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 닿는 곳이 고향이요, 막걸리 한 잔 기우는 사람마다 온통 친구라는 집시 인생을 생각한다. 고향에 정을 붙이지 못했던 사람들의 이야기겠다. 꿈도 많았고, 추억도 깊숙이 서려있는 고향은 가고 싶은 곳이고, 만나고 싶은 선후배가 있다. 그것이 외로운 인생길이었다면 더 말할 필요 있겠는가. 그것이 황혼의 인생 길목이었다면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새벽꿈에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는 날이 없었다고 읊은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추적추적 보슬비는 내리는데(小雨)로 제목을 붙여본 오언절구다. 작자는 사가정(四佳亭) 서거정(徐居正:1420∼1488)으로 조선 전기의 대표적인 문신이다. 45년간 세종·문종·단종·세조·예종·성종의 여섯 임금을 내리 모셨다. 설화·수필의 집대성이라고 할 만한 [태평한화골계전(太平閑話滑稽傳)]을 비롯해서, [경국대전]·[동문선] 등의 편찬에도 깊이 참여했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나그네 길에 친구는 적고 / 인생길에는 이별이 많구나 // 무슨 까닭인가, 새벽꿈에 연이어 / (고향으로)돌아가지 않은 적이 없는 것은]라는 시상이다.

원만한 성품의 소유자로 단종 폐위와 사육신의 희생 등 어지러운 현실 속에서도 왕을 섬기고 자신의 직책을 지키는 것을 직분으로 삼아 조정을 떠나지 않았다. 당대의 혹독한 비평가였던 매월당 김시습과도 미묘한 친분관계를 맺은 것으로 유명하다. 다정다감한 성격이 원만하기 때문에 숱한 사람들과 대화로서 문제를 풀었기 때문일 것이다.

한 나그네가 길을 걷고 있었다. 함께할 친구는 적고 만나는 사람마다 이별 또한 많았다. 그런데도 이게 무슨 까닭인가. 새벽이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꿈길의 안내자가 있었다. 다름 아닌 고향을 향해 돌아가지 않는 적이 없었다는 자기도취에 취하는 향수애(鄕愁愛)를 담는다. 그렇다. 고향은 누구나 가고 싶은 곳이다. 시적 화자는 이제 인생의 황혼 길에서 인생을 정리할 시기에 서있다. 벼슬도 정리하고 미련 남아 아직도 못다 이룬 곳도 정리한다. 수구지심이라고 했듯이 만남과 이별이란 걸음 속에서 향하는 건 고향뿐임을 알게 한다.

【한자와 어구】
逆旅: 나그네, 일정한 돈을 지불하고 손님이 묵는 집. 少: 적다. 親舊: 친구. 人生: 사람이 살아감, 인생길. 多別離: 이별이 많다. // 如何: 무슨 까닭으로. 連曉夢: 새벽꿈이 연이어 오다. 未有: ~이 있지 않다. 不歸時: 돌아가지 않는 때가 없다.
/시조시인ㆍ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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