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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누이의 방
마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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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9.04  14: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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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를 따라 백화점에 갔다가
아내가 0이 너무 많이 달린 옷을 집으며 나를 힐끗하기에
어떻게 우리 형편에 그렇게 배짱이 좋으냐고 쏘아붙이고는
휙 나와 찬바람 속을 걷는데
여동생의 얼굴이 몇 십 개의 동그라미로 어른거린다.

망설이고 망설이다가,
전세금이 올랐는데 빌릴 데가 없다며
0을 모두 말하지 못하고 두 장을 얘기하기에
내가 이천이냐고 물으니
깜짝 놀라며 0을 하나 빼고
다섯 장이 올랐는데 어떻게 두 장 안 되겠느냐고 하던 누이

0을 하나 더 빼고 보냈더니
고맙다고 수십 번도 더 한 누이
어머니에게 절대 말하지 말아달라고 한 누이
이혼하고 두 아이를 혼자 키우며
팔십만 원짜리 간병인으로 살아가는 누이

아내는 저만치
까맣고 조그만 0을 달고
하나짜리 0을 달고 수많은 0들 사이로 뒤따라온다.
둘이서 말없이 지하철을 타는데
그날따라 지하철은 왜 그렇게 롤로코스터인지.
앞자리에 앉은 까만 0들은 또 얼마나 무참히도 찌그러져 있는지.

오빠, 물속에서 누가 오래 참을 수 있는지 내기할래?
백만 원이다!
-시집<누이의 방>(실천문학사. 2013)에서

■전기철 시인은 1954년 전남 장흥 출생. 1988년 《심상》으로 등단. 시집으로는 <나비의 침묵><풍경의 위독><아인슈타인의 달팽이><로깡땡의 일기><누이의 방>이 있다. 현재 숭의여대 문예창작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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