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지화, 전시장 조성 운동, 전 군민 힘 모을 때


지난 10월 15일, 장동면 신북 구석기 유적지 답사를 위해 신북 북교리를 방문한 ‘아시아 구석기 국제학술회의’ 참가자 중 어느 일본인 학자가 필자에게 통역자를 데리고 와 “왜 유적지를 죄 묻어버리고 전시관도 없느냐”고 물었다. 필자는 무슨 대답을 어찌해야 하나 잠시 머뭇거리다가 ‘국가사적지 지정과 박물관 조성을 추진 중에 있다’고 대충 그럴싸하게 얼버무리고 말았다.
외국에서 관련 고고학 및 구석기학 학자들이 부러 이곳까지 찾아왔지만, 우리는 그들에게 아무것도 보여줄 수 없었다. 그렇게 중요하다는 유적의 발굴 현장은 모두 묻어버렸고, 유물을 전시한 전시관도 없이 현장에, ‘이곳이 바로 구석기 유적지 현장’이라는 내용이 적힌 표지석과 현판 등만 보여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남들은 없는 것도 그럴듯하게 만들어내고 그럴듯하게 과대포장도 서슴치 않으면서 ‘자랑하고 치장하기에 바쁜 이 시대’에 우리는 있는 것마저 아무렇지 않게 묻어버려 왔지 않았는가, 싶다.

그리고 새삼, 지난 2004년 6월, 신북 유적지 같은 고고학 유적지가 일본에서 발굴되었다면, 곧바로 박물관 조성은 물론 진즉에 사적지가 되고, 중요한 학술적 관광지가 되고도 남았을 것이라는 어느 국내 고고학자의 말을 상기했다.

장흥문화의 정체성에서 중요한 부문은 고고학적 유산이다. 예컨대 선사 유적인 고인돌과 지난 2002,3년 장동신동에서 발굴된 후기 구석기 유적, 장흥댐 수몰지에서 발굴된 선사시대에서 삼국시대, 고려조, 조선조에 이르는 대규모 유물 등이 장흥의 중요한 문화적 자원이요 자산이다. 그런데 그러한 장흥의 귀중한 자산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모두 그 유적, 유물을 발굴했던 전남대, 호남대, 조선대 등의 대학박물관 지하실에 먼지 뒤집어 쓰고 처박혀 있지 않은가.

근세 들어 지역문화는 곧 관광문화로 이어진다. 관광문화가 잘 발달된 선진외국에는 관광명소마다 예외없이 박물관이 있다. 그 박물관에 그 국가 그 지역의 집적된 문화는 곧 그들 국가, 그들 지역의 문화적 소중한 자산이요, 역사로서 우리에게 자랑돼 진다.

장흥군도 이제 1천만 관광시대를 만나고 있다. 장흥을 찾는 외지인들에게 지금 우리가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천관산, 보림사, 정남진, 천관산문학공원 등 사적지나 명승지, 명소일 뿐이다. 장흥의 전통이니 장흥의 정신, 장흥의 역사가 결집된 박물관은 없기 때문이다.(방촌 문화유적 박물관이 있지만 조선조 역사라는 일부분만 보여줄 뿐이다)

신북 구석기 유적은 그동안 ‘탐진강을 중심으로 한 지정학적 장흥’이라는 주류적 장흥역사에서 거의 외면받았던 ‘보성강 상류지역으로서 장흥’이라는 또 하나의 지정학적, 역사적 가치를 일깨워준 큰 사건이었다.

당시 발굴단(조선대학교 박물관팀)은 신북의 후기 구석기 유적지를 장동면 북교리 일원을 중심으로 펼져진 보성강 상류변의 4만평에서 10만여평을 유물 산포지로 추정했다. 그리고 그 유적 산포지 중 겨우 6천여 평에서 후기 구석기를 대표하는 3만 1천여 점을 발굴, 국내 고고학계를 놀라게 했다.

그리고 유적 발굴팀은 발굴조사 후, ①신북 유적을 전남도 기념물로 지정해야 한다 ②향후 10년 계획으로 정밀 지표조사 및 매년 1,2개월 정도 발굴 조사하여 미조사 지역의 문화양상을 파악해야 한다(전체 유적범위를 파악하기 위한 시굴조사가 필요하다) ③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국가사적 지정을 추진하고 유적지에 야외 전시장을 세워 지역사회의 역사교육장 및 문화관광 자원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등의 의견을 제시한 바 있다. 이러한 발굴 팀의 의견에 좇아 장흥군이 추진한 것은, 고작 전남도 기념물 지정과 국가사적지 지정 추진이었다.

국가사적지 추진은 장흥군이 지난 2008년 8월 12일에 신청, 지금까지 계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신북 구석지 유적의 전체 성격을 규명할 수 있는 학술 발굴조사의 장기 계획은 철저히 무시된 채, 오직 지난 2002,3년 발굴 성과만으로 국가사적 지정을 신청한 것이다.

발굴조사팀도 언급했듯, 2002,3년 발굴 조사의 성과만으로 국가사적 지정은 미흡하다는 것이 관계 학자들의 의견이었는데도, 그 이후 군은 더 이상의 조치가 없었다.

우리는 지난 1997,8년 당시 군 행정의 소극적인 조치로 장흥의 고고학적 최대 유산인 장흥 고인돌의 세계문화유산 등록이 좌절되는 아픔을 맛보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제라도 군 당국은 물론 전 군민이 신북 구석기 유적에 대한 관심을 제고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장흥군의 귀중한 유산이요 자원이 된 신북 구석기 유적지와 그 유물이 명실상부 장흥군, 장흥군민의 것이 되게 하고, 나아가 장흥의 문화관광자원으로서 더없는 가치를 발현 할 수 있도록 우리 모두 이제라도 모두 한마음이 되어 가슴을 열고 귀를 활짝 열고 지혜를 모아야 할 때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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