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선방에서 커피가 새로운 차 문화가 되어가고 있다는 소식에 신도들은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
천년 동안 이어져 내려온 다선일미의 정신이 쇠퇴해져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침 햇살에 차꽃이 이슬을 털고 맑은 향기로 일어납니다.

청태전은 당.송시대 중국에서 성행했던 차로 한반도에 유입되어 삼국시대부터 1940년대까지 장흥을 중심으로 남해안 일대에 존재했던 우리 고유의 전통 발효차입니다. 또한 푸른 이끼와 바다의 파래색을 띠고 엽전처럼 둥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차를 이야기 하면서 빠뜨릴 수 없는 것은 보림사 경내에 있는 보조선사창성탑비입니다. 이는 우리나라 금석문의 다사 기록으로 가장 빠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는 헌안왕이 차와 약을 체증선사에게 보내왔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것은 선다일미라고 하는 오늘날 절집의 차문화가 구산선문의 종찰인 보림사로부터 시작되었음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차의 덕성을 화(和) 경(敬) 청(淸) 적(寂)이라고 합니다. 스님들은 수행하는 과정에서 급한 마음에 흔히 상기가 되고 몸과 마음이 부조화를 이루어 원만하게 정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몸과 마음을 조화롭게 하는데는 차만큼 좋은 것이 없었기에 차를 수행의 조도로 삼았던 것입니다.

차를 다리는데는 먼저 좋은 물이 있어야 합니다. 보림사의 약수는 차를 다리는데 가장 적합하다고 다인들이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수행자는 찻물을 긷거나 끓는 소리를 듣고 분명하게 물의 성품과 자성이 둘이 아님을 살펴서 회광반조 해야 합니다.

또 눈으로 차의 색깔을 보고 색의 성질이 본래 공함을 요달하면 대상마다 자성이 빛을 나투게 됩니다. 혀로는 맛을 음미 하지만 속지 않으면 금방 수승화강이 이루어져서 어느덧 청량세계에 노닐게 됩니다.

하지만 차의 맑음에 집착하면 맑음을 비추고 있는 차에 걸림을 입어 자유롭지 못합니다. 그래서 맑음마저 타파하고 나면 일체 차별경계가 사라지고 걸림없는 자비심으로 보살행이 나옵니다.
이처럼 차의 덕성은 우리의 본래 자성과 동일한 성품을 가지고 있기에 하나된 자리에서 놓고 마셔야 합니다. 그래서 천지간에 홀로 차한잔 마시기가 쉽지 않습니다.
수없는 헛차를 마셔봐야 비로서 조주선사의 차나 한잔 하시게라는 화두에 계합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세상이 이토록 시끄럽고 힘든 것은 일찌기 자기 자신에게 차 한잔 대접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제 밖으로 흐르는 생각을 멈추고 지극한 마음으로 자신에게 차 한잔 올리십시요. 그러면 일체의 차별심이 사라지고 문득 화경청적의 본래 천진한 자성이 스스로 몸을 나툴 것입니다.

다산 정약용은 보림사의 야생차를 둘러보고 차를 법제하는 법을 알려주었으며 자신이 직접 마셔본 결과 보림사의 죽로차가 결코 중국의 고급 보이차에 뒤지지 않다고 후대의 증언을 위해 기록으로 임하필기에 적고 있습니다.

그간 잊혀졌던 우리 고유의 전통 발효차인 청태전이 이제 장흥군을 중심으로 연구하고 복원되어 구산선문의 종찰이며 선다일미의 본향인 보림사에서 한중일 삼국의 고승대덕과 다인들이 모여 비로자나 부처님께 헌다의식을 가지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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