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시장 한우판매 제안… 지금도 토요시장 애정 깊어
“욕심내지 않고, 분수 지키며, 열정적으로 최선 다한다”

수명이 연장되며 회갑, 고희가 예삿일처럼 돼 버린 요즘, 5,60을 전후한 은퇴나 정년퇴직은 우리나라 남자들에게도 가장 두려운 단어가 되고 있다. 대부분의 중장년 남성들은 아무것도 준비하지 못한(않은) 채 인생 후반전으로 내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정년 퇴직이후 ‘제2의 인생’, ‘인생의 이모작’을 불사르며 ‘건강한 인생’ ‘행복한 인생’을 영위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장흥군청 건설과장으로 재임하다 지난 2007년 11월 31일 정년했던 변동식씨도 그처럼 제2의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주인공 중의 한 사람이다.
올해 나이 65세. 대한노인회 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는 나이지만, 본시부터 건강한 체력 탓인지 50대 중반 쯤 돼 보이는 변동식 씨는 ‘내 인생에 은퇴는 없다’고 주장한다.

그는 여느 60 중반의 사람들과 달리 매일 농장에서 일하고 사회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그는 공무원 근무를 그만뒀을 뿐, 자기 인생은 60 이후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는 확신하고 있으며 실제로 그런 삶을 실천해오고 있다.
그가 매일처럼 일을 나가는 농장은 안양면 비동리 뒤 사자산 기슭의 2천여평 남짓되는 농원이다.

그곳에서 그는 구기자를 비롯 녹차, 매실 과수농사를 짓고 있다. 오랫동안 분재를 취미로 가지고 ‘장흥군 분재동호회’ 회장도 맡으며 분재에 큰 관심을 가져와 이제는 어엿한 ‘분재 전문가’라고 할만큼 분재 키우기와 관리에 뛰어난 솜씨를 가진 그는 집 정원에 40여 평의 하우스에서 다양한 분재들을 키우고 있다.

앞으로 농장에서는 생약초를 본격적으로 재배해 보겠다는 계획이다.
그는 농원 경영에 대해 “작은 농원을 가지는 게 소원이었고, 또 퇴직 후를 생각해 준비를 해왔던 사업이었다”고 말했다.

“공무원이 되지 않았으면 진즉 농삿꾼이 되었을 것입니다.”

실제로 광주기계공고(토목과)를 졸업 후 군 복부를 마치고 귀향한 그가 장흥에서 처음 시도한 일이 농장 일이었다.

당시는 1973년도 김재식 전남지사 때의 일이었다. 전남도에서 1개군에 농촌 젊은이 5명씩 선발해 농민교육원에서 6개월간 선진 농업 육성 후계자 양성 교육을 시킨 일이 있었다. 그 때 변동식 씨는 2기생으로 입소해 교육을 수료했고, 당시 교육수료 후 교육생에 한해 지역에서 10㏊ 부지만 확보하면 키부츠 즉, 이스라엘식 협업농장을 운영할 수 있도록 지원해준다고 해서 부지확보를 위해 애를 썼지만 마땅한 부지를 확보하지 못해 농장 일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농장일을 해보려고 했는데 못하고, 군청 공무원 시험 25일 앞두고, 날치기 벼락시험을 준비해 토목직으로 응시해 합격, 당시 관산면사무소에서 근무하게 되었습니다.”그후 관산면사무소에서 5년만에 건설계장으로 승진하며 장흥읍사무소로 승진 전보되어 건설계장이 되며 순탄한 공직생활이 시작된다. 그리고 이후 유치면장, 관산읍장을 거쳐 군건설과장을 끝으로 정년퇴임 한다.

공무원생활 중 가장 보람 있었던 일에 대해 묻자, 그는 서슴없이 2007년 7월 문을 연 정남진토요시장의 한우판매 제안 등 토요시장 활성화에 대한 관심과 나름대로의 토요시장에 대한 애정을 쏱았던 일이라고 대답했다.

“광주공고 동문인 남도건설 이웅평 사장과 자주 만나곤 했는데, 당시 이명흠 부군수 시절 때였는데, 언젠가 전북 정읍시 산외면 한우판매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고, 장흥도 한우고장이기도 하니 장흥 토요시장에서 남도 최초로 한우고기를 판매하면 대박이 터질 것이라고 하면서 한우판매를 적극 권하기에, 이를 간부회의 때 정식으로 제가 제안을 했지만 그후 1개월이 지나도 아무런 조치가 없었지요.

1개월 후엔가 이웅평사장이 다시 내게 토요시장 한우판매건에 대해 어찌된 것이냐고 재촉해 와, 당시 이재희 마케팅과장과 함께 이명흠부군수를 찾아가 재차 제안해, 김인규 군수가 축협 측에 협조 요청을 했고, 축협에서 산외면 한우마을을 견학을 다녀와 축협에서 처음으로 토요시장에 한우전문매장을 열게 되고, 이어 장흥한우협회에서 도 한우판매장을 열게 되면서 토요시장이 장흥한우 전문 판매장으로 발전되고 이것이 토요시장 활성화의 초석을 마련하게 된 계기가 된 것입니다.”

그 후, 한우 판매장 개설로 토요시장과 더욱 각별한 인연을 맺은 그는 토요일이면 출근하다시피 토요시장을 둘러보며, 토요시장에 대한 진한 애정을 드러내곤 했다. 외지에 나가 있는 친구며, 학교 동창, 향우들에게 직접 전화해 토요시장 한우고기를 홍보하고 직접 주문받아 택배로 배달하고, 광주공고 동창들을 장흥으로 초대해 토요시장 소고기를 맛보게 해주는 등 그의 토요시장의 애정은 각별했다.

변동식 씨의 고향은 관산읍 지정리 1구 갓두마을(‘지북마을’이라고도 한다)이다. 여기서 태어나 어린시절을 보내고, 관산초등학교, 관산중학교를 다녔으며 광주공고를 졸업했다.
고향에 대한 애정도 남다른 그는 지난 2001년부터 현재까지 10여년째 관산초등학교 총동문회장을 맡아오고 있다.

서예가 치인 이봉준씨와 인척이기도 한 그는 퇴직 후 바로 (사)한국서가협 장흥지부회원으로 가입, 틈틈이 이봉준 씨의 서예원을 찾아 서예를 익혀오고 있다.
장흥군 분재동호회 회장이었을 때 총무를 맡았던 인연으로 가까이 알게된 김재원 귀족호도박물관장과는 지금도 흉허물 없이 지내는 사이. 그 인연으로 귀조호도박물관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자식농사도 그럴듯하게 결실을 맺었다. 부인(박종단, 59세)과 사이에 2남 1녀를 두었는데, 다 성혼시켰다. 장남 민섭(34)은 한양공대 졸업 후 프로야구 제 9구단을 창업한 엔씨소프트에서 근무하고 있으며, 2남 경록(32)은 서울지하철공사에 근무하고 있다.

“자식들도 다 키워 출가시키고 성혼시켰겠다, 이제는 큰 욕심 없이, 주말이면 어김없이 등산을 하고, 틈틈이 서예원에서 서예를 공부하고, 그리고 농장일을 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인생을 보내고 있습니다. 지금처럼 정신적인 여유도 있고, 하고 싶었던 분재와 과수, 화초 등 농장 일도 하고…지금같이 내 인생에서 정신적으로 풍요로웠던 때가 있었을까 싶습니다.”

이제야 비로소 욕심부리지 않고 분수지키며, 자기만의 행복을 위해, 나이를 잊은 채 열심히 열정적으로 일하고 여유있게 사는 삶이 ‘그저 즐겁고 행복하다’는 변동식 씨의 제2의 인생-그 인생은 그만큼 성실히 준비하고, 정성으로 자기 삶을 영위해 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의 행복하고 건강한 이모작 인생이 계속되어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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