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차 분석-원산지는 백두산, 일본 규수 지역으로 확인
“구석기에 한반도 일본이 교류했다” 는 가능성의 증거
백두산 분출규모 등 과학계 제공-신북유적의 큰 성과


흑요석은 폭발적인 화산에서 분출된 용암이 급격히 냉각되면서 결정화되지 않고 무정형으로 생성된 유리질 암석이다. 유리와 같이 충격을 가하면 패각상(貝殼狀)으로 쪼개어지고 날카롭고 견고한 돌날을 만들 수 있으므로 석기시대 사람들은 석기를 위한 돌감으로 사용하였다. 특히 약 2만 년 전의 후기 구석기인들은 흑요석을 사용하여 세석기, 돌날들을 제작하였다.

고고학자들은 오래 전부터 흑요석의 산지 연구에 대하여 많은 관심을 가졌다. 왜냐하면 흑요석은 고고학자들이 연구하고 있는 발굴지 주변이 아닌 외부 지역에서 유입되었기 때문이다.
흑요석의 산지는 지리적으로 특정한 몇 곳으로 매우 제한적으로 존재하며 석기 제작인들은 흑요석의 뛰어난 성질 때문에 이것을 구하기 위하여 멀리까지 여행하여야 했다.

1964년 고고학자 Cann과 Renfrew는 터키가 위치한 아나톨리아 지역과 동지중해 및 동아프리카 등 3개 지역의 흑요석들이 모두 성분이 다르다는 것을 밝혀내고, 흑요석의 산지 연구가 과학적 성분 분석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아냈는데, 이것은 자연과학이 고고학에 접목하여 이룬 가장 큰 성과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한반도에서 흑요석이 발굴된 유적은 100군데를 웃돈다. 이중 구석기 유적만 해도 현재까지 총 발굴 유적 수 121 중 26 유적에서 흑요석이 발견되었다.

백두산 이외의 흑요석 산지는 아직도 발견되지 않았으며 제주도 화산, 울릉도 화산이나 전곡리 현무암층을 형성한 추가령지구대의 오리산 화산 등은 비폭발성 화산으로 용암 성분이 흑요석을 생성하는데 부적합하다.

이러한 지리학적 조건을 염두에 두고 과거 한반도 유적에서 발견되는 흑요석은 주로 백두산과 일본열도 화산에서 생성된 것으로 지목되어 왔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시행한 일련의 과학적 성분 분석은 위의 주장을 뒷받침하지 못하고 알 수 없는 산지를 주장하게 되었다.

흑요석 산지연구의 중요 부분의 하나는 산지에서의 흑요석 원석을 찾는 것이다.
한반도 흑요석 산지연구의 어려움은 백두산에서 흑요석 원석을 발견하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약 1000년 전의 백두산 화산은 현재의 천지를 형성한 폭발화산이었다. 이 화산의 폭발은 1991년의 필리핀의 피나투보 화산폭발을 훨씬 능가하는 대폭발로 과거 2000년간 지구 상에 일어난 화산폭발 중에서 가장 강력한 화산폭발의 하나였다. 이 화산의 폭발로 인한 화산 쇄설물과 화산재는 그 이전의 화산에서 생성된 흑요석의 원석을 매몰하여 찾기가 어렵게 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또한 백두산의 여러 봉우리 중 북한 쪽에 위치한 장군봉이나 쌍무지개봉 쪽에 육안으로도 확인되고 있는 흑요석층이 있으나 현재 남북분단의 상황이 접근을 어렵게 만드는 이유도 하나 있다.

한반도 흑요석 산지 연구의 새로운 진전을 위한 발단을 만든 것은 2005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지질연구소의 Popov 등이었다. 그들은 흑요석의 원석은 아니지만 흑요석과 유사한 성분으로 구성된 일련의 백두산 화산 분출물을 성분 분석하여 백두산 흑요석은 성분이 서로 다른 3개의 그룹, 즉 백두산 1형, 백두산 2형, 백두산 3형으로 존재한다고 발표함으로 비롯되었다.
이 결과에 따른 한반도 유적 발굴의 흑요석들을 재검토한 결과, 구석기 유적에서 발굴된 대부분의 흑요석은 PNK1 또는 PNK 2로써 백두산 계열임을 밝혀졌다.

2007년 한-러 과학자 백두산 공동답사 결과 채취한 지질학적 시료의 분석결과 PNK 2과 PNK 3은 재확인되었으나 PNK 1은 아직 확인되지 못하였다

그러나 Popov 등이 주장한 PNK 1형 흑요석이 백두산 계열임을 방증하는 다음과 같은 3가지 이유에서 이 흑요석이 백두산계열로 설정하는 데에는 무리가 없다고 생각된다.

첫째 한반도 구석기 유적에서 가장 많이 발견된 이 흑요석은 중국의 지린지방, 러시아의 연해주 지방 등의 유적에서 다량으로 발굴되었는데 백두산은 이들 지역의 중심에 위치하고 백두산 이외의 이 성분을 가진 흑요석의 원산지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 둘째 PNK 1과 PNK 3의 희토류 성분의 함량이 일치한다는 것, 셋째 함경북도 청진 부근의 하상에서 채굴되어서 일본에 수출된 모래 등의 건축자재 중에서 PNK 1형 흑요석이 다량 발견되었다는 사실들을 들 수 있다.

■신북에서 -일본 규수 흑요석도 발견

신북 유적의 흑요석 원산지연구를 위한 분석은 2차에 걸쳐 이루어졌다. 첫 번째 측정에서는 서울대학교 정전 가속기 시설에 설치된 PIXE 장치를 사용하였는데 백두산 계열 PNK 2 흑요석들이 5점 확인되었다. 이 측정에서 백두산계뿐만 아니라 일본 규슈 지역의 고시다케 계통 등 일본산 흑요석들이 4점이 확인되었다.

일본 규슈 지역의 흑요석은 우리나라 남해안 지역의 몇몇 신석기유적에서 발견되었으나 한반도 구석기 유적에서는 유일하게 신북유적에서 일본의 흑요석이 발견된 사실은 큰 파문을 일으켰다.

왜냐하면 반구대, 비봉리 등 신석기유적에서 나타나는 고(古)선박 등을 비롯한 고고학적 자료는 신석기시대에는 항해술이 어느 정도 발달하여 능히 바다를 건너 일본과의 교류가 이루어졌을 것으로 판단되지만, 지금부터 2만년인 구석기 시대에 이런 항해가 가능하였는가의 문제가 제기되기 때문이다.

두 번째 신북유적의 흑요석 성분 측정은 1차의 측정을 보강하기 위한 목적으로 한국기초과학연구소에서 레이저발화 유도결합 질량분석 시설을 이용하였다. 이 장치도 PIXE와 같이 유물을 손상하지 않는 비파괴형식으로 성분측정이 가능하며 PIXE 장치가 Ru, Sr, Zr, Fe 등 몇 개의 성분만 분석 가능함에 비하여, 약 20여 개의 원소를 분석할 수 있어 흑요석의 산지 규명하는데 훨씬 뛰어난 성능을 발휘한다.

모두 23점의 신북유적의 흑요석을 분석한 결과, 1차의 PIXE 분석 결과를 확인할 수 있었으며, 나아가 더 많은 신북 유적의 흑요석 유물에 대한 산지를 결정지을 수 있었다. 이 분석에서는 1차 측정에서 규명되지 못하였던 백두산계열 PNK 1과 PNK 3형의 흑요석들이 새로이 규명되었다. 또한 일본 규슈지역에 산지를 둔 흑요석들이 더욱 상세하게 규명되었는데 고시다케-하리오지마 그룹, 요도히메 그룹, 시바가와 그룹 등이다.

신북유적의 흑요석 속에 백두산 PNK 3 흑요석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고고학적 연구뿐 아니라 백두산 화산의 발달과정과 진화에 대한 연구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신북 흑효석, 백두산서 유입됐는가

신북유적의 백두산 흑요석은 PNK1, PNK2, PNK3 등이 각각 5점, 3점, 3점으로 모두 11점이 발굴되었다. 일반적으로 흑요석의 발굴 빈도는 돌감의 성질과 채굴지의 지리적 거리를 비롯한 접근성 등이다. 백두산 흑요석의 돌감의 성질로서는 PNK 1이 가장 우수하고 그 다음 PNK2, PNK3 순서이다.

PNK3은 이제까지 돌감이 좋지 않아 석기를 만들기에 적합하지 못하다고 생각하였으나 이번에 처음으로 신북유적에서 다음어진 석기로 발견되었다. 한반도 구석기 여러 곳에서 PNK1과 2 흑요석이 동시에 발굴되었는데 전체 수량의 비율을 보면 대략 PNK1: PNK2=5:2의 비율이다.
신북유적의 백두산 흑요석 유입경로에 대해서는 백두산에서 직접 채굴되어 유입되거나 한반도 중부의 다른 구석기유적을 거쳐 간접적으로도 유입되었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PNK3 흑요석의 경우, 신북유적을 제외한 한반도 어떤 유적에서도 현재까지 발견되지 않아 백두산 산지에서 직접 유입되었다는 가설도 가능하다.

그러나 신북유적에서는 발굴된 흑요석 대부분이 분석됐지만 중부지방, 호평동이나 하화계리 등의 유적에서는 극히 일부의 흑요석 유물들만이 분석되었기 때문에 PNK3 흑요석들이 잠재할 가능성은 높다. 일반적으로 고고학 유적지에서 발굴하는 흑요석의 빈도는 원산지에서 거리가 멀어질수록 낮아진다. 백두산 흑요석의 빈도가 중부에서보다 신북유적에서 현저히 낮아지는 것도 이 법칙에 잘 따른다.

백두산과 신북유적의 직선거리는 ~800km로써 동북아지역 흑요석의 이동거리에서 최장거리에 해당한다. 2만 년 전 한반도의 서쪽, 지금의 서해는 초원지대로써 이러한 지형적 조건 때문에 먼 거리를 이동하는 것도 쉬웠을 것이다.

남해안 일대의 신석기 유적의 흑요석들은 일본 규슈 지역의 흑요석이 대부분 차지한다. 이들 신석기유적에서 백두산 흑요석은 지금까지 단 1점이 발견되었는데 극히 예외적으로 백두산에서 직접 유입된 것 보다 인접한 구석기유적을 통하여 간접 유입되었을 것이다.
신북유적에서 마제식기들의 출현으로 이 유적에 신석기 요소의 혼입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신북유적에서 발굴된 여러 점의 백두산 흑요석의 존재는 위에 언급한 남해안 신석기유적들의 흑요석 분포 형태를 고려하면, 신석기 요소의 내포 가능성에 맞지 않는다.

■신북 유적-한국과 일본 교류증거

약 2만 년 전의 구석기 유적인 신북유적에서 발굴된 규슈 지역의 흑요석은 당시에 한반도와 일본열도 사이에 교류가 있었음을 말해준다.

이러한 교류설은 과거 슴베찌르개 등 석기를 통한 고고학적 연구에서 밝혔지만 흑요석 산지 연구의 결과는 이 이론을 직접 증명하고 있다.

구석기시대에 한반도와 일본열도의 교류가 가능하였던 것은 ~2만 년 전 빙하기 극성기의 해수면 저하로 현재의 대한해협의 폭은 불과 30~40km 정도였기 때문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육지로 완전히 연결되었다고 하는 소위 육교설은 그 당시의 동해/일본해에 담수도에 대한 관측결과를 설명하지 못한다.

최근의 1000년 전 백두산 화산의 연구에 의하면 이 화산은 2가지 다른 화학적 조성의 용암을 분출하였다. 이 화산에서 처음에는 과알칼리성 유문암인 코멘다이트 성분의 용암이 분출되었고 그 뒤를 이어 조면암질 성분 용암이 분출되었다.

이들 두 용암의 화학적 조성은 각각 PNK2 흑요석과 PNK3 흑요석의 화학적 조성과 일치하다. 오래된 코멘다이트 성분 용암의 존재는 신북유적을 비롯한 한반도 여러 구석기유적에서 PNK2 흑요석의 발견으로 이미 입증되었으며 지질학적 조사에서도 ‘오래된 코멘다이트 층’이 백두산 칼데라에서 확인되었다. 그러나 오래된 조면암질 성분 용암의 존재는 신북유적의 PNK3 흑요석이 처음으로 말해준다.

따라서 약 2~3만 년 전의 구석기인들이 생활하였던 장흥 신북유적에서 1000년 전 백두산 화산의 성분을 가진 PNK3 흑요석을 발견하였다는 것은 ’밀레니엄 화산‘과 완전히 같은 성분의 화산이 천 년보다 훨씬 오랜 옛날에도 분출하였다는 것을 명백히 말해준다.
용암에 대한 이와 같은 자료는 백두산 용암의 진화과정이나 다음 분출의 규모를 예측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될 것이다.

고고학 발굴이 이렇게 귀중한 자료를 자연과학에 제공하게 된 것은 신북유적의 큰 성과의 하나이다. 신북유적의 발굴에 참가한 모든 분에게 경의를 표하며 앞으로 더 많은 신북유적의 연구가 우리나라 고고학의 비약적 발전에 토대가 되기를 바란다.

저작권자 © 장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