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가 글을 올립니다.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이 인생무상이라 했습니다.
그렇게도 당당하시고 왕성하셨던 위원님께서 허무하게 우리 곁을 떠나셨다니 지금도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우리들의 동료이었던 김천일부장이 곁을 떠난 지도 400여일 밖에 되지 않아 아직도 잊어지지 않고 있는 가운데 위원님마저 저 먼 곳으로 가셨으니, 그 빈자리 정말 허무하기만 합니다.

연락이 궁금하여 당신의 폰으로 안부를 물으며 ‘건강관리 잘 하고 있으니 걱정 말고 신문사를 위하여 열심히 일해 달라’고 당부하셨던 그때 그 시간도 며칠밖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위원님!
위원님께서 저 먼 세상으로 가셨다는 소식은 우리들에게 청청벽력 같은 소식이요, 살점이라도 뜯기고 가슴을 도려내는 아픔을 가눌 길이 없었습니다.
항상 사랑을 주셨고 우리들에게 스승이셨던 위원님! 위원님의 자전소설 ‘반항 대 반항’ 자전소설 출판기념회가 열린 것은 1997년이었지요.

이등병 9호봉 출신으로 피맺힌 반항의 절규, 사랑했던 한 여자에 얽힌 진솔한 애정 드라마, 육군 교도소의 이야기, 검정 낙까오리모자(빵모자)에 넓고 넓은 검정 썬그라스를 쓰고, 담배를 피우시며 눈 높여 쳐다보시며 저희들에게 정론을 충고하셨던 당신과 함께 했던 그 시절의 모습들이 눈에 선합니다.

당신이 주셨던 장미빛 같은 애정과 뚝심, 참으로 겸손하고 인정이 넘쳐 남에게 늘 배려하셨던 위원님이 아니었습니까?

위원님과 저희들이 같이 한 지도 어언 16년이 지났습니다. 정론직필로 날카로운 위원님의 칼럼, 우리들에게 스승이셨고 맏형이었으며 독자들에게는 큰 인기를 독차지하셨지요.

얼마 전까지도 안부를 묻고 오히려 저희들을 걱정하셨고, “금방 만나 술 한 잔 하자‘며 안심시키셨던 위원님의 그 넘치는 애정과 젊음의 반항, 지금 생각하면 병 속에서 겪어 오셨던 육신의 고통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었겠습니까?

위원님께서 저 먼 곳으로 가셨지만, 우리 사회는 위원님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때로는 천진한 미소로 때로는 어기찬 욕 소리와 맥주 잔에 소주 한 잔 섞여 단숨에 삼키고, 입술로 안주 하며 ‘허허허’ 터털 웃음을 지으셨던 위원님과 함께 했던 그 지나간 기억들을 우리는 항상 잊지 않을 겁니다.

이승에서 못다한 일일랑 저승에서 꼭 성취하시며 영면하십시. 우리들은 사모님을 비롯하여 남겨놓고 가신 가족들을 옆에서 큰 관심으로 지켜보겠습니다.
부디,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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