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사랑 가을사랑 저 들길엔 그대 발자욱 단풍 일면 그대 오고, 돌이켜보면 추억은 그림 한 장, 사랑이 온다며 통기타에 몸을 기댄 50대 숙녀 신계행의 졸리는 듯 체념섞인 눈매와 갈색 톤은 우릴 야릇한 찻집의 고독속으로 몰고 갑니다.

작년 이맘 때는 아쉽게도 그리운 나의 동창생을 절규하며 우릴 껴안아주던 ‘미미’ 언니의 청아한 목청도 숨이 차서 그만 멈추고 그녀의 배겟머리 바다를 끝내 육지로 메꾸지 못한 채 서산 갯마을의 사나운 풍랑에 휘몰려 그 모습조차 수평선 저 너머로 자취없이 사라지고 맙니다.

2012년 9월 초 바로 그 뒷날 고독의 부스러기 오동잎과 귀뚜라미의 화음을 짙은 음색으로 격조높게 토해내던 고혹스런 허스키 ‘최 헌’ 마저 그의 전용 커피숍을 두드리던 가을비 우산을 펴 볼 겨를도 없이 목을 떨구고 우리와 결별합니다.

둘 다 암과의 투쟁에서 명상과 동의보감이 실패한 사례치곤 너무도 허망했습니다. 2013년 4월초엔 14년 동안이나 뇌졸중으로 고통받던 푸근한 이웃집 아저씨 같던 ‘상규’ 형까지 어쩌자고 덜 핀 꽃잎을 머금고 감정없는 모진 조약돌로 돌아가야만 합니까? 또 엽서 한 장, 청춘의 종점에서 오래 서성이다 삶을 마감한 찐빵 ‘희준’ 원로의 길잃은 철새와 옛이야기도 섧습니다. 이제 단골 손님과 하숙생을 먼 하늘로 떠나 보낸 우리네 온돌방은 더 이상 이웃들의 찬 손발을 녹여주고 쑤신 등허리를 덥혀줄 의욕을 잃고 싸늘한 돌침대일 뿐입니다.

어쩌면 아날로그 LP판의 극명한 퇴조에 또 하나 상처자국이 될 이들 가요계의 별똥 넷은 외로울 때마다 마음벗이 되어주던 우리들에게도 적잖은 충격과 함께 남은 여생에 대한 고요한 성찰을 불러 일으키게 하는 일말의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그래서일까? 꿈은 하늘에서 잠자고 추억은 구름따라 흐른다나
지금쯤 썰렁한 황혼의 벤치에서 하염없이 사색에 골몰하며 하루라는 무거운 여정을 용기있게 극복해 가고 있을 우리 동창들의 모습이 더욱 그립기만 합니다.
생각하면, 우리는 금잔디 이슬이 영롱하고 트럼펫의 기교와 피아노 건반음이 낭자한 탱자나무골(장흥중ㆍ고) 에서 창업한 영원한 동업자였습니다.

하여 자주 만나서 안녕을 묻고 속세의 푸념을 소곤대는 이동식 뷔폐가 우릴 푸르게 합니다. 다행이 오는 11월 2일 서울에서 우리 장고 18동창들 일제 출석점호 일정이 잡혔다고 하니, 늘그막 가을소풍에 바쁘단 핑계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또 그 잘난 명함 따위의 구속에서 초연해야만이 오히려 그 영혼이 맑게 보입니다. 조용히 자기를 희생하는 기술이 인생이고 우정의 핵심이 아닐까요?

우리 모처럼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고 새파란 풀잎이 물에 떠서 흘러가는 꿈 속의 봄날, 산제비 넘나들던 성황당길, 청노새 짤랑대는 역마차길을 더듬어 추억의 여행을 떠납시다. 아니 1969년 이후 사십 수년 동안 우울증에 시달려 까맣게 멍들고 이가 빠진 추억의 책가방을 꺼내 주인의 섬세한 손으로 그 뚜껑을 열어 봅시다.

가슴 다독일 명약, ‘모닥불과 그 얼굴에 햇살이’ 음반도 기름칠해서 지금 선반위에 졸고 있습니다. 와서 흔들어 주십시오.

아! 연못의 풀은 봄의 꿈에 취해 있는데 섬돌 앞의 오동나무는 이미 가을소리를 내는구나... /2013년 가을밤 고향동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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