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의 노역 제도는 지금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상상을 초월했다. 변방으로 끌려갔다하면 전쟁이 끝나야 돌아올 수 있었고, 노역에 끌려갔다하면 대역사(大役事)가 마무리 되어야 귀향할 수 있었다. 이것이 당시의 제도이고 관례였다. 중국의 만리장성을 쌓는 일도 그랬고, 한 전쟁에서 수십년 동안 병사나 노역으로 전쟁을 치렀던 우리의 역사에도 그런 기록을 만난다. 아래의 한시는 이런 점에 착안하여 읊은 작품으로 다음과 같이 번안해 본다.

노역을 위해 변방으로 가신 남편에게 보낸 아내의 정성이 스며있는(征婦詞) 칠언절구다. 작가는 고려 말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 1337~1392)로 여말절신이다. 명나라와 외교관계를 주도적으로 해결한 유능한 외교가이자 친명파로 널리 알려진 사람이다. 끈질기게 참고 견디면서 인고의 아픔을 참아냈음을 보인 시를 본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한번 이별 지금까지 소식일랑 감감하니 / 변방의 임의 생사 어느 누가 알겠어요 // 오늘에야 이 애 편에 겨울옷을 부치오니 / 가실 때 뱃속 아이는 눈물인사 했답니다]라는 시상이다.

우리 선현들이 쓴 한시에는 별리(別離)를 노래한 운문이 상당히 많다. 이별은 가장 아픈 정한으로 표현되어서 이 과정 모두는 슬픔이고 두려움이었다. 그러면서 다시 만날 기약을 한다면 그 애절함을 담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남편이 군역에 끌려가 소식도 없고 생사조차 알 길이 없었다면 더욱 말할 수 있으랴. √시인은 날씨가 추워져서 남편에게 옷 한 벌을 지어 부치게 된다. 은근과 끈기로 참았던 한국 여인의 전형이다.

기막힌 사연은 심부름을 보내는 아이는 남편이 떠날 때 뱃속에 있었고 그 아이가 장성하여 아직 생면도 하지 않는 아버지를 만나러 가게 되었으니 그 지나간 세월이 얼마였는지 가히 짐작할 수 있다. √시인의 입을 빌은 화자는 아버지의 얼굴도 모르고 이만큼 장성한 자식을 보았을 것으로 생각되는 아비의 심정은 어떠했으리라 짐작할 수 있겠다. 내용의 구구절절함은 여인의 기다림이라는 단어에서 엿보게 되는 은근과 끈기로 참아낸 한국 여성의 전형을 보게 된다.

征婦詞1(정부사1)

포은 정몽주

이별인사 이후로 소식조차 감감하고
변방가신 임의 생사 그 누가 알려주나
가실 때 임신된 아이 편에 옷 한 벌
보냅니다.


一別年多消息稀 塞垣存歿有誰知

일별년다소식희 새원존몰유수지

今朝始寄寒衣去 泣送歸時在腹兒

금조시기한의거 읍송귀시재복아

【한자와 어구】
消息: 소식, 문안인사. 稀: 드물다. 塞: 변방, 국경지대. 垣: 담, 관청. 存歿: 소식이 없다. 有誰知: 누가 있어 알겠는가. // 今朝: 오늘 아침. 始寄: 비로소 부치다. 寒衣去: 겨울옷을 가지고 가다. 泣送: 눈물로 보내다. 歸時: 떠나실 때. 在腹兒: 뱃속에 아이가 자라고 있었다.
/시조시인ㆍ(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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