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초중학교(교장 이영송)는 지난해에 이어 초등 5,6학년 학생과 교직원 25명이 지난 8월 4일부터 8일까지 4박 5일간 일본으로 국제교류와 일본 문화 체험학습을 다녀왔다.

과거 식민지 시대 조선인이 겪었던 아픈 역사를 보고 배우고 느끼고, 함께 살아가야 할 이웃나라 학생들과 교류하며 한국인으로서 미래사회의 건강한 삶을 살아갈 바탕을 마련하는 여행이었다.

지난해에는 중학교 2,3학년이 다녀왔으며, 올해에는 초등 5,6학년이 참여하였는데 일본 도착 당일,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규슈지방 재일동포 인권운동의 중심지 고쿠라교회(담임목사 주문홍)로, 지문거부운동의 고 최창화 목사님이 시무하셨던 이 교회는 1927년 창립되어 재일동포들의 영혼과 정신의 안식처였고, 삶의 어려움을 극복하며 살아갈 정보 교환의 회당이었으며, 현재는 재일동포 2세에서 6세에 걸친 동포와 일본인의 신앙생활의 터전임과 동시에, 일본의 논픽션 작가 하야시 에이다이씨가 기증한 삿포로에서 오키나와까지 강제 연행과 강제 노동 관련 수집 자료로 ‘조선민족의 고난의 역사’ 실을 운영하고 있다.

목사님의 설명을 들은 후 자료와 일본군 종군 위안부 할머니들이 그린 그림(복제사진)을 관람하고, 탄광에서 숨진 무연고 조선인과 재일동포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애쓰다 돌아가신 분들의 유골이 안치된 영생원으로 이동, 헌화와 묵념을 하며 우리 한민족의 아픈 과거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초중일관교육교인 사가시립 후요학교 학생들과 교류 활동.
8월 6일(일본의 초,중학교에서는 원폭이 투하된 8월 6일과 9일 중 택일하여 기념식을 하도록 되어 있었고 본교 학생 도착 직전 기념식을 마침) 후요학교 초중 전체 학생들이 강당에 모여 박수로 유치초등학생을 맞이해 주었다.

두 학교 학생 대표의 환영사와 답사, 이어서 양교 소개, 두 학교 학생들이 준비한 합창, 합주 발표, 두 나라 학생의 아리랑 합창 순으로 1부 행사를 마치고, 이어서 두 나라 민속놀이 소개와 배우기, 펜팔 친구와 주소 교환 등으로 같은 시대를 함께 사는 이웃나라 학생들과 상대국 문화를 이해하며 즐겁고 의미 있는 시간을 가졌다.

나가사키 평화공원 한 모퉁이 ‘追悼 長崎原爆朝鮮人희牲者 1945.8.9.’(추도 나가사키 원폭 조선인 희생자) 비를 방문하엿는데, 1945년 8월 당시 나가사키현에는 7만여 명의 조선인이 살고 있었고 2만여 명이 피폭 당했으며 1만 여 명이 폭사하였다고 한다.

평화공원 안에는 희생한 일본인들의 이름이 새겨진 추도비는 있지만 강제 노역 등으로 힘겹게 살던 조선인들은 이름도 남아있지 않고 이들을 추모하는 비 하나 건립된 게 없었다.

그러한 가운데 1979년 8월 9일 ‘나가사끼 재일 조선인 인권을 지키는 회’에서 1만 여 희생자를 추도하는 이 비를 세웠는데. 이 비 설립 설명문에 이런 글귀가 있다. ‘지난 시기 일본이 조선을 무력으로 위협하여 식민지로 만들고, 그 민족을 강제로 끌고 와 학대 혹사하여 강제노동 끝에 비참하게도 원폭에 맞아 죽게 한 전쟁 책임을 그들에게 사과함과 동시에 이 세상에서 핵무기의 완전 철폐와 조선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염원하여 마지않는다.’

일본 속의 양심 있는 그리고 행동하는 시민들의 목소리이다. 추도비 앞에서 어린이들과 선생님들은 한 목소리로 이 글을 낭독하고 묵념하며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고 핵무기 없는 평화로운 세계를 기원했다.

일본 속의 네덜란드인 하우스텐보스. 쇄국정책을 폈던 에도시대에 조선통신사를 통해 조선의 유학과 예절 시문학을 받아들였다면 나가사키는 네덜란드 상인을 통한 유럽 문물을 받아들인 창구로, 놀이와 이국 문화 체험으로 즐거운 시간이 되었다.

이밖에도 자연사박물관, 우주과학관, 사가성역사박물관, 규슈국립박물관 등에서 즐겁고 유익한 체험학습과 일본 문화 체험을 하였다.

한여름 4박 5일의 일정이었으나 2년째의 국제교류란 점과 한일 양교의 긴밀한 협의와 준비, 한국수자원공사 서남권관리단의 지원, 학부모님의 신뢰가 어우러져 과거를 알고, 같은 시대를 친구로 살아가야 할 이웃나라 학생들과 교류하며, 국제사회 속에 살아갈 미래의 모습을 그려보는 귀한 여행이 되었다. 참가 학생들이 가장 깊게 인상에 남는 것을 일본 학생들과의 교류에서 찾는 것을 보며 한일 관계에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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