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정철, 존재 연구자로 자처하다

위정철씨가 ‘존재 위백규와 다산 정약용의 생애와 사상연구’를 펴냈다. 장흥위씨인 위정철 (73·사진)씨는 ‘장흥 위씨 요람’ ‘위씨 천년세고전집’을 펴내는 등 장흥 위씨 관련 문헌에 깊은 관심을 가져 온 언론인(전 남도일보 편집국장) 이다.

이번 ‘존재 위백…;를 펴내게 된 위씨의 변이 이채롭다.
“이웃 강진에서도 다산 정약용과 김영랑의 동상이 있다. 다산은 경기도 마현 출신이지만 18년간 이곳에서 적거하며 무려 500여 권의 책을 저술했다. 감히 누구도 흉내내기 어려운 위대한 업적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비록 다른 지역 출신이지만 동상을 세워 기리고자 한 것이다. 강진 출신 김영랑은 일제의 창씨개명 반대와 항일운동을 하면서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그는 시인으로 ‘모란이 피기까지는’ 등의 주옥같은 서정시를 남긴 주인공이다.

두 지역의 사례에서 보듯 동상의 주인공을 선택한 대체적인 기준을 알 수 있다. 곧 선인들 가운데 지역민들의 정신적 표상으로 삼을 만한 인물을 선택한 것이다.
그러나 동상을 세운 이후 그 주인공의 저술 등의 후속조치는 현격하게 다르다. 강진의 경우, 다산의 유적을 찾아 성역화하는 등의 지속적인 사업을 병행하고 있다. 김영랑에 대한 기념사업도 꾸준히 벌이고 있다. 이로 인해 다산의 적거처와 유물전시관 그리고 김영랑의 고택이 관광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

이에 비해 존재 선생에 대한 장흥군의 후속조치는 거의 전무하다.
물론 선생의 생가가 문화재로 지정되고 장흥군이 ‘지제지’와 ‘정현신보’를 국역출판하기도 했다. 이런 정도의 후속조치를 했으니 놀지는 않았다고 여길 수도 있다. 아쉬운 것은 강진에 비하면 실속이 없다고 볼 수 있다.

따지고 보면 생가의 국가유형문화재 지정은 자치단체의 몫이 아니고 정부의 소관이었다. 그러므로 장흥군이 한 일은 고작 2권의 저서를 번역해서 출판한 것을 제외하면 아무것도 없다.”
다시 말해 장흥군에서 존재 선생은 거의 잊혀진 것이나 진배없다고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김석화 교수는 갈파했다. 2003년 6월12일 장흥문화원이 주최하는 심포지엄 ‘존재 위백규의 스펙트럼’ 제하의 논문에서 “우리가 18세기 향촌사회·향촌문화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존재 선생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존재 선생의 삶과 문학은 보는 자가 보고자 하는 만큼만 그 실체를 드러내는 저 千古名勝 天冠山과도 같은 신비한 존재다. 존재 선생의 삶과 문학은 ‘종합에의 의지’를 가지고 전체를 섭렵해 나갈 끈질긴 연구자를 기다리고 있다”라고 밝힌바 있다.

김 교수의 진단은 참으로 예리하다. 과연 ‘종합에의 의지’를 가진 연구자가 언제쯤 나올까. 기다리면 올까. 하지만 그가 말한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나도 연구자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어쩔 수 없이 천학비재한 문외한이 당돌하게 천착한 것이다. 어느 한 분야도 감히 명함을 내놓을 수 없는 한계를 너무도 잘 알고 있다. 단지 지금까지 학계의 연구 자료를 모아 보자는 의도로 덤빈 것이다”

존재의 조명사업은 물론 존재선생의 연구자가 나타나지 않아 위씨가 나섰다는 변이다.

■존재의 학문적 위상, 발자취 새롭게 조명

위정철씨는 이 책에서 18세기 호남실학의 정점에 섰던 두 인물을 비교 분석하고 있다.

위씨가 선조인 존재 위백규(1727~1798)에 대한 정신세계를 탐구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1998년 남도일보 편집국장과 주필을 끝으로 언론계를 떠나면서부터다.
그리고 당대 최고의 실학자인 다산 정약용과의 관련성을 찾아 나선 끝에 마침내 위백규에 대한 학문적 위상과 발자취를 새롭게 조명해낸 것이다.
장흥에서 존재(存齋) 위백규 선생은 특별한 인물이다.

벼슬이라고 해야 고작 옥과현감(종 6품)에 그쳤음에도 장흥에서는 그의 동상이 세워져 있고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그의 업적을 기린다. 무엇이 이처럼 위백규 선생을 각별하게 만들었을까?

이런 의문을 갖고 저자는 정면으로 마주서 10여년간 위백규 선생의 사상의 기층을 파고들었다.

그러나 집필 자료가 대부분 어려운 고전으로 돼 있어 이를 해독하기가 결코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그는 100여권이 넘는 ‘존재’와 ‘다산’의 서적을 탐독하고 또 학자들에게 문의하며 탑을 쌓듯 한 줄 한 줄 책을 완성했다. “제 조상인 위백규 선생은 장흥에서 뛰어난 실학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동시대에 다산 정약용이 존재함으로서 그 소중한 지식들이 묻혀 버렸다고 할 수 있겠지요. 그래서 존재와 다산을 비교해 정리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이 책을 집필했습니다” 라고 집필 의도를 밝혔다.

다산의 생애와 존재의 생애 전반을 비교하고 문학세계, 철학관, 경세관 등 3분야로 나눠 두 사람의 차이를 세세하게 분석했다. 관심이 없다면 좀처럼 접근하기 어려운 작품들도 수록돼 있으며 집필에 쓰인 단어들도 곱씹어 봐야만 할 것 같은 고풍스러운 문장이다.

위씨는 이 책을 통해 ‘다산’보다 한수 낮은 것으로 분석되는 ‘존재’가 알고 보면 천재성을 가진 지역 학자임을 알 수 있으며 그가 알려지지 못한 배경에는 당시 지방과 수도권의 격차때문으로 해석하고 있다.

무엇보다 ‘존재’를 통해 18세기 조선의 향촌사회·문화에 대해 보다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8년에 걸쳐 세상에 나온 이 책은 ‘존재’에 대한 평가를 넘어 한 장 한 장 놓치기 힘든 옛 선조의 사상을 담고 있음으로 고전문학을 연구하는 학도들에게 추천할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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