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늘 후대 이르러 재조명, 재평가 받을 수 있지만, 재조명 당시 평가는 언제나 냉엄하다. 그 재조명, 재평가에서 관심 밖으로 내쳐지면 다시는 재조명, 재평가 받을 기회가 희박하고, 뿐더러 곧잘 영구히 역사 속으로 다시 묻혀지고 만다.

장흥의 고줄놀이가 그러하였고, 장흥의 고인돌이 그런 과정을 거치고 있다.
지난 1985년 목포대학교박물관의 지표 조사에서 장흥의 고인돌이 2,251기로 확인, 단일지역으로는 국내는 물론 세계에서 가장 많은 고인돌이 존재하고 있는 고을이 되었다. 이 때문에 장흥군은 지난 1997년, 고인돌의 세계문화유산 등재 예비 후보지로 선정되기도 했지만, 방촌 고인돌군의 원형 훼손, 군 당국의 문화 행정력 결핍 등으로 세계문화유산 등록에서 탈락의 고배를 마시고 말았다. 그 후 어찌 되었는가.

고창, 화순, 강화의 고인돌이나 장흥의 고인돌은 같은 문화유산이긴 하지만, 그들의 고인돌은 세계적인 문화유산이 되었지만, 장흥의 고인돌은 철저히 방치되고 버려지고 훼손되어도 좋은 고인돌이 되었다.

그동안 우리의 무관심으로 장흥 관내 고인돌 수십 기가 사라지고 말았다. 장동 만년리 마을 앞 고인돌군을 비롯, 안양 장수마을 앞 경지정리 및 수락마을 경지정리 사업지구에서 그리고 안양면 남도대학 앞 경지정리 지구 및 장흥농협 미곡처리장부지, 레미콘 공장 부지 등에서의 고인돌 수 십기가 경지정리 사업 등으로 없어지고 말았다.

또 장흥댐이 조성되면서 장흥군은 당초 3만평 규모에 고인돌 335기(상석 있는 135기, 하부구조만 남은 200여기 등)를 중심으로, 수몰예정지에서 발굴된 고려시대 추정의 주거지, 기와가마, 백자도요지 등 많은 유적과 유물을 이전 조성하는 이른바 ‘고인돌공원’을 조성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결국 1천평 규모의 부지에 형식적으로 고인돌 130기만 이전하면서, 하부구조만 남았더라도 고인돌이었던 200여기는 없어져 버렸고, 유치 일대에서 가장 규모가 큰 배바위 고인돌은 장흥호 속으로 수장되고 말았다.

장흥 고인돌은 우리 군, 우리 군민들의 역사성, 문화적 전통에 대한 무관심의 정도를 단적으로 방증하는 사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다시 한 번 과거의 장흥의 역사적 전통을 확인하는 또 한 차례의 기회를 만나고 있다. 가까이는 <존재 국역집> 발간을 계기로 존재 위백규 선생 기념사업에 대한 과제가 그 하나이고, 더 멀리로는, 구석기 때 장흥 땅에서 살았던 장흥 선인들의 유적 유물인 ‘신북 구석기 유적’에 대한 보존 그리고 그 가치 확인과 재현에 대한 과제인 것이다.

존재 선생에 대한 기념사업은 일각에서, 뒤늦게나마 민간 사회운동 차원으로 추진되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 아닐 수 없고, 하여 여기서의 논외로 한다. 그러나 신북 구석기 유적 유물에 대해서는 전 군민적인 관심이 필요한 시점이다.

지난 8월 22일 ‘제6회 신북구석기 유적 기념 행사’ 가 있었다.
이날 행사에서 거듭 확인된 것은 첫째, 장흥의 신북 구석기 유적은 구석기 때 한일 교류의 결정적인 증거물로, 국내보다 일본에서 더 크게 관심을 갖는다는 것이었고 둘째, 신북 유적을 국가 사적지는 물론 세계문화유산으로 만들어가야 한다는 게 학자들의 주장이었으며 셋째, 그 동안 군 당국이나 일반 군민들이 크게 관심두지 않는 가운데서도 김광원씨를 중심으로 유적지 마을 주민들이 자체적으로 ‘신북 구석기 보존회’를 만들어 ‘도지정 기념물’ 지정은 물론 국가 사적지로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해 왔다는 사실 등이었다.

또 이날에는, 지난 1월 9일 신북 유적에 대한 사적지 지정을 위한 심사 결과가 보고되었는데, 그 심사 결과 신북유적에 대한 국가 문화재로서 충분한 가치와 가능성은 인정되었으나 군청의 사적지 지정 범위 내의 사유지 매입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사적지 지정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이러한 이유 등은 겉치레적 이유일 뿐 기실은 지난 1월 초엽, 당시 장흥 동학 사적지에 대한 일부 군민들이 문화재청에 요구한 ‘장흥 석대들 전적지' 국가사적지 해제 운동이 큰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그 이후 군과 보존회 등에서는 전남도에 국가사적 지정 재요청하여 수락을 받고, 군에서도 이에 대한 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차제에 무엇보다 신북 유적의 국가 사적운동에 대한 전 군민적인 관심과 이해가 선행 되어야 할 것이다.

신북유적은, 이젠 전문 학자들이 국가사적으로서 가치는 물론 세계문화유산으로서 가치를 인정하고 이를 적극 주장하는 있는 실정이다. 일본에서는 더욱 관심이 크다.

그런데도, 정작 우리 군민은 관심이 별로이다. 세계문화유산은 차치하더라도, 만일 신북 유적이 국가사적으로 지정되다면, 장흥군은 구석기 후기의 대표적인 유적지-청동기 시대의 고인돌 최다분포지 등으로 연결되는 고대 원시 역사의 큰 고리라는 엄청난, 역사적 전통적인 자원을 확보하게 된다. 즉 장흥군은 고대 원시시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이 한반도에서 삶의 경쟁력이 가장 뛰어났던 땅으로의 정체성을 확보하게 되는 것이다.

이 사실 하나만이라도 얼마나 중요하고 큰 가치 있는 일인가. 이 땅에서 그들 후인으로 살고 있는 우리들의 자존과 자긍을 드높여주는 일이 아니겠는가. 이것이 전 장흥군민이 신북유적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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