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릭없는 삶, 트릭없는 사진 추구해 온 마동욱, 20년 사진작업의 결정
수려한 풍광, 3백개 마을정경등 3천여장-“장흥의 소중한 기록 유산”

■장흥 현대사, 장흥풍물 10년 담은 史書

고향마을 사진가 마동욱 씨는 지난 1998년 ‘아 물에 잠길 내 고향’이라는 제목의 사진집을 펴냈다.

그 사진집은, 장흥댐 건설로 수몰되는 유치지역의 문화와 역사는 물론 수몰지역 사람들의 삶과 애환을 담아낸 사진집으로,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펴낸 수몰지역의 기록 사진집이라는 의미에서 크게 평가받은 사진집이었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흐른 지금, 마동욱 씨가 주제를 달리하여 남도 장흥의 산하와 풍물, 사람들에 대한 다큐 사진집 ‘정남진의 빛과 그림자’을 펴냈다.
이 사진집은 마씨가 20여년 동안 거의 날마다 카메라에 담아 온 장흥의 산하와 장흥의 땅, 장흥 사람들에 대한 고향마을에 대한 기록 사진집이다.
사진 작업은, 자연의 풍물이건 어떤 물상이나 사람이건 그 대상체의 한 순간을 정지화면으로 카메라에 담는 작업이다.

사진 작가는 이 작업에서, 어떤 의미를 전해주는 그림처럼 아름다움이나 또는 독특한 의미를 담는 등 어떤 의미를 만들어 전해주는 작품으로 승화시켜 이른바 ‘작품사진’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하여 그들은 보통 ‘사진 작가(作家)’라는 이름으로 불리우고, 또 그들이 대개 사진집을 펴내게 되면, 대부분은 작품 사진집이 되기 십상이다.
이번 마동욱 씨의 사진집은 그의 표현대로라면 작품 사진집은 아니다. 물론 작품사진이라 고 할 수 있을 좋은 사진들이 많지만, 마동욱 씨의 표현대로 작품 사진이라기보다는 기록 사진 같은 것들이 주류를 이룬다.

20여 년 동안 사진 작업에 매달려 온 마동욱 씨지만, 그는 스스로를 ‘사진 작가’ 불리기를 거부한다. 그는 그저 ‘사진가(寫眞家)’로 불리우길 원한다. 이는 그가 자신의 사진 작업 행위를 작품을 창출해 내는 작가의 행위로 보지 않는다는 의미에 다름 아니다.
그는 사진에 대해 기록성의 가치를 강조한다. 기록은 역사이다. 그 역사는 사실, 진실을 전제한다. 있는 그대로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그는 또 사진의 사실성을 강조한다. 여기서 사실성은 언론 기사(記事)의 본질인 팩트(fact), 기사의 사실성과도 구별되는 의미를 지닌다. 기사의 그 사실에는 기자의 주관이 개입될 수 있지만 사진에는 주관의 개입을 불허하기 때문이다. 해서 그는, 자기가 추구하는 사진은 어떤 기사보다 사실적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의 사진 작업에서도 감히 연출 같은 것은 생각지도 않는다. 있는 그대로의 像을 담을 뿐이다.
10여 년 전의 ‘아 물에 잠길…’도 마찬가지였다. 해서 그 사진집은 지금은 아주 소중한 사서(史書)로 가치도 지니고 있다. 이번 사진집역시 지난 20여 년 동안, 장흥지역의 역사와 풍물, 장흥사람들을 사진으로 기록한 ‘한 권의 소중한 史書’ 같은 의미를 지닌다. 누가 이런 일을 해낼 수 있을까. ‘사진가 마동욱’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물론 이번 사진집에도 작품 사진 이상의 좋은 작품들이 수도 없이 많다. 이런 작품 사진들은 마동욱 씨 20년의 사진작업 메카니즘이 만들어낸 결과이다.

■사진마다 수많은 메시지 담겨

이러한 마동욱 씨 사진은 작품 사진이 아닌 데도, 있는 그대로의 물상을 찍었을 뿐인데도, 많은 메시지를 담고 있다.

마동욱 씨는 2,3년 전부터 ‘고향 이야기’라는 인터넷 불러그를 구축하여 운영하고 있다. 최근 들어 그의 불러그에는 하루에도 방문자가 적게는 2,3천명에서 많게는 5,6천명이 드나든다. 그의 블러그가 이처럼 인기가 있는 것은, 그가 불러그에 올리는 사진들 때문이다.
그의 모든 사진에는, 고향에 대한 안타까운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점차 사라져 가는 고향의 풍물이, 고향에 남아 고향을 지키는 사람들의 서러운 이야기가 들어있다. 그리고 장흥 같은 시골 농촌의 청정 지역서만 볼 수 있는 깨끗한 자연 풍광의 천연적인 색과 순수한 느낌이 담아있는 사진들이다. 마동욱의 사진 철학이 고스란히 들어있는 사진들이다. 그 사진들을 보러 그의 불러그에 하루에도 몇천 명씩 방문한다.

게다가 그는 보는 사람들이 지루하다고 지적할 만큼, 같은 정물, 하나의 물상에 대한 사진들을 수십 장씩 올리기도 한다. 물론 기록일 뿐이지만, 그는 한 대상체(對象體)에 대한 사진을 시시각각으로, 또는 각도를 달리하고 근원을 달리하고 구도를 달리하고 명암을 달리하여 카메라에 담는다. 이리하여 그가 선택하는 그 대상체는 하나의 정지된 화면이 아니라 보다 입체적이고 구체적인 의미를 가진 살아있는 대상체로 재탄생한다. 어떤 대상체든 그렇게 기록하는 일이 습관처럼 배어있는 그다.

그는 자신의 사진작업에서 이런 방법을 통해 보다 다양하고 고유한 메시지를 부여한다. 그의 사진이 하나의 ‘사실 기록’ 같은 것에 불과하지만, 그 기록에 수많은 의미가 창출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가 사진작업을 그처럼 하기 때문에, 그의 사진은 어느 작품사진 못지않은, 아니 그 이상의 메지지를 담게 된다.
단순한 사진 작업이지만, 그가 그 단순한 작업을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지치지도 않고 매달리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런 일은 감히 평범한 사람은 해낼 수 없는 일이다.
이러한 일은 결코 그의 성격과 무관하지 않다.

■돈키호테적 이상과 신념은 여전

10여년 전 필자는 ‘아 물에 잠길…’에서 마동욱 씨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힌 적이 있다.
“어떤 때 필자는 마동욱 씨를 보며 돈키호테를 떠 올린다…돈키호테의 기사도 정신의 광기와 몽상은 그로 하여금 늘 동떨어진 현실세계에서 비통한 실패와 패배를 맛보게 한다. 그러나 이러한 가혹한 패배를 겪어도 그의 용기와 고귀한 뜻은 조금도 꺾이지 않는다.

마동욱 씨가 전적으로 돈키호테를 닮았다는 뜻은 아니다. 돈키호테는 현실을 무시한 공상주의적 이상가였지만, 마동욱 씨는 다소 이상주의적인 성향이 강하긴 해도 결코 공상주의자나 비현실적인 몽상가는 아니다. 그럼에도 필자는 마동욱 씨를 보며 가끔씩 돈키호테를 떠 올린다…마동욱 씨는 성격도 무모하리만큼 곧고, 사고도 곧다. 언행도 투명하다. 자기 일에 대한 애정과 집념이 강하다. 때로 지나칠 정도로 순수하고 이상주의적이며 비현실적이다. …그 스스로 얼마나 많은 좌절을 경험했는지 모른다. 자기 일과 자기 소신에 대해 얼마나 많은 회의를 체험했는지 모른다.

그렇지만 필자는, 그가 현실이 던져주는 가혹한 좌절, 늘 罪業처럼 짊어진 궁핍이라는 무게를 끝까지 버티며 결코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마치 자기의 몽상적인 이상이 현실에 부딪쳐 처절한 실패를 겪어도 결코 자기의 뜻을 굽히지 않았던 돈키호테처럼. …그에게는 敵도 적지 않다. 무모하리만큼 헌신적인 그의 일에 대한 경계 때문에, 또는 직선적인 언행 때문에 빚어진 부산물일 것이다. …그에게는 트릭이 없다. 그는 누구에게나 마지막 카드를 감추지도 않는다. 비장의 무기 따위는 숫제 없는 그다. 통하면 자기의 속내를 알알이 보여준다. 보통사람들이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 점이 도리어 상대에게 위협적인 존재로 인식하게 만드는 지도 모른다.….”

이는, 당시 필자가 근 10여 년 동안 그의 곁에서, 그의 성격과 일(사진 작업)을 지켜보며 느꼈던 것을 가감 없이 표현하는 과정에서 밝힌 내용의 일부분이다. 그의 타고난 순수성, 그의 타고난 진실에 대한 강한 집념과 소신 등을 지켜보며, 때로 돈키호테적 이상과 신념으로 자기 일에 매달리는 그를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그로부터 10여 년은 그 이전의 10년 보다 더욱 가까이서 그를 지켜 보아온 세월이다. 그런데 10여 년 전에 그에 대한 표현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이해타산적이고 계산되고 때로 트릭(trick)이 무시로 통용되는 현실에서 필자가 아는 마동욱 씨는 여전히 돈키호테적이다.

■트릭이 없는 사진은, 트릭이 없는 그의 삶에서 비롯

예나 이제나 그는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강산이 한 번쯤 변하고 남았을 그 시간이 지났음에도 그는 여전히 그 세월을 뛰어넘어 10년, 아니 20년 세월 저편의 마동욱 씨의 모습 그대로 오늘도 자기의 사진 작업을 추구하고 있을 뿐이다.

그의 사진 작업이 의미 그대로의 팩트만을 고집하고 있음은, 트릭이 없는 그의 삶에서 비롯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스스로 손해를 감수하며, 그가 속임을 당하더라도 트릭을 용납하지 않은 그의 성격과 그의 정서에서 기인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그는 여전히 자기 일에 대한 확고한 자부와 신념, 긍지로서 현실적인 수난을 이겨낸다. 그가 정지된 대상체를 카메라 앵글로 담아내는 작업에서 고집스럽게 나름대로의 의미들을 창조해내고자 안간 힘을 다하는 것은 어쩌면 일종의 현실 도피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하여 필자의 눈에 비치는 ‘사진가 마동욱’이는 여전히 돈키호테적인 것이다.
마동욱 씨에 의해 10년 전에, 장흥 땅에서 사라져간 유치지역을 담은 ‘아 물에 잠길 내 고향’이 출간되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10년 후인 올해, 대부분 노인들만 남아진 고향마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 여전히 아름다운 고향마을의 풍광을 기록한 ‘남도의 하늘과 땅과 그리고 사람들’이 출간된다.

이제 또 10년 후쯤에는, 점차 사라져가고 붕괴되어가는 고향마을, 그런 마을을 배경으로 공허해진 우리들의 슬프고 슬픈 고향마을의 풍광이 담겨진 또 하나의 史書的 고향 사진집이 마동욱 씨에 출간될 것이다. 앞으로 10년 후에도, 고독한 돈키호테처럼, 마동욱 씨는 여전히 카메라를 메고 지금의 노인들도 떠나가고 하여 더욱 쓸쓸한 낙조처럼 스러져갈 고향 마을들을 찾아다닐 터이기 때문이다.

이번 마동욱 씨의 사진집 ‘정남진의 빛과 그림자’가 더욱 소중한 것은, 이처럼 급변해가는 현대역사의 전환점에서, 남도 고향 마을의 10년을 사진기록으로 남겼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전설로 회자될 지금 우리들의 소중한 고향이 ‘사진가 마동욱’이에 의해 사서적 사진속에서 영원히 살아 숨 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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