적이며 평면적이어서어떤 정적(靜的) 대상체의 본질에 접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마동욱이 담아낸 그 대상체는 단편적이고 정지된 화면이 아니다. 보다 입체적이며 그 이면까지도 들여다볼 수 있는, 보다 생생히 살아있는 대상체로 재탄생한다.

그의 이러한 사진 작업은 사진의 사실성, 대상체 본질에 근접하려는 행위에 다름 아니다. 그가 고향 마을사진에서 늘 아쉬워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평면으로 보는 고향 마을에선 그 이면에 보다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는 드론 사진으로 대상체의 평면성을 극복하고 그 이면의 본질까지도 좀더 가까이 들여다 볼 수 있는 사진 작업을 하고 있다. 이번에 드론 사진으로 펴낸 사진집 <하늘에서 본 장흥>, <고향의 사계>에 실린 사진들은 이전의 사진에서 몇 단계 진일보한, 새로운 다큐 사진으로 창출되었다.

이번에 선 보인 마동욱의 고향 사진들- 부조화된 그림을 보듯 입체적이고 곡선적이고 삶의 흔적들이다. 이전 사진들에서 볼 수 없었던 고향마을의 공간적 구조까지 들추어내며 진솔한 삶의 현장을 고스란히 표현해내고 있다. 우리가 그저 무심히 지나쳐왔던 고향마을의 생태학적인 구조, 자연의 일부처럼 아니 자연 그 자체인 듯싶은 고향마을의 역사요 흔적들이다.

우리나라 노년기의 산이며 능선이며 협곡들, 유유히 흐르는 강이며 질펀히 누운 바다, 그 자연 곁에 퍼질러 드러누운 논밭들과 요리조리 뚫린 길이며 그 곁에 옹기종기 자리 잡은 마을들- 거기엔 부드러운 곡선 그리고 자연이 아주 자연스럽게 숨 쉬고 있다.

마동욱의 고향 사진들이 단순히 사진의 미학을 넘어 그 존재의 미학을 더욱 구체적으로 드러내주고 있음은 이 때문이다.
마동욱의 드론으로 담아낸 고향마을과 자연은 평면이 아닌 다면적 입체성을, 직선의 자연이 아닌 자연의 곡선 미학을 표출해낸다. 게다가 그리움이 눈에 밟히고 기억되는 고향마을의 정서요, 고향의 산하이다... 감동적이다. 메시지가 읽힌다.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마동욱의 고향 사진은 역사가 되고 있다. 흘러가지만 그러나 영원히 기억될 우리들 고향의 역사이다. 하여 그의 '고향사진'은 20,21세기 우리나라 고향을 증언하는 '고향 증언록'이 되고도 남으리라.
마동욱의 고향 사진이 더욱 소중한 것은, 그 전통의 고향마을이 사라질 지도 모르는 현대사의 전환점에서 남도의 고향을, 아니 한국 고향마을의 마지막 모습을 그것도 입체적으로 곡선으로 담았기 때문이다. 하여...먼 훗날 전설처럼 회자될 우리들의 ‘고향’은 사진작가 마동욱에 의해 영원히 살아 숨 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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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년 전 어디선가 마동욱에 대해 나는 다음과 같이 밝힌 적이 있다.
“나는 마동욱을 보며 돈키호테를 떠 울린다. …그의 기사도 정신의 광기와 몽상은 그로 하여금 늘 동떨어진 현실세계에서 비통한 실패와 패배를 맛보게 한다. 그러나 그런 가혹한 패배를 격어도 그의 용기와 고귀한 조금도 꺾이지 않는다.

마동욱이 전적으로 돈키호테를 닮았다는 것은 아니다. 돈키호테는 현실을 무시한 이상가였지만 마동욱은 이상주의적인 성향이 강하긴 해도 결코 공상주의가나 비현실적인 몽상가는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그를 보며 가끔씩 돈키호테를 떠올린다. 마동욱의 성격도 무모하리만큼 곧고 사고도 곧다. 언행도 투명하다. 자기 일에 대한 애정과 집념이 강하다. 때로 지나칠 만큼 순수하고 이상주의적이며 비현실적이다. …“
이는 기자가 마동욱을 10여년 남짓 그의 성격과 일(사진작업)을 지켜보며 느꼈던 것을 가감없이 표현한 것의 일부분이다. 이로부터 10여년이 지난 지금도 그에 대한 내 표현은 유효하다. 지금도 여전히 마동욱은 내게 돈키호테적이다.

예나 지금이나 그는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30여년 전의 그 소신으로 오늘도 자기 사진 작업에 매달리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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